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여러 가지가 가능할 수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 중에는 상당한 것들도 있을 수 있었다.
상상력의 한계가 존재하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상상력의 한계 이내일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나야 할 것이었다.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아주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상상력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상상력의 한계는 무엇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는 아직 답이 없었다.
이 세계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다면 자신의 능력 역시 무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함은 자신의 상상 능력이 어디에까지 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날개를 아무리 펴도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만 도달하고 있었다.
상상력의 빈곤.
이렇게 생각이 빈곤해서야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으로서의 한계 상 직접 행동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많다.
하지만 인간임으로 생각마저도 이리 말라버렸단 말인가?
생각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몸으로 있다하여 생각마저도 이렇게 가난하다면 무엇으로
선계에 입적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할 것인가?
지금까지 실제로 이루어지기 힘든 모든 일들이
생각만으로는 가능할 줄 알았다.
선화(仙畵)를 보면서, 선계의 일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면서
무엇이든 마음속에서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깊이 사고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 만으로라면 인간으로 있으면서 할 수 없었던 상당 부분이
상상 속에서는 마음대로 될 수 있어야 했다.
생각의 자유,
이것이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절대 자유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
이러한 수련을 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는
바로 마음먹은 것이 당장 실제로 이루어지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완전한
즉사즉작(卽思卽作)의 능력이 함께 하는 세계, 이것이야말로
바로 신의 경지이며, 선인이 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그 근처에도 갈 수 없음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절대적인 자유는 절대적인 능력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능력이 절대적이고 그에 따라 생각도 절대적일 필요가 있었다.
어떠한 조건에도 제한 받지 않는 상상력에 근거한 사고력과
생각하는 대로 모든 일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힘이 뒷받침되는 권리와 그
모든 것에서 우러나오는 자유.
'선계란 과연 대단한 곳이 아닌가?'
아직 본래의 선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였다.
헌데 이만큼 다가 선 상태에서 내가 본 것은
인간의 능력은 아무리 키워주어도 신의 영역을 넘볼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에는 절대적인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괜히 신이 아닌 것이다.
신은 신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신이 된 것이다.
그 신은 선계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신이 있고 그렇지 못한 신이 있다.
선계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신이 바로
정신(正神: 정식으로 신의 능력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 신)이었으며,
선계의 신이 아닌 신들을 일컬어 사신
(邪神: 선계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신)이라고 하였다.
정신들은 선계의 일을 하면서 수련생들에게 무섭게 혹독한 수련을 시키지만
무엇이든 해주려 노력하였으며 오랜 시간을 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성의가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신들은 인간의 작은 재주나 재물마저 거두어가려 하는 것이었다.
사신으로서는 그것도 하나의 절실한 생존수단일 수 있었다.
이 산, 저 산에서 산딸기나 열매를 따먹듯
지기(地氣)를 먹고 살아가면서 점점 천기(天氣)가 있음마저도 잊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의 아주 작은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찾아오는 노인들이나 아낙네들의 신변잡기에 관한 일들을 들어주면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여부와 액운을 피하는 방법 정도를 알려주는 것 등
조촐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능력이 제한됨으로 인하여 해결방법 역시
평범한 인간도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와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란 것이
또한 신변잡기 중에서도 그저 아들 하나 낳는 것, 무릎 아픈 것 낫는 것,
농사 잘 되는 것 등등 신의 입장에서 보면 소소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소박함은 역시 인간들의 상상력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사신들의 힘이란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경우에 따라 상당히 큰 것을 도와줄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간에 판단기준이 달라서
쇠도끼를 달라고 하였으나 금도끼를 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횡재는 인간들이 잡신들에게 굽히고 살도록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사신들은 이러한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면서도 반드시 무엇이든
하다 못해 쌀 조금, 돈 몇 푼이라도 받아내려 하였다.
악조건에 처하여 마음이 약해진 인간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많은 것을 받아내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터무니없는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적도 있었다.
이러한 사신들의 역할은 순간적으로 인간의 고뇌를 해결해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며, 때로는 착한 일도 하였으므로 정신들의 말 한마디면
산지사방으로 사라져서 기(氣)적으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사신들이
그 존재의의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이란 것이 사신들의 수준보다 나을 것이 없지 않은가?
그들만큼도 기의 세계에 들어가 있지 못한 것이다.
기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기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신들만큼 속속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어
그 효력에 대하여 긴가민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문은 신들이 인간들의 요청에 의하여 인간을 지원하였을 때
완벽한 효력 발생에 저해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기란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따라서
마음이 불안하면 그만큼 효력이 적어지는 것이었다.
도와달라고 하였으면 흔쾌히 도와줄 수 있도록 믿어야 하는 것이지
'너희가 도와줘 봐야 별 것 있겠느냐?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그대로 기적으로 전해져서 도와주고 싶어도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의 확신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으며
어떠한 사실에 관하여 가능할 것이라는 인간들의 완벽한 확신이 있을 때는
신들 역시 사력을 다하여 밀어붙임으로 상상할 수 없는 효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때의 일이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년에 개금이 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가서 절벽에서
딸기를 따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내려와야 할 사람이 안 내려오므로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찾아보니
개금이 아버지가 절벽아래에서 등뼈가 부러진 채 다 죽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개금이 아버지를 업고 내려오면서 모두
다친 것이 나아도 곱사등이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헌데 동네사람들에게 업혀서 내려온 개금이 아버지를 본
개금이 어머니는 산신에게 빌면 나을 것이라고 믿고
개금이 아버지를 업은 채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개금이 어머니의 생각은 다친 곳에 반드시 약이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개금이 아버지가 다친 그 장소에 약이 있을 것이며
약이 없다면 산신에게 빌어서라도 낫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의원에 가 볼 것을 권유하며 말렸지만
개금이 어머니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1. 선계수련 교과서 > 소설 선(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仙 (100) (0) | 2008.05.09 |
---|---|
소설 仙 (099) (0) | 2008.05.08 |
소설 仙 (097) (0) | 2008.05.04 |
소설 仙 (096) (0) | 2008.05.03 |
소설 仙 (095) (0) | 2008.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