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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활의 발견/하루하루이야기

편지4..

by 날숨 한호흡 2015. 11. 3.

 

 

 

 

 

 

편지4..

 

 

 

 

 

 

 

 

 

 

 

계절의 흐름속에서 왠지 허전함에 누군가를 그리고 있을때

기숙사 입구 편지 바구니속의 이름 석자가 얼마나 기뻤는지.....

그리고, 비록 형편없는, 국민학생 같은 글씨가 약간은 나를 슬프게 했지만

편지를 읽는 내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해 줬지!

 

고마워, 보스꼬씨 (! 아  실수  - 정정) 오빠!

 

이곳 교육원에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얘기가 나온다..

나는 물리치료 때문에 내년에도 있기로 했어

아차! 인사가 빠졌다.

안녕! 그간(7일이후) 몸 건강히 잘 있었어?

난 아주 건강히 잘 있고....

 

근데 이곳에 와서 생긴 고민이 있는데 웃지마

뭐냐하면 '모기, 문제야 모기가 무서워.

지금도 모기 소리가 윙윙 귓가를 맴도는데, 모기는 나만 미워해

난 모기 정말 모기가 무섭고 두려워

향도 못 피우게 해

그저 바라만 보고 물리면 물파스 바르고

온 몸이 모기 물린 자국이지

부탁인데 모기라는 곤충에 대해서 좀 과학적으로 연구해봐

그래야 사랑하는(?) 스텔라를 모기로부터 해방시키지

 

아 지금은 밤 11시 50분

위 고프다

양념통닭 생맥주, 눈 앞에 어른거린다.

살찔 징조

그래도 먹고 싶은 걸

언제 집에가면 한 턱 내겠지?

12월 중순경에 한 번 갈꺼야

단단히 준비해 둬.

농담이구 나를 위해서 성모님께 하루에 로사리오 1단만 바쳐줬으면 좋겠어

대신 난 화살기도 해 줄께

이만 난 줄여야겠어 모기가 다리 또 물었어

건강해 칼라 꿈꾸고 내 꿈만 꾸고

잘 자 안녕!

 

 

일천구백구십년 시월 이십칠일

AM 0시 10분

조 스텔라 드림

 

ps. 답장을 원할 경우 앞으로는 필히 우표 동봉

 

 

.....

 

 

 

대학 3년 부터 졸업 후 취직 후 몇 년간

서울의 한 천주교 성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매우 즐겁게 열정적으로 했었다..

하누리.. 라는 성당 도서실을 운영하며 봉사활동을 하던 모임이었다.

기존 가톨릭 교회의 단체들과는 다른 그 성당에만 있던 지극히 자생적인 단체였는데..

그 구성원들도 매우 독특했다..

 

대학생, 청년노동자, 일반회사원, 백수, 재수생, 장애인..

미혼 남녀란 공통점만 빼고는 당시 가톨릭 청년 모임들 중에서는 가장 다양한 구성이었다.

그들 각자가 전혀 이질감없이 정말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꼈던 그런 곳이었고..

그땐 그저 좋기만 했었기에 여기까진 생각 못했었지만..

 

편지의 주인공 조 스텔라 자매는..

당시 뇌종양 환자로 시한부 생명을 통보받고 물리치료와 자활치료 기관을 다니며

하누리 활동을 함께하던 자매였다.

 

하누리 활동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그래서 삶의 집착을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 정도로

당시 하누리 모임과 그 곳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했던 그녀..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 시절이 가장 순수하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미워했던? 때였음을..

 

스텔라 자매는..

다음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 몇 개월 뒤인가..

 

그 세례명..Stellar 恒星..항성.. 에 걸맞게..

'하늘의 스스로 빛나는 별'..

이 되었다.

 

 

 

 

 

 

to 보스꼬 오빠

 

얼떨결에 우연찮게 이렇게 늦은 밤에 편지를 쓰게 됬어

그 동안 잘 있었어?

난 참(아주) 잘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오빠도 데레사도 하누리 가족 모두 다 안녕하겠지?

 

여기 교육원에 있는 한 아가씨가 펜팔친구로 오빠를 지목했어

그 아가씨는 우리 자수과에서 자립장으로 일을 해

나이는 스물둘, 휠체어 장애자이고 재주도 많아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고 유모 감각도 굉장히 뛰어나

장구도 잘치고 장단도 잘 맞추고 열두가지 재주를 다 가진 아가씨야.

자격증도 많아서 기계자수 수자수 한복 등 굉장해

귀엽기도 해

작년에 스콜라스티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어.

오빠가 보스꼬 오빠가 먼저 김OO 앞으로 편지써줘

 

근데 너무 자연스럽게 오빠란 호칭이 나온다.

 

6월2일날 우리 오빠랑 루시아랑 오는데 오빠도 시간 있으면 와.

올때는 필히 과자 맛있는 것 사올 것

메뉴는 새우깡, 오징어땅콩, 치토스, 오징어칩, 틴틴 5 가지 과자와

콜라 1.5리터 한병 필히 사올 것.

보스꼬 오빠 못오면 루시아한테 메뉴판 넘겨 주고

건강하고 스콜라스티카한테 편지해줘

하누리 가족에게 안부전하고...

 

안녕 내 꿈만 꾸고 내 생각만 하고 칼라꿈 꾸길...

 

1991. 5. 26. 일. PM 11시

스텔라 드림

 

 

.....

 

 

 

아.. 그때 왜 펜팔편지를 안 했을까..

왜 스텔라를 만나러 안 갔을까.. 

그녀의 마지막 부탁이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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