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 감성과 영성을 위한 글/인연 이야기

코끼리와 소와 양을 잡아 제사 지내도

by 날숨 한호흡 2010. 7. 14.

 

 

 

 

 

 

 

 

그옛날 한 나라가 있었는데 화묵(和默)이라고 하는 왕이 다스렸다.

어리석은 왕은 바라문과 무당을 섬겼고 생물을 죽겨 제사지내는 것을 떳떳한 일로 삼았다.

 

왕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앓게 되었다. 왕은 이름난 의사들을 불러 치료케 하고 무당들을 시켜 굿을 하고 기도를 올리도록 했으나 병은 날로 더해만 갔다. 어느날은 나라 안에 있는 2백 명의 바라문을 궁중에 모셔 음식을 공양하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 어머님께서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바라문들께서는 지식이 많아 천지의 운행과 별자리 보는 법을 훤히 알고 계실테니 어떤 잘못이 있어 그러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들은 말했다.

 

"별들이 뒤섞여 음양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럼 어떤 방법을 쓰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요?"

"성 밖의 평탄하고 정한 곳에 제단을 차려 네 산과 해와 달과 별들에 제사하고, 백 마리의 짐승과 어린애 하나를 죽여 하늘에 제사하되, 왕께서 몸소 어머님을 모시고 제단 앞에 꿇어앉아 절하면서 장수(長壽)를 비십시오. 그렇게 하면 병이 나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대로 준비를 서둘렀다. 어린애 하나와 코끼리, 말, 소, 양 등 백 마리의 짐승을 제단으로 몰고 갈 때, 그 길에는 슬픈 울음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부처님의 큰 자비는 간악하고 어리석은 바라문과 왕의 소행을 살피시고, 죽음으로 끌려가는 중생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무수한 죽음을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부처님은 급히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나라로 갔다. 성 밖에서 바라문과 왕에게 몰려 슬피 울면서 지나가는 어린이와 짐승들을 만났다.

 

부처님과 제자들을 보자, 왕은 수레에서 내려 일산(日傘)을 물리치고 부처님께 예배한 후 문안을 드렸다. 그리고 그 날 올릴 제사의 내력에 대해서 사뢰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고, 큰 부자가 되려면 널리 보시를 행해야 하며, 장수를 누리려면 큰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배우고 물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일을 행할 때에는 그 뿌린 것을 따라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무릇 부귀한 자는 가난한 이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 법입니다. 저 하늘들은 칠보로 궁전을 이루었고 옷과 음식은 저절로 생기는데, 어쨰서 하필이면 감로의 음식을 마다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으러 오겠소? 사악한 짓을 바르다 하고, 무수한 목숨을 죽여 한 목숨을 구하려고 한들 어찌 그 소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셨다.

 

사람들이 백년 동안 오래 살면서

천하의 귀신을 부지런히 섬기며

코끼리와 소와 양으로 제시지내도

한번 자비를 베푼 것만 못하네.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 왕은 어리석음의 구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앓던 병자는 심신이 상쾌해져 병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2백명의 바라문들도 가르침을 듣고는 부끄러워하고 허물을 뉘우쳐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원했다. 부처님은 그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법구비유경 자인품>

 

 

 

[듣고 또 들어 성인의 지혜를 이룬다,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