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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황진이,선악과를 말하다

가장 사랑한 사람은 지족 선사

by 날숨 한호흡 2010. 7. 13.

 

 

 

"선사는 저에게 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심어주신 분이었으며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주신 분입니다."

 

 

황 선인이 지상에서 가장 사랑한 분은 누구였는지요?

또 가장 존경하였으며. 영향을 많이 받은 누구였는지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지상에서는 인간적인 사람이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이죠.

인간으로 있을 때니까요.

하지만 선계로 올라오면 도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존경 여부는 선인의 등급에 따르는 것이죠.

사실상 인간으로 있을 때는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시시비비하면서 희로애락을 가름하나 그러면서도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지족이었던 것 같아요.

스님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으로 저를 좋아했던 분이죠.

저도 사실은 좋아했지만 스님의 신분을 가지신 그분을 계속 사랑한다는 것은 파계의 길로 가시게 하는 것이므로 많이 참았죠.

그분, 참으로 좋은 분이었어요.

인간적인 분이었지요.

도력의 정도를 떠나 참으로 인간적인 면을 좋아했어요.

그럼 면에서는 가장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그분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는 시대였고 그래서 그만두게 된 거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천하지 않았고 그분과의 관계는 너무도 인간적이었어요.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셨고 저도 진심으로 좋아했죠.

아마 가장 인간적인 분은 그분일거예요.

 

 

화담 선생은 절대로 마음을 주지 않는 분이죠.

어쩌면 저를 시험하셨던 것 같아요.

가만히 저를 보고 있으면서 얼마나 공부가 되었는지 바라보고 계셨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존경하였으나 나중에는 무서웠어요.

너무 빤하게 알고 계셔서 어쩔 수가 없는 것 있죠.

겁이 나더라고요.

 

 

지족 선사는 어떤 분이셨나요?

 

 

스님이셨으나 참으로 저를 아껴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에서는 파계라 하나 저는 파계라 생각지 않습니다.

파계라면 그것은 불교에서 주장하는 말일 것이나 지족 선사는 기존의 인간들이 행했던 음탕한 생각으로 저와 함께 하셨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숭고한 사랑으로 저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선사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였으며, 선사 또한 숭고한 사랑의 한 방법으로 저를 다독여주신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신성한 관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이후 다른 남성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때 생각했던 바를 행하였던 것입니다.

선사는 저에게 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심어주신 분이었으며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주신 분입니다.

성적인 스승이 지족선사라면, 정신적 스승이 화담 선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남성들은 상호간에 즐기면서 주고받았던 사람들로서 풋사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족 선사는 당시 불교에서 제자들을 공부시키고 있으셨는지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세계뿐 아니라 신의 세계에서도 지식에 대한 갈증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당시 서당 이외에 특별한 지식의 전달과정이 없었으며 이것도 양반에게나 해당되던 지식의 전달통로였지요.

허나 인생의 심오한 해답은 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서민들에게 필요하였던 것은 출세를 위한 지식보다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인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부분을 무당에게 의존했던 부분도 있으나 선禪을 공부했던 많은 스님들이 충족시켜 주는 경우도 있었지요.

 

 

지족 선사는 서민들의 이러한 부분을 충족시켜 주심으로 인하여 개성 일대의 많은 사람들이 따랐지요.

 

 

지족 선사의 지식은 선 공부를 하면서 터득한 기氣적 판단으로 비교적 정확한 지침을 내려줄 수 있었으므로 서민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관헌들과 저희들 같은 기생까지도 가르침을 구하러 가기도 하였지요.

순수하게 불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제자들을 양성하지는 않으셨고 서민 대중들이 많이 따랐던 스님이었습니다.

항상 조촐하게 소찬을 즐기시면서도 안색과 풍채는 당당하셨고 미소를 잃지 않던 분이었지요.

근엄한 면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언제나 자비로우시면서도 나름의 법도를 지키고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만난 시간과 돌아가신 연령을 알고자 합니다.

30년 면벽을 하셨다면 만나실 당시 50이 넘은 나이였을텐데 성 공부가 가능하였는지요?

 

 

선사를 만난 것은 선사께서 40대 후반이셨을 무렵이었고, 제 나이 20대 후반일 때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선사께서 30년 면벽을 하셨다는 말은 있었으나 이 말은 전해오는 말을 서민들이 그대로 알고 있으며, 면벽이란 일정기간 하면 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면벽이란 모든 대상을 자신의 시각 범위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스스로 판단의 중심을 잡는 방법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혼란스러운 가치관으로부터 하늘의 가치를 찾고 본래의 자신을 추구하기 위하여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눈을 감고 하는 명상과 같은 방법이기도 하며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더욱 수련에 깊이 들고자 하는 것이지요.

