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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벽계수,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by 날숨 한호흡 2010. 7. 22.

 

 

"인간으로서 이런 분을 알게 되어 너무도 반가우면서도 제가 가장 아픔을 주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벽계수와의 관계는 어땠는지요?

제가 참으로 좋아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인물이나 교양이나 인픔이나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저를 참으로 아껴주었고, 저도 참으로 사랑했던 분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어 더욱 안타까움이 깊었던 분입니다.

호흡이 잘 맞았던 분이며, 대화가 통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 이런 분을 알게 되어 너무도 반가웠던 분이면서도 제가 가장 아픔을 주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분의 웃음, 목소리, 시조, 행색, 냄새까지도 좋았습니다.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안겼을 때 너무 포근하였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인 것도 있으나 당시에는 그렇게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정말로 사랑하였던 것이었군요.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선계에서 내려 보내신 교재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벽계수에게 가장 아픔을 주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요?

아마도 순서의 문제가 아닌가 싶군요.

먼저 말하는 쪽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므로 마음이 약간은 가볍겠지요.

갑자기 당하는 사람이 마음이 무거울 것이고요.

그러한 면에서 벽계수가 저보다 조금 더 아플 수 있겠지요.

인간적인 순수성에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하지만 저라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요.

정을 주고 나서 헤어질 때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것도 인간의 할 바가 아니지요.

그만큼밖에 인연이 아니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상호간에 아픈 면은 누구와 헤어져도 있는 것이지요.

벽계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의 헤어짐에서 저의 경우는 아픈 정도가 상대방과 비교적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 황진이와 벽계수의 이야기는 서유영(1801~1874)의 <금계필답>에 자세히 전한다.

 

-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워하였으나 풍류명사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 이달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 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개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를 지날 때까지 뒤를 졸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쫓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노래를 부르니 벽계수거 그냥 갈 수 없어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 한편 구수훈의 <이순록>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 종실 벽계수는 평소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노래를 부르니 밝은 달빛 아애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딸어졌다.

 

 

* 이때 황진이가 벽계수를 유혹하며 불렀던 노래가 바로 아래의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어떠리

 

 

* 긑으로 사랑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 한 편을 더 감상해보자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떠난 이를 그리는 절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이루어질 수 없어 안타까움이 깊었다는 벽계수는 아닐런지...

 

 

 

 

[ 제2장 황진이, 남자를 말하다, 12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