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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99)

by 날숨 한호흡 2008. 5. 8.

 

 

 

개금이 아버지가 다친 절벽 아래 동굴 속에 개금이 아버지를 눕혀놓고

매 끼마다 밥을 두 그릇씩 해 들고 올라가 한 그릇은 산신에게 바치고

한 그릇은 개금이 아버지에게 먹이면서 기도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때 개금이 어머니에 꿈이 한 산신이 나타나 약초를 알려주면서

그 약초를 캐서 상처에 붙이고 즙을 내어 먹이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개금이 어머니는 그 약초를 며칠을

산 속을 헤매면서 구해 다가 개금이 아버지를 치료하였다고 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어쨌는지 개금이 아버지는 두어 달만에

다른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산을 내려온 적이 있었다.

전보다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걸어서 다닐 수는 있다고 했다.

 

그 때 동네 사람들 모두가 산신의 영험한 힘으로 개금이 아버지가 나았다고 하였다.

그 이후 개금이네는 매년 그 때가 되면 그 산으로 올라가 제를 지내고는 하였다.

지금도 개금이 어머니는 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왜 그렇게 그 산으로 가려 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후 다른 집들도 개금이네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속으로 자기네도 다치면

그 곳으로 가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달랐다.

사람의 일이란 것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며,

개금이 모친의 정성이 워낙 지극하여 개금이 아버지를 낫게 만든 것이지

산신보다는 하늘이 도와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 아버지는 사람의 모든 일은 하늘이 알고 계시며

아주 급하여 하늘에 도움을 요청하면 하늘이 도와주시는 경우가 있으나

이러한 것은 가능하면 안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늘이 도움을 줄 때도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연후에

도움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만 한다면

오히려 벌이 내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함은

하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신도 친구를 도와줄 때 그 친구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도와줄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었던가?

지함은 깜짝 놀라도록 깨우쳐지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렇다. 바로 지금 자신이 하늘, 곧 신의 세계, 그것도

완벽 그 자체인 정신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한가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바로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신의 세계, 곧 우주였다.

신의 세계란 것도 인간의 세계와 동일한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음은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신이 된다."

'신'

그것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며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감히 신이 된다는 것은 넘겨다보아서는 안될 성역을 넘겨다보는 것이라고 알아 왔다.

신의 영역은 신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불가능이란 단어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아 왔다.

헌데 자신이 지금 신의 영역을 넘겨다보면서 그 두려움이 점점 엷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인가?

 

'내 안에 존재하는 정신의 세계'

밖에서 신을 찾기보다는 나의 안에서 신성(神性: 신의 본성, 즉 우주)을 찾고

그 신성과 내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면서 나간다면

언젠가는 신의 세계에 들어감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지함은 박수를 칠 정도로 쾌재를 불렀다.

이것이야말로 속전속결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나의 안에 두고 이렇게 밖으로 돌다니?

지척에 길을 두고 지금까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니?

사람이란 너무도 둔하고 미련해서 가끔은

옆에 두고도 다른 곳에서 찾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것 같았다.

신이라면 이러한 실수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므로 이러한 실수를 하는 것이고

그러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 아니겠는가?

신이라면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 가까운 곳에 두고 헤맬 필요가 없 는 것이었다.

 

'신과 인간의 차이'

아주 작은 것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결국은 아주 작은 것이 아주 큰 것과 통하는 것이었으며,

아주 큰 것은 또한 아주 작은 것과 하나인 것 같았다.

이렇게 통하는 그 무엇?

이것을 알고 모르는 것이 바로 신이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신이 되는 길'

그 멀게만 느껴져 왔던 신이 되는 길이 바로 내 안에 있을 수 있다니?

내 안에서 찾아내기만 한다면 나도 신이 될 수 있다니?

진정 금생에 다시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나의 전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전생이 있었음을 알고는 있다.

 

인간세상의 모든 숭고한 가치는 하나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었다.

진리는 하늘과 통하는 것이었으며, 하늘은 인간의 본성과 하나이고

그 본성이 바로 조물주의 뜻이며, 조물주의 뜻이 바로

이 세상을 구성하고 이루어 나가는 근본원리가 아니던가?

그것을 알면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알면 인간들이 쓰는 속어로 도가 텄다고 하는 것 아니던가?

 

그 도라는 말에는 인간세상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상당한 부와 명예를 쌓는 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하늘의 길을 아는 사람이 부와 명예를 갖춘다는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길을 아는 사람이 부와 명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헌데 사실상 인간 세상에서는 인간들이

가장 이루고 싶어하는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인간들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왔다.

 

인간의 우둔함은 수없이 깨지고 나서야 한가지씩 깨달음을 얻어가지 않던가?

이 우주의 많고 많은 진리에 다가서는 길이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가능함에도

인간들이 그것을 모름으로 인하여 멀고도 먼길을 돌아서 오는 것을 많이 본 것이다.

돌고 돌아 올 수만 있다면 그것도 다행이었다.

돌고 돌다가 중간에 멈추어 버리거나 단순한 장애물에 걸려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돌 생각조차도 못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멈추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도의 길, 즉 하늘의 길을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한낱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모한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러한 무모한 시도가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설명하여야 할 것인가?

 

어떠한 인간이 선택된 길을 가고 어떠한 인간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인가?

도의 싹은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도의 싹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인가, 아니면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것인가?

아니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인가?

이 멀고 먼 길을 지금이라도 스승님의 가르침이 없다면 혼자서 갈 수 있을 것인가?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 뿐이다.

그런데 스승님의 힘은 어떤가?

 

'스승님의 힘'

그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신의 힘.

그것도 완벽한 우주 그 자체의 힘이었다.

모든 것을 전지전능케 하는 힘이었다.

자신은, 아니 모든 인간들이 상상치도 못하는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아직 나의 능력은 너무나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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