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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선계에 가고 싶다

수련자의 성에 대한 인식

by 날숨 한호흡 2020. 3. 19.






수련자의 성에 대한 인식





수련중 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요?

제게는 금욕수련을 명하셨습니다만 다른 수련자들이 이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수련 중 음은 양은, 양은 음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게 된어 있다.

이것은 반드시 기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해탈에 가서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면에서도 양성은 존재하는 것이며 그 이상에서나 존재하지 않게 된다.




수련 중 부딪치는 성에 대한 욕구는 안으로 삭여 기화함으로 수련을 진일보케 함이 필요하나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또는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은 겪어 넘기기가 쉽지 않아

이 단계에서 대개 실패하게 되는 바

정(精)을 그대로 방사하는 경우와 내적으로 승화하여 수련에 소요되는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정이란 한번 소모되면 다시 솟아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솟아난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인 바

기존의 정을 간직한 상태에서 새로운 정이 솟아나는 것과 기존의 것이 소모된 상태에서 정이 솟아나는 것은

그 근본이 다른 까닭이다.




허나 이런 방법이 모든 이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닐 뿐더러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수련 초기 백일 정도 금욕기간을 거침은 항상 일정한 정도의 정을 확보하여

최소한의 에너지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함에 그 목적이 있는 바 이것도 지키지 못하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부부간에 정(精)을 아껴 정(情)이 솟지 않음도 스승들이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나

필요 이상의 과다한 사용으로 정(精)을 소모함 역시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수련을 위한 적정량의 확보와 생활을 위한 적정량 사용의 조화 위에서 양립시켜 나갈 수 있는

지혜야 말로 무리없이 수련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서양의 무한론(無限論)이나 동양의 유한론(有限論) 모두 어느 정도의 일면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전적으로 확신하기엔 무리를 범하고 있다.

산에서 혼자 수련한다면 물론 금욕이 수련에 좋으나

정심(精心)적인 면이 뒷바침되도록 극기훈련을 해보는 것도 겪어 넘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세속에서 수련함에도 가급적 삼가하는 것이 좋으나

무리하게 참아 번뇌의 시발점을 만드는 것 역시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자의 경우는 이와 다른 점이 있으니 양성 모두 항상 일정한 정도의 상대 성을 필요로 하나

소극적인 점이 있어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적당한 선,

즉 피로를 느끼지 않는 정도에서 간직함이 가할 것이다.




헌데 제 경우는 왜 금욕으로 깨나가야 합니까?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듣겠느냐?

빠른 방법이라 하지 않았느냐?




알겠습니다. 수련은 어디가 끝인지요?


끝이 있는 줄 알았더냐?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요?


가는 데가 끝이니라.




언제쯤 깊이 들어가야 하는지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주변 지식을 많이 구해 놓아야 한다.

들어가면 돌아볼 새가 없으니 사전에 충분히 알아 놓도록 해라.




전에는 넘치도록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본 수련에 관한 참 지식 말이다.

누가 수련 언저리에 있는 잡다한 것들을 말하느냐?

그런 것은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니라.

















[ 선계에 가고 싶다-선도스승님과의 만남, 수선재, 1999년 5월 출간, 2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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