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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82)

by 날숨 한호흡 2008. 4. 7.

 

 

 

현재의 능력으로는 자신이 선인이 되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가능하고 어떻게 하면 불가능한 부분이 아니라 전혀 불가능한 부분인 것 같았다.

감히 생각을 하여서는 안될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우주가 되려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우주를 많이 보고 배워서 우주의 느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계속 선화를 보고 노력함으로 가능할 것인가?

일정한 부분은 가능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모두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나의 능력으로는 아직 역부족인 것이다.

어쨌든 선화를 보면서 계속 우주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중에 우주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차이가 없을 때

다시 선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지금 자신이 처한 단계에서는 더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열심히 수련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련을 어떻게 열심히 할 것인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수련인가?

아닌가?

수련의 준비단계인가?

수련이란 것이 가만히 앉아서 숨을 쉬며 선화를 아니 선경을 바라보는 것만이 수련인가?

아니면 나의 일을 하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수련이라?

아직은 모든 것에서 부족함이 많아 수련에 대하여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는 것은 방법에 관한 것일 것이다.

방법이라면 차차 연구해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목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련의 목표는 선인이 되는 것일 것이다.

 

선인이라?

'선인.'

선인이 된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인으로서 하여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을 것이다.

이 넓디넓은 우주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인가?

아무리 선인의 능력이 무한정 하다고 하여도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고,

그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할 하급 선인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게 누구일런지는 모르지만 우주에서라고 허드렛일을 높으신 분께서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서 높으신 분이라면 수련 정도가 높은 분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 수련정도는 또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

이러한 모든 물음에 대하여 막히지 않고 답을 구해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다음에야

누구에게 수련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수련에 대하여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지함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본격적인 수련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질문은 수련과정에 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관문과 같은 것이었다.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수련과정에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질문은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을 놓는 것과 같아 이 질문 단계에서 확실한 답안을 구해내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수련이 제대로 진전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질문이야말로 수련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마치 출발지점을 모르고 어디로 가겠다는 것과 같아

목표설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수련생들이 이러한 것을 모르거나 알고도 이 과정을 스승에게 인가 받지 않고

나름대로 판단하므로 평생 수련을 하고도 결과가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 불행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수련에 대한 부분은 일단 입구에 와서 선생을 만난 이상 절대로 본인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지함은 자신의 위치를 자신할 수 없었다.

이 수련이란 것이 얼마만큼 해야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을 뿐더러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제 수련을 막 시작했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었으나

수련의 전 과정을 알 수 없는 지함으로서는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것은 수련과정에 들어오면서 지속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한 번 풀고 나면 자신이 많이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는 항상 더 어려운 질문에 부딪쳐 헤매고는 하였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은 다른 질문과는 그 강도가 달랐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의문이 뭉게뭉게 올라왔을 뿐 아니라

현재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도 자신이 없도록 만들었다.

 

내가 지금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 일을 하려고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내가 원해서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헌데 막상 닥치고 나니 알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것이다.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수련이란 것이 이렇게 모르고 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확실히 알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 어느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알고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라는 것이 계단을 올라가듯이 구분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무 자르듯 구별이 되지 않고

가다보면 어느새 다음 단계에 와 있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모든 것이 알 듯 모르듯 안개 속을 헤매게 하는 것이었다.

 

수련과정에서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한 경우와 필요치 않은 경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스승의 가르침 없이 혼자 수련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였다.

이 어려운 수련을 어찌 혼자 할 수 있을 것인가?

쉬운 듯 느끼면 바로 어려운 고비가 오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그 뒤에는 쉬운 고비가 오는 것 같았다.

지금만 해도 선화를 보는 듯 시작한 것이 현실과 하나가 되고

그 현실과 그림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키다가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어

이렇게 다시 수련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똑바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을 돌고 돌아서 온 것 같은 것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는 기력의 낭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방황을 하지 않고 바로 가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이 곧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것 아닌가?

허나 스승님께서는 바로 알려주시지 않고 항상 겪을 만큼 겪어야 알려주시지 않던가?

모든 것이 쉬운 것이 없다.

그렇게 쉽다면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특히 이 수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 많은 선인들이 지상에 내려왔다가 갔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분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누구나 다 원하고 가고 싶어하는 선계이지만 누구나 갈 수 없음은

이 수련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지함은 가고 싶었다.

왠지 가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더욱 드는 것이었다.

이 길은 나의 길만은 아닌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하여 닦아놓으신 길인 것이다.

어떠한 길을 닦아놓으셨는지 잘은 알 수 없으나 그 길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자신의 오늘이 있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분들이 계심으로 인하여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반드시 선인이 되어 그분들을 천도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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