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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71)

by 날숨 한호흡 2008. 3. 24.

 

 

 

선생의 뒤를 따라가면서 지함은 자신의 부족함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선생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고 설명하지 못할 거대한 실체 그 자체였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장대한 그 무엇이었다.

이렇게 큰 실체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과연 이것이 선생의 모습인가?

내가 지금까지 보고 느끼며 글을 배워왔던 그 분은 누구이신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왜소함이 가슴을 치며 다가왔다.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과연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지함은 우선 스승의 그 거대함에 놀라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작았지만 느낌으로 다가온 스승의 뒷모습이 압도하는 바가 너무나 엄청나

설명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내가 어려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어려도 느끼는 것은 연령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느낀 것 같았다.

이 분이 과연 나의 스승인가?

이 분이라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적게 배워도 상당한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릇이 작아서 배우지 못하는 바는 있을지라도

스승이 알려주지 못하여 배우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았다.

모름지기 스승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공부를 하여 스승이 된다고 하였을 경우 저러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스승의 자태를 보면서 스승이란 것도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감히 인간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위엄이 살아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금생의 나는 정말 엄청난 혜택을 받고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당은 앞으로 동막선생이 가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전에 동막선생의 제자로서 글을 배웠던 다른 훈장이 동막선생의 뒤를 이어

이 마을에서 글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었다.

하지만 선생은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공식적으로 밝힌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선생께 오늘부터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는 것인가?

이렇게 엄청난 스승으로부터 글은 물론이고 다른 것들을 지도 받을 수 있다니!

이러한 영광이 있을 수 없었다.

자신만이 선택된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헌데 내가 선정되다니!

지함은 감격하여 다시 한 번 스승을 우러러보았다.

스승은 가까이에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고 있었다.

스승의 모습을 다시 대하는 순간 지함의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아니겠는가?

이 기회를 놓치고 나면 내가 다시 이러한 기회를 맞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배우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낙오하지 않으리라.'

지함은 부모의 곁을 떠나온 것을 잊을 정도로 스승의 위엄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감격스러웠다.

내가 선생께 가르침을 받다니!

그렇다면 수제자가 되는 것인가?

 

'수제자'

이제껏 글 속에서나 보아왔던 단어였다.

그 단어를 지금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단어가 지금 내 것이 되려하고 있다.

내가 지금 앞에서 걸어가고 계시는 선생의 수제자가 되는 것인가?

지함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지함은 흥분하고 있었다.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오지 않고?"

 

지함은 스승의 나무람을 들으면서도 흥분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서 오라고 하시는 말씀은 가르침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래. 가야지. 그리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나의 것으로 하여야겠다.'

지함은 마음을 다지면서 다시 한번 걸음을 빨리하였다.

 

"그렇게 걸음이 느려서야 어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빨리 오지 않고.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워야겠구나."

 

지함은 그리고 보니 스승의 걸음걸이가 빨라진 것을 느꼈다.

어지간히 걸어가서는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걸음걸이가 빨라진 것이다.

지함은 뛰다시피 하여 스승을 따라갔다.

허나 스승의 걸음걸이가 더욱 빨라지는 것이었다.

 

"허허. 그래가지고 서야 어찌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 이 공부를 하기 전에 몸부터 다듬어야겠구나."

"헉- 헉. 조금만 천천히 가 주시옵소서."

"어린놈이 무슨 힘이 그렇게도 없단 말이냐? 어서 오지 못하겠느냐?

아직 걸음걸이도 배우지 못했단 말이냐?"

"아니옵니다. 가는 데까지 가고 있사옵니다."

"그런 걸음걸이로는 공부를 할 수 없느니라. 하늘공부를 함에 어찌 그런 걸음걸이로 갈 수 있단 말이냐?"

"예- -. 빨리 가겠습니다."

"배워도 한참을 더 배워야겠구나. 할 것은 많은데 그래서야 어찌 공부를 할 수 있단 말이냐?

하늘공부란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할 수 있사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공부를 할 수 있사옵니다."

"이 공부가 무슨 공부인줄 알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냐?"

"하늘공부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공부가 뉘 집 개 이름인줄 알고 있단 말이냐? 어찌 쉽게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이냐?"

"예~???"

"하늘공부가 무슨 하늘 천, 따지를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무슨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단 말이냐?"

"무척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자세히는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 대충 생각을 하고 있었사옵니다."

"대충 생각해서야 어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하늘공부를 하겠느냐?"

"......"

"좀 사람이 된 녀석인 줄 알았더니 아주 형편없는 녀석이로구나.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다니?

그럼 하늘공부의 초입에서 스승님에게 다시 불합격된 것 아닌가?

이러다가 공부를 하지도 못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공부가 어떤 공부인데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욱이 여기에까지 와서 공부할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면 나중에 어떻게 부모님을 뵐 것인가?

부모님은 고사하고 친구들을 볼 면목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쯤은 내가 하늘 공부하러 갔다고 소문이 다 났을 것 아닌가?

지함은 조바심 속에 별 걱정이 다 들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지금 하늘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생에 치명적인 불명예이자

망신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다. 해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스승은 여전히 전혀 힘겨움이 없이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이상하게 빨랐다.

보기와 달리 보통의 어른이 천천히 뛰어가는 속도에 맞먹었다.

그럼에도 여유가 있어 얼마든지 더 걸음을 빨리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지함은 이를 악물고 스승의 뒤로 서너 걸음 이상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발걸음을 빨리 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자꾸만 스승을 따라잡기가 힘겨워지는 것 아닌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왔다.

그리 무겁지 않은 어깨에 맨 책 보따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악을 쓰고 발걸음을 옮겨보려 애써 보지만 어림없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주변을 살펴볼 여지가 없었다.

그저 스승의 뒷모습만 보고 악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숨을 너무 가쁘게 쉰 나머지 코가 시려지고 있었다.

평소 자신의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건만 스승을 따라 걸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것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일곱 살이면 나름대로 남자로서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까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 칠 세이니 한 사람으로서 구실을 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겨우 서너 각(45분-1시간)도 못되어 이러한 꼴이라니!

차라리 공부를 포기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다.

지금 와서 포기한다는 것은 나의 망신일 뿐 아니라 집안의 망신이다.

어찌 남자로 태어나서 그런 추한 꼴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사라져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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