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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선악과는 무엇일까?(8)

by 날숨 한호흡 2010. 5. 26.

 

 

 

남편을 떠나온 후 십 년 쯤 지나서 한 남자를 알게 되었어요.

아내와 별거 중인 남자였죠.

똑같은 처지의 우리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운동도 같이 했죠.

한 오 년 가까이 그렇게 만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이 남자가 저를 원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매력이 없느냐고 따졌더니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왜 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그 방면을 싫어해서 아내와 별거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리고는 어지간히 이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죠.

헌데 이 남자가 연락하는 빈도가 줄어들더니 잠적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지간히 걱정이 되었으나 직장에 한동안 휴가원을 낸 후 여전히 출근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점차 분노로 변해갔습니다.

분노의 사이사이에 그리움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고는 했었죠.

헌데 이 화상이 석 달 만에 나타나서는, 그 사이 아내와 이혼하고 새장가를 들었다는군요.

열 살 미만의 처녀와 말이죠.

저는 심한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제 인생에서 맹렬하게 분노하는 일이 또다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두 번씩이나 일어나게 되었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하는 것일까?

 

같은 상황이 벌어지니까 이번에는 저에게서 그 원인을 찾게 되더군요.

그동안 저는 이 남자에게 용돈 같은 것을 조달해 주었었답니다.

풋내기 소설가인 주제에 이 일 저 일 매달린 덕분에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을 벌던 시절이었습니다.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 이후에 직장 월급으로는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댈 수가 없기에 떄려치우고 작가 생활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운 좋게도 데뷔하자마자 히트작 몇 편을 내게 되어 순전히 글 써서 밥벌이하는 작가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죠.

직업 운은 꽤 있는 편이거든요.

헌데 그렇게 힘들게 벌어들이는 돈이 들어오는 족족 그대로 새어버리게 되었어요.

왜냐고요?

아이들 아빠의 생활비까지 제가 대주게 되었던 것이죠.

어지간히도 직장 운이 좋던 남편은 제가 떠나온 후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더라는군요.

명색이 아이들 아빠인데 초라한 행색이 싫어 제가 자청해서 그렇게 된 것이죠.

저는 인정 하나는 끝내주는 성격이거든요.

헌데 어쩌다가 그런 애인까지 두게 되어 그 사람의 용돈까지 책임져주게 되었던 것이랍니다.

만날 때마다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요.

왜 남자들은 저만 보면 돈 달라고 징징거리는 걸까요?

하여간 이제부터는 그런 식으로라도 재혼을 하게 되어 저에게 더 이상 돈 달라는 보디랭귀지는 안 하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요.

웬걸요.

더 심해지더군요.

아내의 수입이 거의 없는 정도인데다가 씀씀이가 과했던 때문이었지요.

이 사람도 이혼 위자료 등으로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던 것이고요.

왜 그런 남자를 계속 만났느냐구요?

그게 저도 의문입니다.

왜 생각만 해도 분통터지는 그런 O같은 만남을 계속하는 걸까?

더욱 웃기는 것은 저를 버리고 재혼까지 한 남자가 저에게 연락하는 일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신혼 6개월은 꿈같이 흘러갔나 보던데 그 후로는 누가 자기 아내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에게

 

집에다 전화를 걸려다가 번호를 잘못 누른 것이 아니냐?

 

는 질문도 했었죠.

아니라더군요.

그는 왜 제가 계속 필요했던 걸까요?

아마도 그 사람의 몸은 집에 있는 아내를 원하고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은 밖에 있는 저를 원하고 있었나봐요.

 

슬프고 슬픈 얘기죠.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남자들의 습성.

마음과 몸이 한꺼번에만 노는 여자들의 습성.

 

여자들은 한번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면 그때부터는 매달리고,

남자들은 한번 여자에게 몸을 허락하면 그때부터는 떠날 궁리만 한다는군요.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래요.

왜 그 남자는 저를 떠나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을까요?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저는 그즈음에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답니다.

뭐냐고요?

저에게 경제적으로 신세를 지고 있는 그 남자는 저를 생각하면 빚쟁이처럼 여겨졌었나 봐요.

그래서 도망갈 궁리만 했었던 것이죠.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말을 꼭 기억해주세요.

생생한 진리랍니다.

여자에게 경제적인 신세를 진 남자들은 반드시 여자를 배신하는 거랍니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잖아요.

공장에 다니면서 남자의 공부를 도왔는데 고시에 패스하자 곧 배신하고 다른 부잣집 여자와 결혼했다는 등등...

헌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저의 두 번째 남자는 도망을 가보았더니 상대가 별로 신통치 않았던 겁니다.

여자 보는 눈이 나빴던 것이죠.

눈이 나쁜 이유로 두 번씩 결혼을 하고도 그 모양이죠.

그러니 이제 와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명언을 따라 다시 편한 옛 여자를 찾아 온 것이겠죠.

그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순전히 정신적이며 금전적인 치사한 만남을 이어왔었답니다.

 

후후...

여기까지는 순전히, 저의 작가로서의 추리이구요.

더 흥미진진한 실제 이야기는 앞으로 진행됩니다.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 말예요.

오랜 명상 끝에 저는 이 치사하고도 치사한 스토리의 전말을 알게 되었답니다.

 

자살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 얘기가 또 길어졌군요.

하여간에 저는 남자에 대해서라면 너무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랍니다.

못 말린다니까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두 남자와 실연을 하고는 세상이 귀찮아져서 자살을 꿈꾸었었다는 말입니다.

자살에 실패했냐고요?

성공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어요?

다행스럽게도 미수에 그쳤답니다.

왜 다행이라고 하는가 하면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이 세상은 한번 살아볼 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지요.

 

  

  

[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4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