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5..
OO아!
문무대에 입소하는 네 모습에서
23년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입소전 많은 얘기도 서로 주고받고 싶었으나
너 나름대로 계획이 있고 하여
그저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떠나보내고나니
어쩐지 서운한 것 같아 이렇게 몇 자 보낸다.
모든건 삶의 연장이자 경험이다.
조직적 생활의 리듬을 타고
그 조직 속에서 무엇인가를 얻도록 하여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짧은 기간이나마 떨어져 있게 되니
네가 보고 싶구나
열심히 해라
내주 낚시가자
아비가 4.22
.....
음력 2002년 10월 29일 향천하신 아버지의 기일인 오늘..
그 분을 그리며 지난 편지들 속에서 찾은 선친의 글 몇자를 다시 읽는다.
얼마전 황정민씨가 남자 주인공인 '국제시장' 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저미어 오는 순간이 여러번 이었다..
왜냐면..
아버지가 바로 그 영화에서 나오는 6.25 흥남부두 철수시 그 마지막 배를 타고 월남하셨기에..
당시 나이 9세의 소년..
아버지의 아버지(나의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서울서 실종되시고..
독자인 장남으로 어머니(나의 할머니) 그리고 여동생들(나의 고모들)과
부산 자갈치시장 국제시장을 전전하시던 이야기..
거제도 피난시절 고생담 등을 그래도 추억이라 항상 이야기해주시던 그 모습들이 마구 떠올라서..
그리고..
혹시나..
실종된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이후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도 나가신 것..
이북 5도청을 수시로 다니시던 모습들..
북청물장수.. 로 유명해진 함경도 분들의 교육열을 입증하시듯..
사업실패로 빚장이들에게 멱살을 잡히시면서도..
그 어려운 형편에서도..
나는 물론 나의 여동생 둘 모두를 대학에 보내고 무사히 졸업하게 해주시고..
철없던 꼬마 시절의 내가 낚시가자.. 조르면..
그 자리에서 하시던 일을 접으시고 낚시대를 챙겨 나를 데리고 물가에 함께 가주시던..
엄한 아버지가 아닌.. 마치 자상한 형님처럼 나를 항상 따듯하게 대해 주시던..
그 모습들의 이런저런 기억들..
아마도..
6.25 전쟁통에 당신 어린시절 아버지와 헤어져 父情이 한없이 그립고 부족하셨기 때문에..
그 아들인 나에게는 당신의 그 설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시려고..
더욱 더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셨을 것이다.
내가 한글을 배우던 시절..
베겟머리에서 어린이 성경을 읽어주시던 그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말년에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면서 꼬박꼬박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시고..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서는..
한 잔은 성모님(성모상)께 올리고 기도를 드리시고..
아마도 그 기도는 결코 당신 자신을 위한 기도는 아니셨을 것이다..
지금쯤..
보다 더 평화로운 그 어떤 곳에 계시며..
당신의 기일인 오늘..
며느리와 손자 손녀가 올리는 제사를 받으셨을 것..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 아들은..
이렇게 글로나마
선친의 진화를 기원드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