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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101)

by 날숨 한호흡 2008. 5. 11.

 

 

 

자신은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다양한 혜택을 입고 있다.

이것마저도 정해진 것일 수 있다.

헌데 이렇게 선택받은 인간이 아닌 보통 사람도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밝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의 혜택을 모든 이의 혜택으로 돌아가도록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길을 알고 그것에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이 자신의 길을 안다고 해서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 길이 그렇게 정해진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해도 불만은 여전히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태 하에서도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을까?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알아가면서 가도록 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이 세상은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이 고민이 큰 효과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효과라도 거둘 수 있어서 이 세상의 걱정 많은 모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밝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내가 금생에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로서 충분하지 않겠는가?

지함은 자신이 이렇게 스승으로부터 배움을 갖는 목적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야할 곳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비로소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무엇인가가 보이고 있었다.

그 빛의 뒤로 저 멀리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온 세상의 모든 이들이 지함이 서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노인도 어린이도 있었다.

여자도 남자도 있었다.

가난한 이도 부자도 있었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있었다.

귀한 사람도 미천한 사람도 있었다.

배운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있었다.

온 세상의 각가지 사람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수 만 마리의 소 떼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들은 무엇인가 공통점이 있었다.

 

퀭한 눈, 때묻고 허우적거리는 손, 신발을 신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한쪽에 걸치고 있는 부르튼 발, 귀해 보이나 무릎이 헤 지고 조각이 떨어져 나가서

그 값어치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비단 옷, 오히려 더 추해 보이게 하는 장신구들,

감지 못해 먼지가 앉은 채로 날리고 있는 머리카락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영혼의 부재였다.

몸을 받았으되 몸을 이끌어 진화시켜 줄 수 있는 혼이 없는 것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금 귀걸이 등을 하여 남보다 무엇인가 나아

보이는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하고 천하고를 떠나 자신의 갈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몸은 있으되 혼이 없어 방향을 상실한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쫓아오는 것이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에 가는 사람의 등을 밟고 오르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의 아수라장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뒤엉키고 서로 밟아 대면서 오고 있음으로

밟히는 그 아래에서는 많은 무고한 인명들이 희생되고 있을 것 같았다.

희생되면서도 왜 희생되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삶도 죽음도, 그리고 그 모든 과정도 전부 생각이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참으로 동물도 저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지함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아왔던 인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천하고 비애를 느끼게 하는 중생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몰려오던 사람들이 지함의 앞을 지나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나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목표가 없이 이리 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끝없이 넓은 벌판을 짐승이 먹이를 찾아다니듯 이리 저리 떼로 몰려다니는 것에 다름 아니었

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 같았다. 목표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이렇게 벌레처럼 보일 수 있다니?

인간임으로 인하여 신보다는 무능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불편함이 없는 영적 생활이 가능

하다고 생각해 왔던 적도 있지 않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저것이 허상인가?

아니면 선화(仙畵)의 일부를 보고 있는 것인가?

 

이 중에는 가끔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어찌 없을 것인가?

내 비록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동안 보아 온 사람들이 꽤 되는 데 저 많은 사람

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리는 모습은 비슷하되 자신이 보아왔던 인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형태는 인간의 모습이되 지금의 형태로 보면 짐승 이하의 모습이었다.

인간의 무리들이 이렇듯 짐승보다 못하게 살아가고 있음은 하나의 비애였다.

아마도 하늘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바로

이러한 모습이리라.

 

이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바로 하늘이 나의 눈을 빌려 자신이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대신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

나의 판단과 식견으로 인간들의 모습이 이렇게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대로 괜찮은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몰라서였을까?

내가 아는 바가 없어서 그렇게 보인 것일까?

정말로 많은 인간들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잘못 본 것일까?

지함은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인간들이 저러한 모습이라면 어떠한 대안이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이들을 어려움에서 구해 준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인가?

아니면 다만 얼마라도 짐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인가?

구해줄 수 있다면,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서 다소라도 가볍게 살아가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떠한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인가?

무엇인가?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마음이 있어도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직 바라만 보고 있는 입장인 것이다.

바라만 보고 있는 입장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저 많은 군중들의 어려움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단 말인가?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짓수로 따진다면 백사장의 모래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이 함께 몰려 있었다.

저 많은 어려움을 어찌 내가 일부라도 덜어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인간의 몸으로 있으면서 수련 중 잠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승님을 비롯한 선인들의 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공부 중인 나의 힘으로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공부를 마치고 합격하여 완전히 선인이 될 수 있다면 그 때는 이들의 애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라 장담할 수 없다.

내 능력으로 무엇을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승님은 가능하실까?

어쩌면 가능하실 수 있으리라.

아니 가능할 것이다.

나는 아직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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