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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92_093)

by 날숨 한호흡 2008. 4. 22.

 

 

정심이란

모든 수련의 시작단계에서 기운을 세울 자리를 정하고

그 자리에 기운을 쌓아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이 정심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적으로 일취월장하여도 나중에는 사파(邪派)로 클 수는 있을지언정

정파(正派)로 성장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수련으로 들었다가 올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중도에 접고 마는 상당수의 수련생들은

사파의 꾀임에 빠져 결국 그곳으로 가버리고 마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던가?

수련과정에서 정심을 세우지 못하고

끊임없는 유혹에 휩쓸려 무릎을 꿇은 결과는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 결국 자신을

영원히 건지지 못할 곳으로 밀어 넣고 마는 것이었다.

 

정심을 세우는 것은 수련 중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므로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여부는 미리 시험에 들게 함으로서

장차 수련단계가 높아졌을 때 어긋남이 없도록 하고자

모든 스승들이 상당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었다.

 

제자가 사파의 길로 들어선다면

그 제자의 스승까지도 결국은 함께 영향을 받아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선맥(仙脈)이 흐르는 과정에서

한 제자, 한 제자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정파와 사파는 엄격하게 구분된 채

상호간에 이렇다 할 접근이 없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상대방의 영향을 서로 의식하고 있었다.

정파의 영역과 사파의 영역이 함께 존재함으로

기적으로 강한 집단의 영향을 받도록 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선계는 정파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우주의 모든 만물이 정상적으로 진화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진화의 과정에서 어긋나는 것은 사파의 경지로 추락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것은 본인의 정심에 대한 의지가 박약하여 발생하는 일로서

선계에서도 어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계(邪界)의 존재는

선계로서는 일면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깨닫지 못한 모든 영체들이 전부 선계의 일원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계의 일원들도 진실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시 선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일면 선계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계에 들어갔다가 깨달음을 얻어 다시 선계로 나올 확률은

천만 분의 일 이하로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따라서 어떻게든 선계에서 진화하고 진화를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계에서 머무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수련과정에 든 사람들의 목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계란 상당한 기적 진화가 가능하기도 하였으나

인간으로 있을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유혹에 밀려 타락하는 경우에는

더없이 충격적인 퇴보의 길을 걷도록 되어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지상으로 내려온 선인들의 경우

인간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길을 다시 찾고 그것으로부터 발전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싸움이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더 없는 혜택이기도 하였다.

 

지함은 아직 이것이 정심의 기초를 시험하는 것이며,

이 정심이 우주심이고 이 정심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정심의 중요성과 그 시험단계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있었으나

이것이 혹시 정심의 기초단계로 들어가는 시험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을 할뿐이었다.

사람의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라고 배웠다.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하늘이 굽어 살펴주실 것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짧은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도 인간 세상의 일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착하디 착한 사람이 너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많은 피해를 주면서 출세를 하고

돈을 끌어 모은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잘 사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어려서 잘은 모르지만 이 세상은 무엇인가 불균형적인 부분이 많았다.

하늘이 있다면 착한 사람이 잘 살고 악한 사람이 잘 못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헌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왕왕 보아오지 않았던가?

삼룡이네만 해도 동네에서 착하기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아니던가?

세상에 그렇게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착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었다.

온 가족이 땅 한 평 없이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아 살아가고

옷 한 벌 변변히 없어 무릎이 나오면서도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끊어지지 않는 집이 아니던가?

그런 집에 항상 우환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삼룡이 아버지가 왕망이네 지붕을 이어주다가 떨어져서

허리를 다쳐 집안에 들어 누워 서너 달을 꼼짝 못하고 앓아 누워 있었던 것하며,

삼룡이 어머니는 또 어떻던가?

매봉이네 집에 일해주러 갔다가 매봉이 어머니로부터

금반지를 훔쳐갔다는 누명을 쓰고 매를 맞아

며칠을 일하지 못하고 집안에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오해가 풀리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삼룡이 또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매를 맞는 일이 다반사여서

매일 머리나 얼굴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고는 하였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덩치도 작은 편이 아니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무엇이 삼룡이를 그렇게 힘이 없게 만드는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다른 집안에 비하여 유독 그 집안만 우환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하늘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비교적 머리도 영리한 것 같아 보였다.

 

거기에 비한다면 매봉이네는 어떤가?

매봉이는 지함보다 한 살 위이기는 하였으나 머리가 매우 나쁜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하여는 나빴으나 나쁜 행동을 하는 쪽으로는 상당히 발달하여

자기네 집이 잘 살면서도 남의 물건을 빼앗는 일이 다반사라거나

툭하면 다른 아이들을 때려서 맞은 아이들의 부모가 매봉이네 집에 가서 항의라도 할라치면

매봉이 어머니가 길길이 뛰며 오히려 매봉이가 맞았는데 그런 소리를 한다고

더욱 난리를 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사람이 사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매봉이네는 집안 전체가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지만

재산이 많아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으며, 남의 안목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나만 잘 살면 그만이었다.

옆에서 누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나는 털끝 하나 아파도 안 되었다.

재산도 인근에서는 가장 많아 아마 자신이 알고 있는 동네들을 통 털어도

그 중에서 제일이 아닌가 싶었다.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매봉이네가 엄청난 부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외갓집에 갔을 때도 그 동네에는 매봉이네 집만큼 큰집이 없었다.

그래서 지함은 외갓집 동네 애들에게 우리 동네가 더 부자라고

매봉이네를 업고 자랑하고 오지 않았던가?

 

이 동네에서 산에 땔감을 해오려면 매봉이네 산이 아니면 갈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매봉이네 산지기들은 위세가 대단하였다.

