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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86)

by 날숨 한호흡 2008. 4. 11.

 

 

 

전에는 모든 것이 들여다보였었다.

헌데 지금은 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읽을 때와 못 읽을 때의 차이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게 되자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해져 왔다.

인간의 마음을 읽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기운의 흐름을 읽느냐, 못 읽느냐의

차이인 것 같았다. 이 차이가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공부의 위력인가? 기로 인한 것인가?'

지함은 현재의 자신이 스스로 신의 경지에 올라 지금까지

타심법을 행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신의 경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며 감히 아직 인간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한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시험인 것이다.

신의 경지를 앞에 두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심성을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신의 경지에 들었음을 착각하고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다면

엄청난 벌칙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막동이와 서당에서 공부하는 장면 하나를 가지고서도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한 장면에 국한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모든 일에 연장되는 것이라면 자신은 지금 어떻게 하여야 한단 말인가?

백척간두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이 보였다.

지금 나는 홀로 판단하고 홀로 결정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나의 판단결과에 대하여 누구에게 미룰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스승님조차도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도움을 주실 수 없을 런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정심(正心)으로 깨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정심'마음을 바로 가지고 모든 사안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도 오직 진검 승부만이 존재하는 선도의 세계,

즉 선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마음 한 조각, 한 조각이 그대로 책임과 연결되는 이곳의 법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나의 일인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리라.'

지함은 스승이 의도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의 길은 혼자 갈 수밖에 없고, 결과에 대하여

혼자 책임질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려 하시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정리되고 있었다.

선화가 접어지고 그 뒤로 끝없는 산과 바다,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아 - .'

산과 강, 나무, 풀들이 어루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넓다.'

끝이 없다는 것이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던가?

너무나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끝이 없이 펼쳐져 있는 저 넓은 자연으로 무슨 일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걱정할 정도로 들판이 넓고 산이 많고 나무가 많았다.

강줄기 또한 엄청난 폭포를 이루고 떨어져 내리는가 하면 끝없이 넓고도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대자연'

과연 대자연이었다.

대자연이란 이러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함이 지금까지 보았던 자연은 이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맑거나 구름이 흘러가거나 아니면 눈비가 내리는 하늘과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땅, 가끔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지기도 하고

누구네 논과 밭이 떠내려갔다는 소식이 들리고는 하는 자연이었다.

나무들도 전부 싱싱하게 크는 것이 아니고 잘 크지 못하는 것도 있고,

도중에 말라죽는 것도 있으며 풀들 역시 동일하였다.

아마 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풀과 나무들도 말못할 어려운 사정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라고 어찌 때맞추어 비가 오고 햇살이 비치기를 원치 않을 것인가?

어찌 풀과 나무들뿐이랴?

 

천지 만물이 모두 이러한 나름대로의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 역시 건강한 사람도 있지만 병에 걸려 앓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어딘가 이상이 있어 시름시름 아픈 사람도 많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도 있지 않은가?

오래 산 노인이라고 모두 건강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며,

갓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해서 전부 건강한 것도 아니었다.

남녀 노소가 모두 종류가 다를 뿐 걱정거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 걱정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 뿐 말목이 아버지도,

건성이 할아버지도 사랑채에 모여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으면 모두 나름대로 걱정이 있으시지 않던가?

말목이 아버지는 일전에 도박을 하다가 그나마 있던 땅마지기마저 넘어가게 된 모양이지만

말목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었고, 건성이 할아버지는 전부터

콜록이던 해소가 도져서 요즈음은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자신 역시 무엇인가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먹고사는 것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무엇인가 어른이 되어서 하여야 할 일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는가?

항상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문득 걱정이 떠올라 생각에 들어보곤 하지 않았던가?

이곳의 자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우선 완전성이었다.

모든 것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완전하다는 것이었다.

어디에도 병이 들거나 말라붙은 것이 없었다.

잘 크지 못한 것도 없었다.

작은 나무이건 큰 나무이건 전부 잘 크고 있었다.

길가에 풀 한 포기마저도 너무나 아름답게 크고 있었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기 발랄하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말고 고운 모습일 수 있을까 싶게 맑고도 고왔다.

어느 하나 잡티가 없었다.

 

틀림없이 이곳에도 풀을 먹고사는 벌레들이 있을 것이고, 그 벌레들이 먹은

잎새들이 있을 것인데 벌레가 먹은 잎새가 없었다.

그렇다면 벌레들이 무엇을 먹고산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벌레를 본 적이 없지 않은가?

나비도, 파리도, 모기도 없었다.

애벌레도 없었고, 짐승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식물들만이 우거진 곳이었다.

이러한 곳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지상에서는 동물과 식물이 어루어져 생활하고 있지 않았는가?

 

스승님께서는 동물과 식물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서로 발전하여 나가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헌데 이곳에서는 아닌 것이다.

그 말씀은 지상에서만 해당되는 것인가?

조금 더 가보면 어떨까?

지함은 조금 더 앞을 보았다.

앞을 보려 생각하면 저절로 앞이 보였다. 몸이 갈 필요가 없었다.

십리 앞을 보려고 생각하면 10리 앞이 보였으며, 100리 앞을 보려고

생각하면 백 리 앞이 보였다.

한참 멀리 앞을 보자 저 만치에 무엇인가 날아다니는 것이 있었다.

 

'무엇일까?'

조그만 곤충이었다.

아주 작은 곤충이면서도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생긴 것은 곤충인데 그냥 벌레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풀과 나무들도 그러한 것 같았지 않는가?

무엇이 다른 것인가?

곤충이되 우주의 일부로 생각되는 것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각자 존재하는 것 같으나

그것이 우주의 일부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우주의 일부'

아직 자신도 스스로 우주의 일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헌데 이 한낱 미물과 같은 것들이 우주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다니?

어쨌든 지금 모든 의문을 풀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 인간의 몸으로 있는 나는 계속 공부를 하면서 풀 수 있고 풀어야 하는 의문들인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신의 뜻이 배여 있을 것인데 어찌 그 깊은 뜻을 전부 알 수 있을 것인가?

 

자연은 곧 하늘인 것이다.

자연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인간 아니겠는가?

지함은 이곳에 와서 보고 대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하찮게 보이는 풀과 나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벌레들까지도 자신의 일이 있었다.

그 자신의 일이 곧 우주의 일이었다.

나의 일은 오직 나의 일뿐인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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