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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81)

by 날숨 한호흡 2008. 4. 5.

 

 

 

'우주.'

그 우주 안에 모든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승이 되려면 이렇게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구나.

나는 제자가 되기에도 부족한 정도로 조금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승님의 색깔은 검정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헌데 나의 원은 회색으로 조금 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방법도 없다.

그저 열심히 배울 뿐인 것이다.

스승의 원을 보기 전에는 나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헌데 지금 보니까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쩔 것인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함은 모든 것이 판단되지 않았다.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현실이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다.

하지만 손등을 꼬집어보니 감각은 여전하였다.

분명히 현실인 것이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가능하다. 가능한 것이다.'

이곳은 생각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스승님의 경지에 오르는 것 역시 생각만으로 가능하지 않겠는가?

좋다.

해보자.

생각으로 스승님의 경지에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함은 과연 일정한 정도의 수련을 하지 않은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해도 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다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수준이 스승의 경지를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음은 분명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스승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걸어가지도 못하면서 날아가고 계시는 스승을 따라 잡는다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느 수준의 생각을 하는 것이 불경죄에 해당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수련정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일까?  

 

가만히 자신의 수련정도를 되돌아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이라고 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상의 시간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상의 시간을 이곳의 시간에 비교한다면 지금은 이곳에 온지 많이 되어도

하루 이상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이 해가 뜨고 지는 곳이 아니면서도 언제나 밝아 항상 해가 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 해가 있는지 모르는 곳인지라 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지상에 있을 때는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짐작하였으며,

이것이 자신의 일과시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잤으며, 모든 일과를 해에 맞추었다.

헌데 이곳에서는 도저히 언제 잠을 자야 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직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어 피곤할 때는 쉬어야 할 것으로 생각됨에도

아직 피곤한 기색을 느낄 수가 없었다.

피곤함을 느낄 수 없다.

 

금강불괴가 되는 것인가?

다치지도 않고, 다쳐도 금방 나으며, 영원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금강불괴?

전설 속의 그 단계로 자신이 다가가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이 가능할 런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으로서의 역할은 어찌 되는 것일까?

인간은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다.

그 제한된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숨가쁘게 뛰도록 만들어놓는 것이다.

시간도, 장소도, 체력도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정해진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여야 하는 것이다.

 

헌데 지금 무한대의 세계로 가려하고 있다.

아직 인간의 습성이 남아 있어 일정시간이 되면 쉬어야 하고, 그 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일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 쉬는 시간이 많아 인간의 삶 중에서 정말로 일하는 시간,

수련하는 시간은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 한계를 벗어나는 일은 잠자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인데 인간이란 구조상 그러한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습관으로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가만히 돌아보면

자신에게 피곤함은 없는 것이다.

움직이면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힘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세히 느껴 보면 평소의 힘이 남아돌 때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힘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의 원천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힘이 들어온다?'

나의 몸 어디로 들어오는가?

전신으로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스며들어오는 량을 보면 자신이 사용하는 만큼의 기운이 들어와 기운이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주는 것 같았다.

이것이 선계인가?

선계의 기운은 어디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주는 것일까?

나만이 그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동일한 조건하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헌데 기운이 오는 방향이 있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때로는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기운은 어디에서 누가 보내는 것일까?

스승님 말고는 나에게 기운을 보내주실 분이 안 계실 것이다.

그럼에도 사방에서 기운이 오는 것을 보면 누군가가 기운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운이라?'

지함은 모든 새로움이 금방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가옴을 알았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상황만 해도 인간의 상식으로는 당장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는 것이었다.

어려움이라.

벌써 답이 잘 나오지 않는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이 인간계의 일들과는 다른 것이다.

이 다름을 다르지 않게 생각할 수 있기 전에는 그 다름으로 인하여 많은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

우주가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라면 나의 생각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나는 아직 생각이 많이 미숙하다.

그 미숙함을 그대로 지닌 채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부족함을 현실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런 지도 모른다.

지금도 자신은 모든 것을 우주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지구적으로 생각함으로서

그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어

나름대로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고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기운이 부족해지는 즉시 채워지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일 런 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보다 큰 것들이 생각의 차이로 나타날 때는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이것을 소화해내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고 있지 않은가?

이것보다 더욱 큰 차이가 있는 경우라면 자신이 겪어야 할 적응기간은 더 걸릴 것이고

그만큼 자신이 우주화 함에 걸리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욱 큰 차이는 무엇일까?

허나 그것을 생각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은 생각하는 그대로 순간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선계를 더듬어 본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많은 기운상의 오차를 발생시킴으로서 다른 선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지함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인에 가까운 인간이 되고 나서

선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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