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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70)

by 날숨 한호흡 2008. 3. 22.

 

 

 

"안녕히 가시옵소서."

"그래. 자네도 가보게."

"예. 알았습니다. 지함이도 훈장님께 열심히 배우거라."

"예. 아버님.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자. 그럼 가보게."

"예.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얼마간 없을지도 모르겠네. 돌아오면 연락 줌세."

"알았습니다."

"너무 걱정 말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네 얼굴에 쓰여있네. 마음놓고 기다리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네."

"예."

"자. 아버님께 인사 올리고 어서 가자."

"예."

 

지함은 진화를 향하여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는 다시 일어나서 아버지를 쳐다  보았다.

다시 아이의 천진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저 아이가 어찌 하늘을 알 것이며 그 힘들 것으로 생각되는 하늘의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동막선생이 가능하다고 하신 일이니 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아마 사형도 있고, 사제도 있을 것이다.

어디서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동막선생 같은 분의 문하에 어찌 혼자만 있을 것인가?

많은 선후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 역시 지함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한 어마어마한 일을 어찌 혼자 할 수 있으며 혼자서 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일 것이다.

나는 나의 일만 잘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일이란 무엇일까?

 

진화가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돌아오고 있을 때 지함은 동막선생과 걸어가고 있었다.

지함이 알기에는 오늘은 서당으로 가고 다른 날 어디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가는 길이 서당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훈장님. 어디로 가시는지요?"

"하늘공부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하늘공부를 하려면 하늘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늘로 가다니?

그 말은 곧 죽는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죽어서 어찌 공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로 가지 않고 어찌 공부를 하겠느냐?"

"꼭 하늘로 가야만 하늘공부를 할 수 있는지요?"

"가지 않고 어찌 하늘공부를 한단 말이냐?"

 

하늘로 간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 같다면 부모님께 인사를 달리하고 왔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직인사를 그렇게 길에서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다시 뵐 수 없게 될 런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사를 너무 소홀히 하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감한 노릇이었다.

금방 지함의 얼굴은 걱정하는 빛으로 가득하였다.

이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동막선생은 웃으며 지함을 불렀다.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해라."

"어찌 다른 방법이 없겠는지요?"

"하늘로 가는 것 말고 어떠한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 너 같으면 가지 않고 어떠한 방법이 있겠느냐?"

"잘은 모르겠으나 가지 않고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 말고는 길이 없다."

 

지함은 난감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된 바에야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허나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떠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오직 모든 선택을 스승님에게 맡긴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지식은 한정되어 있다.

이미 일가를 이룬 것으로 보이는 스승님에 비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지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곱 살의 나이로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야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뜻을 따라 가보아야 할 것이다.

남아가 태어나서 큰 뜻을 품었으면 그 일을 하고 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 일을 해보지도 않고 머뭇거리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이렇게 망설이는 것은 남자의 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큰 일을 하겠다고 스승님께 맹세한 내가 아니던가?

그래서 아버님께서도 선선히 허락을 해주신 것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못난 생각을 하고 있다니...'

 

동막선생은 서너 발자국 앞에서 말없이 걷고 있었다.

지함은 뒤에 따라가며 동막선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2년여를 선생에게 학문을 공부하여 왔으며 지금도 이렇게 스승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지금껏 뒤에서 따라가며 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스승의 뒷모습에서는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함이 풍기고 있었다.

 

산맥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산의 줄거리...

멀리 보이면서도 그 힘이 우렁찬 엄청난 힘을 내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산맥을 보는 느낌이었다.

선생의 느낌이 이렇게 거대하게 와 닿기는 또 처음이었다.

지금의 느낌 대로라면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지형지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는 어떠한 것들도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지함이 순간적으로 과연 이 분이 자신이 매일 대하던 그 동막선생이 맞는 것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정도로 뒤에서 바라보는 선생의 이미지는 달랐다.

앞에서 바라볼 때의 인자하고 자상하면서도 엄격하던 선생의 이미지는

그렇게 거인다운 풍모는 아니었다.

헌데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선생의 이미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이렇게 달리 전달될 수도 있는가 하는 생각이 어린 지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자신이 대해왔던 선생의 이미지는 뒤에서 바라보는 지금 전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아주 다른 분이 걸어가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저 멀리 앞을 보자 그리 크지 않은 산이 보였다.

그 산이 평소에는 만만치 않아 보였으나 지금 선생의 느낌을 받은 순간 아주 작은 산과 같아 보였다.

선생의 이미지는 엄청난 산맥과 같은,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함을 지함에게 주고 있었다.

 

선생의 뒷모습에서 약간 옆으로 비켜서서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자 더욱 작은 산으로 보였으나

선생의 뒤로 들어가면서 선생의 뒷모습을 보자 다시 큰 산맥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말이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저벅, 저벅, 선생의 걸음 걸으시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평소에 선생과 함께 다닌 적이 있으나 이렇게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린 적 역시 없었다.

오늘은 선생이 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게 비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선생은 뒷모습으로 지함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지함의 불안함을 덜어주려는 듯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면이 있으셨다니?'

 

선생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서너 걸음 뒤에서 걷고 있었던 자신이 열 걸음 이상 뒤쳐지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선생의 모습은 더욱 든든하면서도 푸근함을 주고 있었다.

지함은 한편으로는 푸근함이 배어 나오는 선생의 뒷모습에서 마음 한켠에 안도감이 들어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배에 힘을 주었다.

 

'가리라. 어디든지 가리라. 선생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못 갈 것이 없지 않겠는가?'

 

지함은 갑자기 자신의 마음이 든든하게 바뀌는 것을 보고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스스로 이렇게 마음이 변한 것은 바로 선생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선생이 뒤를 돌아보면서 지함을 불렀다.

 

"어서 오지 않고 웬 생각이 그리 많으냐?"

"예.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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