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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선악과는 무엇일까?(4)

by 날숨 한호흡 2010. 5. 8.

 

 

 

언젠가 직장에 다닐 때인데요.

저라는 사람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전생을 봐준다는 분을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일단 저를 아는 데 있어서 단서가 될 것 같은 전생이라도 알고 싶어서 말이죠.

그 사람은 저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눈을 지그시 감더군요.

 

배 안에 악어가 들어 있는 것을 보니 전생은 악어였군요.

 

라면서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폭격을 맞아 한동안 흩어져 버렸었죠.

충격이 너무 컸기에 며칠을 비몽사몽으로 보낸 뒤에야 혼란스런 마음을 수습했습니다.

위기를 맞으면 더욱 강해지는 기질이 이때부터 드러났죠.

 

까짓 악어이면 어떤가?

다행스럽게도 현생에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고마운 거지.

전생이 악어였다는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 말은 이상하게도 저에게 삶에 대한 의욕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저는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태국에 갔을 때는 악어가 디글디글한 농장을 방문해서는 물끄러미, 슬픈 시선으로 전생의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진흙탕에서 뒹구는 동료 악어들을 바라보며  이를 질끈 물었죠.

 

악어의 뜨거운 맛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겠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겠다.

 

저는 주먹을 불끈 쥐며 야무진 결심을 하였습니다.

악어에 대하여 전문 학자처럼 공부를 철저히 하기도 하며

전생의 껍질인 악어 핸드백도 장만하고 악어 구두도 신고 다녔었죠.

 

그래, 난 전생에 악어다. 어쩔래!

 

나중에는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지더군요.

세상에 대해 배짱이 생겼습니다.

악어가 왜 배짱이 세다잖아요.

허나 그같이 야무졌던 결심도, 작정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에서건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 때문이죠.

악어에 싫증이 날 때쯤에 저는 심령술사라는 분을 찾아갔었습니다.

아는 분이 소개해 주었죠.

이번에는 독수리나 호랑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쩌나 하면서 우황청심환을 미리 먹고 대비하고 있던 저에게 그분은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와 고종의 외동딸인 태평공주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악어가 아니라 공주라는 말에 신이 나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황홀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부리나케 역사책을 뒤졌죠.

다행스럽게도 사마천의 사기에서 태평공주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말한 것은 저의 성격이 알고 싶은 것을 알지 못하면 알 때까지 안달복달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쓴 길고 긴 책도 있더군요.

밤을 새워 읽었죠.

그즈음 우연히 비디오 가게에 갔는데 측천무후와 태평공주에 관한 비디오가 각 40여 편씩이나 있었습니다.

그 많은 편수를 빌려와 단 며칠 만에 눈에 핏발이 서도록 다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태평공주와 저는 성격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만족할 만한 조사 연구를 끝낸 후 저는 전생에 태평공주였음에 틀림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동안 즐거웠습니다.

오랜 명상으로 저의 정체를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었을 때까지는요.

그녀는 육촌 동생인 당 현종에 의해 죽음을 당했더군요.

양귀비로 유명한 그 왕 말이예요.

전생의 제가 타인으로부터 원치 않던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현생에도 틈틈히 슬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우울증을 달래 주기도 했었습니다.

 

 

 

[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2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