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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선악과는 무엇일까?(10)

by 날숨 한호흡 2010. 6. 6.

 

 

 

다시 저의 얘기로 돌아가기로 해요.

자살 시도가 있고 나서 저는 저의 삶을 곰곰히 돌아보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살기 싫다고 아무리 소리쳐 봐야 별 소득이 없기에 이제부터는 저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기로 하였죠.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엉클어졌는가?

 

가장 큰 문제는 세상이 재미없고 매사가 귀찮아서 죽을 지경인 점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열정의 반대말은 미움이라고 누가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바로 그거였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쓰다 보니 그 일만으로도 지쳐서 다른 일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겁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귀찮고 재미없는 일인지요?

매일 그 같은 일만 하고 있으니 세상이 재미없을 수밖에요.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니 눈앞이 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진정 누구를 미워하고 있는 것일까?

두 남자였습니다.

아니, 두 남자에게 휘둘리는 저 자신을 몹시 미워했던 겁니다.

그 남자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저만 그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데 대한 아니꼬움.

그 필요라는 것도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같이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자는 것 정도인데 왜 그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 해주는가?

 

그들은 저와 같이 보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언제나 다른 일에 열중하더군요.

전화 통화를 주고받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신문 아니면 인터넷을 뒤적인다거나, 하여간에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늘 딴전을 피우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러는 그들이 서운했습니다.

왜 그들은 언제나 필요 이상 바쁜가?

왜 가만있지를 못하고 허둥대는가?

왜 나처럼 한 사람과의 만남에만 열중하지 못하는가?

내가 원하는 이같이 작은 것들을 해주지 않으면서 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도 많은가?

저는 그러는 그들을 이해하기 싫어졌고 제가 지적하는 것들이 죽어도 시정될 기미가 모이지 않자 나중에는 미워하게 되었죠.

제가 두 남자에게 소박당한 이유는 바로 그런 점일 겁니다.

그들을 독점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죄.

아마 그 죄는 그들에게 고행을 시킨 '노동력 착취 죄'가 아닐까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까지 뉴스에 귀 기울이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알고자 노력을 시작했죠.

 

생각해보니 저는 남자에 대해서 백지상태였습니다.

여자들만의 환경에서 자랐고 또 여자 아이들만 낳아 기르다보니 남자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죠.

따지고 보면 제가 남자들로부터 소외된 연원은 출생 때부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면서부터 저의 인생에는 남자들이 없었으니까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왜 내 인생 스케줄에는 남자가 빠졌는가?

후에 남자가 있게 되었을 때도 왜 시원치 않게 되었는가?

쉽게 말해서 왜 나는 남자 복이 없는가?

왜 내게는 남자가 '따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가 되었을까?

선악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연구하기로 하고 일단 남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부터 알아야겠다.

적을 알아야 '적과의 동침'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저는 결심을 하고 일단 이 방면의 책들을 탐구하기로 했죠.

<남자>라는 제목이 붙은 두꺼운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 남자들이란 원래 특이한 사람들이구나.

불현듯 꺠달음이 찾아왔죠.

저는 여자와 남자는 같은 사람들인 줄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남들이 다 아는 국민상식도 모르고 이었던 겁니다.

헌데 남자를 다룬 수많은 책들을 읽어보아도 이렇다할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실전 경험이 아니라 탁상공론이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저는 이 방면에서 탁월한 실전 경력을 지닌 사람을 보았습니다.

단연 '횡진이' 였습니다.

 

 

 

 

[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5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