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선악과는 무엇일까?(3)

by 날숨 한호흡 2010. 5. 5.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안 계십니다.

유복자라더군요.

6.25 전쟁 중에 태어났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죠.

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새아버지조차 없었으니까요.

 

저라는 사람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단정하고 고상하신 분을 어머니로 하여

자존심 강하고 똑똑한 언니들 셋을 위로 하고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오빠가 한 분 있었다는데 전쟁 후 혼란 중에 역시 돌아가셨다는군요.

저승에 계신 아버지가 외로우셔서 동족인 오빠를 불러 가신 걸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된 후 우리 집에는 온통 여자뿐이었습니다.

딸 넷에 어머니 한 분.

아는 분들은 이런 우리 집을 여성천국이라고 불러 주었답니다.

 

저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났을까요?

제가 불평 중에

 

제대로 기르지도 못하실 걸 왜 저를 낳으셨어요?

 

하고 어머니께 대들면

 

내가 낳고 싶어서 낳은 줄 아니?

 

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요.

 

아니, 낳고 싶지 않은 걸 왜 낳아?

참 이상도 하다.

낳고 싶지 않은 아이를 어찌하여 낳으셨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참 후에야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어렵풋이나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태어나게 하시고

물, 바람, 햇빛, 땅이라고 불리는 자연을 영양분으로 하여 기르시고

늙음과 질병과 사고를 통하여 겸손을 알게 하시고

또 명이 다 하면 영생을 준비시키기 위해 어디론가 데리고 가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요.

너무 무거운가요?

다시 가벼운 얘기로 돌아가기로 해요.

 

 

[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2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