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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활의 발견/역사와 인물 이야기

[중국]알아주는 사람(지기,知己)을 위해 죽다

by 날숨 한호흡 2007. 4. 29.

 

 

전국시대에 조양자는 조(趙)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자기를 공격한 지백을 전쟁에서 이겼다.

그의 지백에 대한 복수심은 대단하였다.

그는 지백의 두개골로 물 뜨는 그릇(혹은 요강)을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지백의 신하 가운에 예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예양은 양자의 그런 잔악한 복수에 분노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는 지백의 원수를 갚기로 작정하여, 거짓 죄수가 되어 양자의 궁으로 들어갔다.

예양은 비수를 품은 채 양자의 변소에 숨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려니까 양자가 변소에 갔다가 이상한 낌새를 먼저 눈치채고 말았다.

양자는 예양을 붙잡았다. 보니, 자객이었다.

주위의 신하들이 예양을 처형하자고 야단이었다. 그렇지만 양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의사(義士)다. 내가 조심하여 피하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예양은 살아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도 예양은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몸에 옻칠을 하여 거진 문둥이가 되고, 숯을 삼켜서 거짓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몰골로 저자거리를 다니면서 구걸을 하였는데, 그런 예양을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한 친구가 그를 알아보았다.

 

친구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자네의 재주로 양자를 섬기노라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게 아닌가.

그런 연후에 자네의 뜻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못 이룰 것이 없겠거늘, 왜 그 쉬운 길을 버리고 이토록 스스로 몸을 혹사한단 말인가."

 

예양이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오. 한번 남의 신하가 되고나서 죽이고자 한다면 이는 정직하지 못하게 두 마음을 품는 것이 되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아는 바이오.

그러나 내가 구태여 이렇게 하는 데는 까닭이 있소. 장차 후세에 남의 신하된 자로써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하오."

 

예양은 그 뒤에 다리 밑에 잠복해 있다가 다시금 양자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양자가 예양에게 물었다.

 

"그대의 행동에는 모순이 있다. 그대는 전에 범(范)씨와 중행(中行)씨를 섬겼었다.

그런데, 중행이 범을 멸망시키자 그대는 중행을 따랐고, 지백이 중행을 깨뜨리자 다시 지백을 섬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홀로 지백만을 위하여 복수코자 하는가."

 

예양이 말했다.

 

"내가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을 때 그들은 나를 평범한 신하로 대우하였소.

그렇지만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하였다오. 나의 의견은 경청되었고, 나의 계책은 채택되었소.

그리하여 나는 범씨와 중행씨에 대해서는 평범한 신하가 임금을 모시듯이 하였거니와,

지백에 대해서는 국사가 임금을 모시듯이 하려는 것이오."

 

"그렇다면 각오하라. 나는 이미 그대를 의사로 인정하여 한번 풀어줌으로써 도량을 보였거니와 이제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나 또한 각오하고 있는 바이오. 다만 한 가지 원이 있소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당신의 옷이나마 자르고 죽기가 원이오."

 

예양의 말에 감동한 양자는 시자를 시켜 자신의 옷 한 벌을 가져오게 하였다.

예양은 그 옷을 땅에 내려놓고 칼을 빼들더니 힘껏 뛰어올라 내리치기를 세 번이나 하였다.

 

"자, 이로써 나는 지하에 가서 주군을 뵙는데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말을 마치고 예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숭어 25쪽, 사기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