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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성과 영성을 위한 글/인연 이야기

국자는 국맛을 모른다

by 날숨 한호흡 2010. 8. 1.

 

 

 

 

 

 

 

 

부처님께서 사밧티에 계실 때였다. 성안에 나이 80이나 되는 바라문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었다. 그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데다가 몹시 인색하고 탐욕스러웠다.

 

그는 특히 집 짓기를 좋아하였다. 앞에는 사랑채 뒤에는 별당, 시원한 다락이 있고 따뜻한 방이 있으며, 동서로 이어진 수십칸의 회랑이 있었다. 아직 별당의 채양일을 끝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품삯 주는 것이 아까워 몸소 일을 경영하고 지휘 감독했다.

 

그때 부처님은 그 늙은 바라문이 그날 해를 넘기기 전에 죽을 것을 살펴 알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노인은 이일 저일 챙기느라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부처님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이로하기 위해 시자 아난다를 데리고 그 집을 찾아갔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이 집을 이렇게 거창하게 지어 누가 살려고 그러지요?"

 

노인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앞 사랑채에서는 손님을 접대하고 뒤 별당에서는 내가 거처하고, 저쪽 집은 자식들이 살고 이쪽 집에서는 종들이 거처하고, 또 저 창고에는 재물을 간직해 둘 것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다락에 오르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 들어가 지낼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침 생사에 관계된 일이라 말씀드리고 싶은데, 잠시 일손을 쉬고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누실까요?"

 

늙은 바라문은 급히 대답했다.

 

"지금 한창 바빠서 앉아 이야기 할 겨를이 없습니다. 뒷날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요."

 

부처님은 간단히 게송만을 읊으셨다.

 

 

자식이 있다고 재산이 있다고

어리석은 사람은 뽐내는구나

그러나 이 '나'도 내가 아니거니

자식이라 재산이라 무엇을 자랑하리

 

더울 때는 여기서 거처하리라

추울 때는 저기서 거처하리라

어리석은 사람은 미리 염려하지만

닥쳐 오는 재난은 알지 못하네.

 

 

부처님이 그 집을 나온 후 노인은 몸소 서까래를 올리다가 서까래가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부처님은 마을 동구에서 여러 사람의 바라문을 만났다. 그들은 다가와 부처님께 인사를 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방금 죽은 노인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고 했으나 그는 바쁘다고 다음으로 미루었소. 세상일의 덧없음을 알지 못한 채 지금 막 저승으로 간 것이오."

 

부처님은 바라문들에게 게송의 이치를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 게송을 듣고 기뻐하였다.

부처님은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하는 것은

마치 국자가 국맛을 모르듯이

아무리 오래도록 가까이 하여도

그 진리를 알지 못하네

 

어진이가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하는 것은

마치 혀가 음식 맛을 알 수 있듯이

비록 잠깐 동안 가까이 하더라도

참다운 진리의 뜻을 아네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자신의 근심을 불러오나니

가벼운 마음으로 악을 짓다가

스스로 무거운 재앙을 불러들이네

 

착하지 않은 일을 행한 뒤에는

물러나 뉘우치고 슬퍼하며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나니

이 갚음은 지은 업에서 오느니라.

 

 

 

[듣고 또 들어 성인의 지혜를 이룬다, 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