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없으면
그것이 곧 움직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세상은 움직임이 있는 세상과 움직임이 없는 세상의 둘로 구분되는 것일까?
'동계(動界)와 정계(靜界)'
이 두 계가 상호 주고 받으면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세계.
이 두 계를 번갈아 가면서 오가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까?
움직임으로 움직이는 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
움직임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
동계와 정계를 넘나들며 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우주의 이치를 지함은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표현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무엇인가 확실히 잡히지는 않지만
안개 같던 그 실체가 조금 씩 조금 씩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었다.
무엇인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풀릴 것 같았다.
'파장'
"그래, 바로 파장이었어."
알고 있었던 말이었다.
그 말이 다시 한 번 피부에,
머리에,
가슴에,
단전에 와 닿았다.
죽어있던 단어가 살아나서 날뛰는 것 같았다.
그 파장이라는 단어가 단전으로 들어가 한바퀴 휘감아 돌더니
다시 솟구쳐 상단을 통하여 백회를 치고 나가 끝없이 하늘을 향하여 뻗치다가는
다시 돌아 내려와 순식간에 직하 방으로 내려꽂히고 있었다.
온 몸이 파장이라는 단어의 느낌을 받아들인 이후
모든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느낌의 기운이 이제는 사방으로 돌아 치며
기의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지가 요동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 몰려오는 것이 있었다.
기운이었다.
사방에서 기운이 몰려들었다.
엄청난 기운의 소용돌이가 지함을 둘러싸며
순식간에 주변을 메우고는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러나 날려갈 듯 매섭게 보이는 그 기운의 소용돌이가 마치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이럴 수가! 그 엄청난 기운의 소용돌이가 어찌 이렇게 부드럽게 와 닿는단 말인가?'
"하하하하......"
스승님의 웃음소리였다.
이제껏 처음으로 들어보는 천지를 울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스승님의 웃음소리는 기 바람을 순식간에 잠재우고 있었다.
주변이 온화해지며 기운이 가라앉고 있었다.
고요해진 가운데 전보다 한결 밀도 높은 기운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공기 속에 있다가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달라진 주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위로 기운이 연결되고 그 기운이
몸의 사방을 통하더니 온 몸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온 몸이 기운으로 엮여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이 가벼워졌다.
"이제 첫 번째 문제를 풀었구나. 모든 것이 공부인 줄 이제야 알았더냐?"
지함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문제를 풀다니?
이것이 문제였단 말인가?
미처 이런 상황에 대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지함은
스승에게 무엇이라고 답변을 하여야 할지 몰랐다.
선계의 공부가 진전되어 가는 것인가?
나의 공부가 이제 첫 번째 단계를 넘어가기는 넘어간 것인가?
단계란 것이 이렇게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인가?
하지만 스승님께서 첫 문제를 풀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스승님께서 풀었다고 하시면 풀은 것이 아니겠는가?
대답을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예. 스승님."
지함은 스승의 음성이 전해지어 온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 지함을 기운이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있을 때 사람들이 팔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는 것과는 달랐다.
일어서기 좋도록 전신을 아주 부드럽게 들어올리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었다.
기운의 움직임이 초정밀기계의 움직임처럼
아주 미세하고 편안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일으켜 세우다가 기운이 과하여 들어올리는 등의 일은 없을 것처럼
거의 일어서지 않았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것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스승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공부가 쉽더냐? 어렵더냐?"
"...... 어려운 것도 같고 쉬운 것도 같습니다."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쉽다고 생각되더냐?"
"모두가 어렵고 모든 것이 쉬운 것 같사옵니다."
"쉬운 것은 없다.
어찌 인간의 몸으로 별로 연륜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쉬운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
쉽게 느꼈다면 그것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니라."
"어려움을 몰라서 쉬운 것으로 느낀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 어려움을 몰라서 쉬운 것으로 느꼈을 뿐 공부에 쉬운 것은 없다."
그런 것 같았다.
문제를 알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어려운 것을 모르면
쉬운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공부에 대하여 깊이 몰라서 그러한 생각을 한 것 같사옵니다."
"쉽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쉽게 대할 우려가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느니라.
어떠한 문제든지 최선을 다하여 풀어 볼 수 있도록 하라."
"예."
지함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야 함에도
작은 문제에 대하여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음을 회상하였다.
생각이 중요하고 생각만으로 모든 것이 조정되는 이 곳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다니?
'그래. 지금까지 선화(仙畵)를 보아 오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온 적이 있었어. 선화의 위력을 몰랐던 거야.'
선화는 수련에서 교재로 사용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였다.
참으로 심상치 않은 기능을 가진 도구를, 아니
속계의 모든 일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갖춘
중앙통제실의 컴퓨터와 모니터의 통합제품* 같은 기능을 가진 선화를
그림인지 아닌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외적인 면만 보아온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유사한 것을 든다면 NASA의 통제실 화면
헌데 자신이 생각하는 일들이 선화 속에서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의식을 집중하여 한 것도 아니고 잠깐 생각한 것이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생각을 함에 있어 사소한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우주에서 놓쳐도 되는 사소한 일이 있었던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지함은 등골이 서늘하게 아차 싶었다.
그렇다.
우주에서는 작은 것이 큰 것이고 큰 것은 곧 작은 것이었다.
작은 것과 큰 것이 구별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호간에 통하는 면이 있어 양극단의 것들이 하나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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