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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성과 영성을 위한 글/인연 이야기

어떤 여인의 기구한 인과관계

by 날숨 한호흡 2010. 7. 24.

 

 

 

 

 

 

 

 

지혜의 눈을 떠 아라한이 된 미묘(微妙) 비구니는 자기 자신의 기구한 인과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원래 어떤 바라문의 딸로 태어났다. 우리 아버지는 나라 안에 널리 알려질 만큼 덕이 높은 분이었다. 이웃에 다른 바라문이 살았는데 그집 아들은 인자하고 총명했다. 내 미모에 끌린 그는 나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루었다. 나는 한 아들을 낳았었다. 그후 시댁 부모는 잇따라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둘째 아이를 배었다. 남편과 의논한 끝에 친정에 가서 해산을 하기로 했었다. 친정으로 가던 도중 갑자기 진통이 와서 나무 아래 자리를 폈다. 그날 밤에 아기를 낳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곤히 잠든 남편을 독사가 물어 죽였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나는 새벽녘에야 겨우 일어나 남편을 깨우려고 가까이 갔다. 독사의 독이 온몸에 퍼져 죽어 있는 남편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을 보고 큰 아이는 소리를 내어 울부짖었다.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큰 아이는 등에 업고 갓난 아이는 품에 안고 울면서 길을 떠났다.

 

길은 멀고 험한데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도중에 큰 강이 있었는데 수심이 깊고 폭이 넓었다. 큰 아이는 강가에 내려 두고 먼저 갓난 아이를 업고 강을 헤엄쳐 건넜다. 언덕에 올라 나무밑에 갓난 애를 내려 놓았다. 이때 강 건너에서 큰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서 강물로 들어오다가 그만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나는 급히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아이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구할 수 없었다. 다시 기숡에 올라와 갓난애한테 돌아오자 늑대가 갓난아이를 먹어버린 뒤였다. 나는 또다시 기절했다가 한참만에 깨어났다.

 

나는 얼이 빠진 듯 정신없이 길을 걸어갔다. 도중에 한 바라문을 만났는데 그는 친정 아버지의 친구였다. 나는 슬픔이 북받쳐 통곡을 하면서 그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친정 소식을 물으니, 며칠 전에 집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친정 소식을 물으니, 며칠 전에 집에 큰 불이 나서 부모와 동생들이 모두 타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비통한 소식을 전해듣고 나는 또 까무러치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길에서 만난 아버지의 친구집이었다. 그분은 홀홀 단신이 된 나를 가엾이 여겨 친자식처럼 보살펴주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날 이웃에 살던 바라문이 내 얼굴이 고운 것을 보고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했다. 의지할 데 없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가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바라문은 술망나니였다. 술만 가지고 오면 망나니가 되어 갖은 학대를 했다. 나는 더 참고 견딜 수가 없어 박복한 신세를 한탄하며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왔었다. 그 길로 바라나시(베나레스)로 가서 한 나무 아래서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 고장의 한 부호의 아들이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몾잊어하면서 날마다 무덤을 찾아와 애통해 하였다. 그는 몇 차례 나와 마주치더니 내게 새 아내가 되어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그의 뜻에 따랐다. 그는 지극하게 나를 사랑해 주었지만 얼마 안되어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때 그 고장 법에는 미망인은 무덤에 함께 묻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무덤에 묻혀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밤이 되자 도둑이 와서 무덤을 파고 나를 구출해 주었다. 나는 도둑의 아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며칠이 안되어 도둑은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나는 내 자신의 기구한 신세를 한탄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이처럼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어디에 의지해 남은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이때 문득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석가족의 아들이 고행 끝에 부처님이 되어 과거와 미래의 일을 훤히 안다고.

 

나는 곧 기원정사로 갔다. 나무에 꽃이 활짝 핀듯, 별 속의 달과 같은 부처님의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 부처님은 내 곁으로 걸어오셨다. 나는 그 동안에 겪은 일들을 낱낱이 말씀드리고 나서, 저를 가엾이 여겨 수행자가 되게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부처님은 시자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인을 데려다 고타미에게 맡기어 계법을 일러 주게 하라.'

 

나는 고타미  밑에서 비구니가 되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와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것, 모든 것은 공하고 무상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 수 있었다. 내가 현세에서 받은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것은 오로지 전생에 내가 지은 업의 갚음으로 털끝만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곁에서 기구한 사연을 듣고 있던 비구니들이 물었다.

 

"전생에 무슨 죄업을 지었기에 그토록 견디기 어려운 재앙을 당하셨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미묘 비구니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자세히들 들으시오. 지난 세상에 한 부자가 있었소. 나는 재산은 많았지만 아들이 없어 작은 부인을 두게 되었소. 지체는 낮은 집 딸이지만 용모가 아름다워 부자는 그녀를 몹시 사랑했소. 게다가 사내아이를 낳았소. 부자와 작은 부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이때 큰 부인은 시샘이 나서 이런 생각을 했소.

 

'나는 비록 귀한 문벌의 출신이지만 이 집안의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 이제 저 아이가 자라나면 이 집안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될 것이다. 그때 내 처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큰 부인은 질투심이 치솟아 아이가 자라기 전에 일찍 죽여버려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소. 그리하여 그 아이의 정수리에 바늘을 깊이 꽂았었소. 아이는 자꾸 말라 가다가 열흘쯤 지나 마침내 죽고 말았소. 작은 부인은 너무 애통하여 미칠듯 하였소. 그리고 아이가 갑자기 죽은 것은 필시 큰 부인의 소행일 거라고 단정하고 이렇게 추궁하였소.

 

'당신이 우리 애기를 죽였지요?'

 

큰 부인은 펄쩍 뛰면서 이런 맹세를 하였소.

 

'만일 내가 그대의 아이를 죽였다면 다음 생에 내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고, 거기서 낳은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늑대에 잡아 먹힐 것이오. 나는 산 채로 묻히고 내 부모 형제는 불에 타 죽을 것이오. 이래도 나를 의심하겠소? 이래도 나를 의심하겠소?

 

그때 그 부인은 죄와 복의 갚음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와같이 맹세를 하였던 것이오. 그러나 지금 다 그대로 받으면서 아무도 대신할 사람이 없습니다. 알고 싶습니까? 그때의 그 부인이 바로 이 몸입니다.

 

지금 나는 다행히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아라한이 되었지만 항상 뜨거운 바늘이 정수리로 들어와 발바닥으로 나가는 듯한 고통을 밤낮으로 겪고 있소. 재앙과 복은 이와 같이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우경 미묘비구니품>

 

 

 

 

[듣고 또 들어 성인의 지혜를 이룬다,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