동네처녀들이 나물을 캐러 가면 희롱을 하거나

산에서 애써 뜯은 나물을 뺏어 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매봉이네 산이므로 사람들은

아무 소리 못하고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모이면 매봉이네 욕을 하면서도

매봉이 아버지 앞에서는 괜히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하지 않던가?

나름대로 바른 말을 한 소리한다는 달식이 아버지도

매봉이 아버지 앞에서는 그저 시키는 대로였다.

 

일전에는 매봉이네와 달식이네 밭 사이로 길을 새로 내야 한다고 하였을 때

매봉이네 밭이 훨씬 크면서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아

달식이네 밭으로만 길을 만들고 만 적이 있었다.

이 때도 달식이 아버지의 평소 성격 같으면

한 마디 하였을 것인데 아무 말 못하고 만 적이 있지 않던가?

어쨌든 매봉이네와 부딪치면 아무 말 못하거나 안 하는 것이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관행과 같이 굳어져 있었다.

전에는 사또도 매봉이 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었으나 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매봉이네가 공출을 하지 않아 관헌들이 매봉이네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하였으나

사또가 직접 오면 준다고 하자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하던 사또가

중앙에 바칠 뇌물이 필요하였던지 매봉이 아버지를 만나 사정을 하였다는 말이 있기도 하였다.

설마 그렇기야 하였을까마는

하여튼 매봉이 아버지의 힘은 대단하였다.

그 힘이 매봉이 아버지의 재산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매봉이 아버지가 그 재산을 관리할 만큼 능력이 있다고 보아지는 면이 있었다.

지함이 태어나기 전에는 매봉이네가 부자이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부자는 아니라고 하였다.

헌데 매봉이 아버지가 당대에 재산을 두 배 이상으로 불려놓은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매봉이네 먼 조상이 대감을 지냈다는 말이 돌고는 있었으나

집안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워낙 양반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믿을 만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매봉이네를 보면 인간의 도리로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럼으로 인하여 더욱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선한 사람은 못살고 어느 정도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보다

더욱 잘사는 일.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모두가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악과 빈부는 반드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도 아니라면 금생의 선악은 내생에 평가되는 것인가?

......??????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결정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결정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알 수만 있다면 괜한 노력을 하지 않고 편안히 살아가도 될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는데 불필요한 노력을 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알면 인생에서 발전의 여지 또한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매봉이네가 큰소리 치는 것은 재산 때문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매봉이 아버지는 재산이 없어도 결코 기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한 경우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철면피라면 철면피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이로운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다른 집안 사람들 같으면 체면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체면이 없었다.

배가 고프면 남의 입에 들어가 있는 밥이라도 빼앗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재산을 끌어 모은 매봉이네는 동네에서 가장 큰소리치며 살고 있지 않던가?

동네사람들에게는 매봉이 아버지가 심장에 털이 났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였다.

체면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굶고 말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이미 그러한 것을 초월한 사람들이었다.

 

먹고 살 길이 없는 집이라면 그래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은 인근에서 가장 재산이 많기로 소문난 집인데도 그러했던 것이다.

가히 전투적인 재산 모으기를 하고 있는 집안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존경스러운 한 면이 있었다.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본다면 참으로 본받아야 할 일이기도 하였다.

헌데 이러한 것의 결론은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는 것이다.

물론 매봉이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어떤 동기로 피맺힌 어려움에 한이 서린 나머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악을 쓰면서 살아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한편 삼룡이네가 그렇게 살게 된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삼룡이네를 말해서 그렇지 반드시 삼룡이네만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착해서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면서

남이 어려우면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생활이 어려운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선과 악은 반드시 부귀와 명예로 보상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하늘의 입장에서는 별개의 단위로 운영되는 것일 수 있었다.

가만히 보면 선에는 부귀와 명예가 따르고

악에는 빈과 불명예가 따르는 것이 아니며

선도 빈과 무명예를 가지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빛날 수 있으며,

악도 부귀와 명예로 악의 실체가 더욱 드러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관점이 아닌가 싶었다.

 

모든 것에서

자체 평가시스템이 가동되도록 구성하는 것 또한 하늘의 규칙이었다.

인간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선만으로 구성되었다면 오히려 공부가 되지 않았을런지도 몰랐다.

악만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러한 인연이 없었을 것 같았다.

인간이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선행을 한다면

그것이 선행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선행의 기준은 하늘의 기준인가?

인간의 기준인가?

내가 도움을 준다고 한 일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잘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판단이 되지 않을 뿐,

하늘의 입장에서는 판단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공과가 구별이 되기는 할 것이나 애매한 부분이 여기 혼재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의 힘으로 판단이 되는 것이며 일부 아주 적은 부분이

하늘이 판단하여야 할 부분인 것 같았다.

 

그렇다.

하늘만이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은 무엇에 필요하겠는가?

지함은 하늘의 오묘함에 대하여 내심 감탄하였다.

어디에도 허점이 없어 보였다.

주변의 어디를 돌아보아도 감히 하늘이 만들어 놓은 그물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행동들이 저곳에서 심판을 받고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의 그물은 빈 구멍이 많아 보여 죄를 짓고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나 죄를 짓고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 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못하였는가에 대한 것을

한번쯤 스스로 검토해보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님께 모든 것을

전부 잘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모든 것을 전부 알지 못하는 바에야 다 잘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잘못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이러한 것을 느껴보는 것이 이번 공부의 목적인가?

지함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번개보다 훨씬 빠른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사방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많디 많은 생각들이 어디에 있다가 수련을 시작하자 나타난단 말인가?

대개의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 중의 하나는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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