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74)

by 날숨 한호흡 2008. 3. 27.

 

 

 

모든 것에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익숙해지는 과정 중에 그림에 익숙해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좋다.

그림을 받아들이자.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림에 익숙해진 후 오실 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림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선계의 실체에 익숙해지기 전에 선계를 익히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은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지 알 길은 없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도대체 스승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황당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긴 하였으나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신만이 모르고 있을 뿐 스승님께서는 자신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 아닐까?

아니 스승님 뿐 아니라 선계의 모든 분들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마음놓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지함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좌하여 앞으로 보았다.

그림이 아직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4계절이 지나가자 다시 4계절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아까보다 지나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더욱 그림이 흘러가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었다.

느껴질 정도로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세히 바라보면 더욱 느려질 것이 아니겠는가?

지함은 눈이 빠질 정도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림이 현실과 혼동이 될 정도로 더욱 자세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화가 있는가? 이렇게 바라보다가는 현실과 그림을 다시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림임을 알고 나서야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지함은 선화를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전부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림이 다시 바뀌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일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계절이 아니라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돌아가는 그림인 것 같았다.

사람의 일생에 대한 일이었다.

먼젓번처럼 그림이 그려진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다.

가느다란 실선이 하나 지나가고 나면 그 옆에 굵은 선이 그려지고

그 선 사이로 색깔이 잎혀지면서 음영이 더하여지면 사실보다 더욱 사실 같은 그림이 되는 것이었다.

붓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나뭇잎 모양의 그림이 그려지고 나면

그 그림이 살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였다.

아무리 선화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만져질 수도 있을 정도의 그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지함은 선화로 그려지는 사람과 배경을 보고 있었다.

그림이 그려지는 속도가 빨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므로 꼭 만화영화를 보는 것 같았으나

너무나 사실 같아 활동사진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앞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속도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 눈이 어지러울 때도 있었다.

지함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그림을 보았다.

 

그림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었다.

사람들 역시 본 것 같았으며, 배경 역시 어디선가 본듯한 것들이었다.

그림의 내용들이 눈에 익었으며, 사람 역시 아는 사람들 같았다.

이들이 하는 행동 역시 익숙하였으나 약간의 처음 보는 것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배경 속의 인물이 처음에 아이들이었을 때에는 하는 행동이 아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커가면서 행동의 양식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이들이 열 살 정도에 이르자 보통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서 벗어나

하늘 공부를 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늘 공부를 하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바로 서거나 거꾸로 서거나 앉아 있는 모습, 서서 움직이는 모습들이 지함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사람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있었으나 점차 서너 사람으로, 대여섯 사람으로,

여남은 사람으로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수백 명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들이 하늘공부를 하는 모습은 어떠한 일정한 교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기운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거꾸로 서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전혀 힘들다거나 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일견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 자세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늘공부에 대하여 지함은 아직 본격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본격적인 하늘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단계가 어느 수준을 넘어 기운과 동화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듯한 행동이 마치 물결에 수초가 흔들리는 것처럼 무리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때로는 자연을 주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이 완전한 일체였다.

 

하나의 부조화가 발견되지 않는 상태.

이것이 완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디에서도 부조화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단계로 가는 것이 하늘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전혀 어떠한 작은 흠도 잡아 낼 수 없는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완벽,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지함은 숨이 멎을 정도로 자신이 놀라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어느 곳에서도 기운이 중복되거나

비워진 곳이 없었다.

세상에 그러한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으나

바라보고 있는 지금 전혀 그것이 이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더욱 경이로운 것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놀라우면서도 전혀 이상스럽지 않은 세계.

인간이 살고 있는 속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주고받으면서 상승작용을 하고 있었다.

서로를 믿고 서로를 도와주며 노력하는 세계.

어떠한 느낌을 서로 주고받는 것 같았다.

무생물도 무생물이 아닌 인간들과 동일한 역할을 부여받고 그 역할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그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서 그런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림인 것처럼 보였으나 그림이 아닌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움직임조차도 그림이 중복되어 움직이는 세계이면서도

사실보다도 더욱 사실 같은 세계.

선계의 실상을 그림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림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그림의 세계.

그림이 이럴진대 실상을 대하고 나면 어떨 것인가?

지함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앞으로 나는 스승님을 따라 선계를 볼지도 모른다.

아니 볼 것이다.

그렇다면 선계의 실상은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아차'

지함은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그림을 깊이 있게 바라보아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지금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할 짬이 있단 말인가?

잡념에 들 촌각의 시간도 없는 것이다.

저 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내게 스승님이 내려주시는 과제인 것이다.

일생 일대의 과제를 앞에 놓고 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은 선계의 공부를 하기 위한 전 단계에서 예비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저 그림을 그냥 흘러보낼 시간은 없는 것이다.

지함은 다시 그림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1. 선계수련 교과서 > 소설 선(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仙 (076)  (0) 2008.03.29
소설 仙 (075)  (0) 2008.03.28
소설 仙 (073)  (0) 2008.03.26
소설 仙 (072)  (0) 2008.03.25
소설 仙 (071)  (0) 2008.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