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운이 다하여 향천하였습니다. 시신을 길가에 버리라고 한 이유는..."
사망연도와 나이를 문의합니다.
산 햇수가 40여년 되니까 그것으로 계산하면 사망한 연도는 아마 1551년경일 것입니다.
햇수는 2~3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상의 달력과 우주의 시간 차이에 의한 것이지요.
시신을 길가에 버리라고 했었는지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찌하여 그런 말을 했었는지요?
시신을 길가에 버리라고 한 이유는 향천向天 전에 생각해보니 저의 생각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였다고는 하나 커가는 아이들의 가치관을 생각해 볼 때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저에게서 그러한 과정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5세에 돌아가셨다는 황 선인의 모친과 황 선인의 돌아가신 병명을 알고자 합니다.
모친의 사망 원인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병명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름시름 앓는 듯 아닌 듯 기운이 없다가 돌아가셨으나 어떠한 약도 드시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기운이 다하여 향천한 것이고 저녁에 목욕재계하고 자정에 기도를 한 후 새벽 4시경에 향천하였습니다.
몸에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기운만 중단되었습니다.
지족 선사나 화담 선인의 병명도 알고 싶습니다.
공부하신 분들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지 알고자 해서입니다.
지족선사 역시 기운이 사라지면서 향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천시에는 뵙지 못하였습니다.
맑디맑은 산속에서만 생활하시었으므로 지구의 산에서 즐기실 모든 맑은 것들을 향유하신 후 향천하셨지요.
굳이 요즈음 기계로 측정하면 어떠한 병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나 선인들의 경우 대부분 노환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화담 선인의 경우 기운의 고갈보다는 자신의 의지로 향천하셨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인간들이 자살을 하는 것과 달라 선인이 스스로 가실 길을 찾아가시는 것이므로 하늘의 뜻에 따르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황진이의 출생이 신비롭게 전해지듯 임종에 대해서도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몇 가지 문헌에 그의 유언이 전해진다.
- 유몽인(1559년~1623년)의 <어우야담>에 보면,
"나는 생전에 화려한 것을 좋아했으니 죽은 후에는 산에다 묻지 말고 대로변에 묻어주세요."
- <성옹지소록>에 보면,
"내가 죽으면 곡을 하지 말고 상여가 날갈 때는 북이나 음악으로 인도해주세요."
- <숭양기구전>에 보면,
"나로 인하여 천하의 남자들이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고 이에 이르렀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시체를 동문 밖 개울 모래밭에 그냥 내버려서,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게 해주세요."
하여 황진이의 무덤은 송도 대로변인 장단 구정현 남쪽에 있었으며,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시 판문군 석전리이다. 이곳의 구정(口井)이라는 고개에서는 약수까지 나온다고 한다.
* 황진이의 임종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백호 임제(1549~1587)이다. 평생 황진이를 못내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그는 마침 평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에 들렀으나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길로 술과 잔을 들고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다음의 시조를 지어 황진이를 애도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백호는 결국 파면을 당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게 된다.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내가 이같이 좁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하고 눈을 감았다 한다.
* 화담(花潭) 서경덕(1489~1546)은 평소 인간이 나고 죽는 것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현상일 뿐, 맑고 허허로운 기의 본체는 시작도 끝도 없이 본래 하나라 하였다. 그의 임종에 대해서는 사후(1605년)에 허엽(1517~1580) 등의 제자들이 얶은 산문집인 <화담집>에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 명종대왕 원년 병오년(1546년). 선생 58세, 7월7일 화담의 서재에서 별세하다. 선생은 갑진년 겨울부터 계속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이 날 병이 조금 나아지자 시자(侍者)를 시켜 부축케 하여 연못에 나가 목욕을 한 뒤 돌아와 얼마 후 임종하셨다.
한 문생이 묻기를 "선생님의 지금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선생은 "죽음과 삶의 이치를 내 안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마음은 편안하구나"라고 말씀하셨다. 8월에 화담 뒷산에 안장되었다.
* 끝으로 세월의 무상함과 옛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조 두 수를 감상해 본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헤어 가는고
[ 제1장 황진이, 삶을 말하다, 9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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