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라......
아니 솜이 아니라면 어떤가?
솜이건 아니건 들어올리면 그뿐 아니던가?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변하였으며,
이 세상이 변화한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좋다. 한 번 들어 올려보자.'
지함이 생각을 끝내자마자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바위가 들어올려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움쩍거리기만 하던 바위가 점점 들어올려지는 것이었다.
마치 뽑히듯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큰 바위였다.
'얼마만큼 들어올려질까? 사람 키 높이만큼 들어올려질 수 있을까?'
지함이 그렇게 생각하자 그 큰 바위가 지함의 머리높이까지 들어올려지는 것이었다.
들어올리고 나서 보니 상당히 큰 바위였다.
땅 아래에 묻힌 부분이 훨씬 더 큰 바위였다.
'세상에. 이런 바위가 들어올려지다니?'
인간의 힘으로는 장정 수 백 명이 들어올려야 가능할까 말까 할 정도의 큰 바위였다.
들어올리고 있음에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지금 손으로 든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든 것이다.
마음으로 들었음에도 이렇게 가볍게 들리다니......
그렇다면 마음으로 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 들 수 없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서서히 내려놓아 보자.
하지만 서서히 내려놓고 말고도 이제는 내 마음이 아니겠는가?
내가 내려놓고 싶으면 내려놓고, 싫으면 안 내려놓는 것이다.
지금의 기분대로라면 이대로 바위를 들고 어디로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으로 있을 때의 모래 한 알 정도의 무게로 다가 온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무게라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개 정도가 아니고 아마도 100개 이상 들 수도 있을 것이다.
100개라면 아마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바위 하나가 이렇게 가벼운데 모래알 100개를 들지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한웅큼을 잡을 정도의 힘이라면 모래알 100개 이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 있을 때는 그것이 대단한 힘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하나의 일일뿐이었다.
일도 일 같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것으로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곳도
시험하는 곳도 아닌 것 같았다.
'시험을 하다니?'
지함은 자신의 생각이 가벼이 미친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을 가벼이 하다니,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나의 심지를 시험하는 일일 것이다.
스승님께서 아니 선계에서 자신이 우주의 일원으로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아닌가 시험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모든 것은 시험이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것이 바로
나의 한계를 알아보시려는 스승님과 하늘의 뜻인 것이다.
수련이 시작되고 나서 줄곧 그랬다.
모든 것이 접시 바닥처럼 들여다보이고 있음을 종종 잊는 적이 있었다.
지금 모든 것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속일 수 없이 들여다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겁이 날 것이다.
하지만 나의 현재는 그럴 수 없이 마음이 편한 상태이며
이렇게 편안한 상태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능력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고 있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니고 나는
단지 마음을 빌려 드리고 있을 뿐 나의 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함은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나의 능력이 아니지만 내가 빌려 받은 이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을 것인가?'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 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계속 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스승님께서 나에게 어떠한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러한 능력을 잠시 빌려주신 것은 아닐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번에 바위를 들어올리면서 자신이 한 행동은 잘못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의 행동을 시험하신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꼭 바위를 들어올리는 것만이 시험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것으로 시험이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
선계의 일원으로 등록될 때까지 시험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끊임없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지금 선계의 일원이 되기 전에 이러한 능력이 주어졌으며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나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선인이 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어찌 할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시험이 무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견딜 만 할뿐더러 해볼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만한 시험만 올 것인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시험과 어려운 시험이 함께 올 것이다.'
지함의 생각은 맞았다.
시험이라는 것이 꼭 쉬운 것이라면 그것은 시험으로서의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수련 이후 모든 것이 항상 마음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몸을 시험하는 것이나 어떠한 능력을 시험하는 것보다
겪어 넘기고 답을 찾아내기에 너무나 힘든 것임에는 의문이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시험받는다.
그것도 이제 겨우 내 나이 일곱 살에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인가?
하지만 스승님은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세상은 일곱 살이면 모든 것의 기준을 세울 정도의 틀은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보고싶으신 것인가?
인간으로서 내가 일곱 살에 스승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금생에는 아무래도 단단히 시험에 든 것 같았다.
이렇게 일견 편하면서도 호된 시험은 지금껏 없었다.
하지만 이 시험은 선계와 일체가 될 수 있는 자격 여부를 시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본 시험에 들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여부를 시험받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견학을 마치고 예비시험을 성공적으로 본 이후 나의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될 것인가?
지함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이 움직임에 따라 물질이 움직이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이 물질이란 것이 어디에까지 존재하는 것인가?
모든 물질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존재하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지 않겠는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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