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동안 저는 한 남자, 아니 두 남자를 몹시 미워했었죠.
한 남자는 남편이었어요.
남편이 긴 세월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왔던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굉장히 슬프더군요.
워낙 울보인 저는 밤낮 울었답니다.
그때까지는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기에
우는 일 말고는 달리 대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죠.
남편은 제게 대범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왜 그만한 일에 그리도 마음 아파하느냐고 하더군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그같이 크고 악랄한 사건에 말이죠.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몇 달 동안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했습니다.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열 알씩 먹어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가슴이 콩콩 뛰더군요.
처음에는 너무 몰랐고, 화가 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이 피어올랐어요.
아침저녁 출퇴근길에는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눈물을 찍어내었죠.
실연을 다룬 노래들이 많다는 것도 그 시절에 알게 되었어요.
전에는 클래식만 좋아하던 제가 그때부터는 가요 마니아가 되었답니다.
슬픔을 달래주는 데는 가요가 '짱'이더군요.
정신이 나기에 저는 남편에게 바람이 난 이유를 물어보았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는 대답이더군요.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따졌더니
그런 것 없다. 최선을 다해 잘해 주었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는
남자들은 살다 보면 한두 번은 바람이 나게 마련이야.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죠.
그런가요?
하긴 요즈음은 여자들도 그렇다는군요.
저도 이후에는 바람이 났었지만 그 시절에는 정정당당한 것만 좋아해서
바람이 나는 것 같은 엄두는 꿈에서조차 내지를 못했었답니다.
남편과 별거 중에 또 다른 별거 중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도 바람은 맞죠?
저는 남편에게 세 사람이 함께 살 수는 없으니까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어요.
가능하다면 둘 다 데리고 살고 싶다.
대답하더군요.
남편으로서는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 말이겠는데 이 말이 비수가 되어 저를 찔렀죠.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일은 도저히 용서 못하겠다.
분노가 일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남자를 두 여자가 나누어 가지는 상황에 늘 분노한답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나누어 가지는 일에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요.
조선시대에 궁중에 살던 여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만 해도 동정이 일고는 합니다.
그런 여자들은 전생에 얼마나 살난 체했으면 수백 명이 한 남자만 바라보면서 살면서도
다른 남자는 꿈도 꾸어서는 안 되는, 그같이 끔찍한 고통을 견디어 내는 일이 주어졌을까 하면서요.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 그런 것일 거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답니다.
그렇게 생각해오던 제게 남편이 둘 다 데리고 살고 싶다는 말을 뱉어내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남자들처럼 말이에요.
[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38쪽 ]
'1. 선계수련 교과서 > 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악과는 무엇일까?(8) (0) | 2010.05.26 |
---|---|
선악과는 무엇일까?(7) (0) | 2010.05.21 |
선악과는 무엇일까?(5) (0) | 2010.05.11 |
선악과는 무엇일까?(4) (0) | 2010.05.08 |
선악과는 무엇일까?(3) (0) | 201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