지족 선사께서 면벽을 오래 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 같았습니다.

어떠한 판단에도 흔들림이 없었지요.

외적인 조건은 모두 배제한 채 항상 자신의 내면에서 답을 구해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성 공부란 연령과는 무관한 것 같았습니다.

선사님께서 저와 성 공부를 하실 때에도 연령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저도 그분으로 인하여 여성으로서 자신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저도 성 공부를 제대로 하였으며 제가 여성임을 너무도 확연히 느끼고 나서 스스로 놀랄 정도였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도 느꼈고 그럼으로써 세상이 달라져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몰론 그 이후로 제가 세상을 보는 가치관도 달라졌지요.

성 공부가 주는 의미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참으로 많은 해답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음양과 선악, 남녀와 오행에 관한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었지요.

아마도 책을 통한 모든 공부보다 더욱 저를 성숙시키고 격을 높여준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선사와의 관계를 체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늘과 우주의 원리에 의한 접합이었으므로 저의 모든 것이 먼지 한 톨 남김없이 불태워져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경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저는 정말로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함을 알 수 있었지요.

그로 인한 얻음 또한 이 세상 모두를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된 연유가 선사의 공부 역시 저로 인하여 마무리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사는 저와 공부를 하시면서 세속의 가치관은 염두에 두지 않으셨죠.

선사께서 저와의 공부 이후 영영 입산하셨기 때문에 다시 뵐 수는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저만은 선사께서 어디에 계시다는 것을 항상 알 수 있었지요.

그 많은 남성들과 알고 지내면서도 다른 어떤 남성과도 불가능하였던 공부를 선사를 통하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았던 것은 바로 선사를 통해서 였습니다.

그 이후 다른 남성과의 관계는 성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였지요.

주고받음도 성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써 정을 주고받음이었으니까요.

 

 

승려로써 수행만 하신 분이라면 여자를 모르셨을텐데 어떻게 성적인 공부가 가능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승려이기는 하였으나 그분은 승려의 틀에 얽매여 자신의 공부를 제한하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공부를 위해서라면 틀 정도는 아무래도 관계없다는 분이셨죠.

당시에는 그것이 가능했던 시기인 것 같기도 하구요.

스님의 모습을 하고 계시면서도 반드시 불법을 구하시는 분은 아니셨고, 우주의 법도를 구하시는 분이셨으므로 제가 성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지족 선사는 당시 지상에 나온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불교를 통해 어떤 방법으로 선계 진입을 하셨는지요?

 

 

우주의 법도를 구하고 펴시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교는 당시 세속의 가장 보편적인 지도방법이었고, 선사께서 공부를 시작하실 때 불법을 먼저 하셨으며, 불법을 많이 공부하셨으므로 그분을 대표하는 법이 불법으로 알려진 것일 뿐 전체적으로 그러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하늘의 도를 펴는데 가장 나은 방법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선사께서 선계 진입을 하신 방법은 결국 호흡을 통한 선계수련이었습니다.

 

 

* 지족 선사와의 이야기는 문헌상으로는 오직 <성웅지소록>에 "30년 면벽의 지족선사도 나에게 무너졌다"는 황진이의 회고가 한토막 나오는 것이 전부이다.

 

황진이 관련 소설 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족 선사와의 일은 구전 야담을 통하여 전해온 것이다. 세간에 전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 지족 선사는 송도 근교 천마산 깊은 곳의 지족함에서 30년이란 긴 세월을 수도해 온 스님으로 송도 사람들은 그를 생불이라 존경하였다.

어느 날 황진이가 찾아가서 스님의 제자가 되겠노라고 애원하니 지족 선사는 난데 없는 미녀의 출현에 당황하였다. 황진이가 점점 강도를 높여 유혹하니 결국 30년 수련은 공염불이 되어버렸고, 당대의 고승 지족 선사는 파계승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후 그는 "음양의 도를 훔쳤으니 운수행각이나 나서야지"하며 종적을 감추었으며, 나중에는 생사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위와 같이 온통 흥미 위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저자와 황진이와의 대화내용을 보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며, 오히려 세상의 틀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사랑한 선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당대의 대표적인 고승과 최고 명기의 만남이니, 어쨌든 황진이 관련 에피소드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 끝으로 님을 향한 지극한 그리움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를 한 수 감상해 본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어드란 굽이 굽이 펴리라

 

 

[ 제2장 황진이, 남자를 말하다, 9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