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저의 얘기로 돌아가기로 해요.
자살 시도가 있고 나서 저는 저의 삶을 곰곰히 돌아보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살기 싫다고 아무리 소리쳐 봐야 별 소득이 없기에 이제부터는 저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기로 하였죠.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엉클어졌는가?
가장 큰 문제는 세상이 재미없고 매사가 귀찮아서 죽을 지경인 점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열정의 반대말은 미움이라고 누가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바로 그거였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쓰다 보니 그 일만으로도 지쳐서 다른 일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겁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귀찮고 재미없는 일인지요?
매일 그 같은 일만 하고 있으니 세상이 재미없을 수밖에요.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니 눈앞이 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진정 누구를 미워하고 있는 것일까?
두 남자였습니다.
아니, 두 남자에게 휘둘리는 저 자신을 몹시 미워했던 겁니다.
그 남자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저만 그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데 대한 아니꼬움.
그 필요라는 것도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같이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자는 것 정도인데 왜 그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 해주는가?
그들은 저와 같이 보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언제나 다른 일에 열중하더군요.
전화 통화를 주고받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신문 아니면 인터넷을 뒤적인다거나, 하여간에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늘 딴전을 피우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러는 그들이 서운했습니다.
왜 그들은 언제나 필요 이상 바쁜가?
왜 가만있지를 못하고 허둥대는가?
왜 나처럼 한 사람과의 만남에만 열중하지 못하는가?
내가 원하는 이같이 작은 것들을 해주지 않으면서 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도 많은가?
저는 그러는 그들을 이해하기 싫어졌고 제가 지적하는 것들이 죽어도 시정될 기미가 모이지 않자 나중에는 미워하게 되었죠.
제가 두 남자에게 소박당한 이유는 바로 그런 점일 겁니다.
그들을 독점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죄.
아마 그 죄는 그들에게 고행을 시킨 '노동력 착취 죄'가 아닐까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까지 뉴스에 귀 기울이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알고자 노력을 시작했죠.
생각해보니 저는 남자에 대해서 백지상태였습니다.
여자들만의 환경에서 자랐고 또 여자 아이들만 낳아 기르다보니 남자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죠.
따지고 보면 제가 남자들로부터 소외된 연원은 출생 때부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면서부터 저의 인생에는 남자들이 없었으니까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왜 내 인생 스케줄에는 남자가 빠졌는가?
후에 남자가 있게 되었을 때도 왜 시원치 않게 되었는가?
쉽게 말해서 왜 나는 남자 복이 없는가?
왜 내게는 남자가 '따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가 되었을까?
선악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연구하기로 하고 일단 남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부터 알아야겠다.
적을 알아야 '적과의 동침'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저는 결심을 하고 일단 이 방면의 책들을 탐구하기로 했죠.
<남자>라는 제목이 붙은 두꺼운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 남자들이란 원래 특이한 사람들이구나.
불현듯 꺠달음이 찾아왔죠.
저는 여자와 남자는 같은 사람들인 줄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남들이 다 아는 국민상식도 모르고 이었던 겁니다.
헌데 남자를 다룬 수많은 책들을 읽어보아도 이렇다할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실전 경험이 아니라 탁상공론이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저는 이 방면에서 탁월한 실전 경력을 지닌 사람을 보았습니다.
단연 '횡진이' 였습니다.
[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5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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