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라...'
기운이 무엇인가?
기운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있을 것인가?
전에도 그러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우선 기운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본 적도 있고, 나름대로 느껴본 것 같으나 그 실체를 분석해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은 사실은 지금 부딪친 문제에 대하여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지함은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진화는 지금은 더 이상 물어 볼 때가 아님을 생각하고 돌아가기로 하였다.
"지함은 나와 공부를 더 하여야 할 것 같네. 자네가 허락해 주겠는가?"
"허락이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
지금도 공부를 가르치고 계시지 않는가?
선생의 표정을 올려다보자 엄한 표정인 것이 농담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공부가 아닌 무슨 다른 공부를 시키시겠다는 것인가?
이 때 진화의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지함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셔서 공부를 가르치시겠다는 말씀이신가?
"그러하네. 바로 그것이네. 지함이 지금 이대로 공부를 하여서는 따라갈 수가 없네.
내가 좀 데리고 있어도 되겠는가?"
동막선생이 진화의 생각을 읽으신 것이다.
"지함은 할 일이 많네. 다른 사람과 달리 이 애는 할 일이 많은 아이일세.
이미 나와는 이야기가 되었으나 자네와 이야기를 못 나누었네. 오늘 자네의 말은 허락한 것으로 알겠네."
"... 아... 예..."
"지함은 앞으로 많은 공부를 하여야 하네. 그 공부는 자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걸세."
"예."
"공부란 무릇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라야 하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라면 쓸모가 없네.
공부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세상에서 쓸모가 있어야 하지.
특히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어야 하네.
다 쓸모가 있으되 큰그릇은 크게, 작은 그릇은 작게 써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네.
자네도 그렇지만 지함은 아주 큰그릇이니 크게 써먹을 수 있어야 할 것이네."
"예......"
진화는 지함이 그렇게 큰그릇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소 다른 아이들과는 무엇이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은 많이 하였으나
동막선생이 보기에도 그리 큰그릇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구석이 있음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야 김진사네 막동이나
박참봉네 둘째도 나름대로 상당히 똑똑한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막선생이 지함을 지목한 것이었다.
지함의 어떠한 면을 보고 그리 생각을 하셨단 말인가?
정말로 지함이 그렇게 쓸모가 있는 큰그릇이란 말인가?
"자네는 매일 보니까 지함이 그렇게 큰그릇임을 모를 것이네. 하지만 하늘은 알고 있지.
하늘이 큰그릇을 만들 때는 다 큰 일이 있을 것임을 예정하고 만드는 것이네.
큰 일이란 당장 큰 일일 수도 있고 다음에 큰 일이 될 수도 있으나 언제든 하늘이 필요로 할 때
사용할 수 있어야 함으로 적시에 내려보내는 것이지."
그런데 왜 하필 지함이란 말인가?
다른 많은 아이들을 놓아두고 지함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되었단 말인가?
아마도 큰 일이란 힘드는 일일 것이었다.
그 힘드는 일을 지함이 하여야 한다니!
이 아이가 진정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아이일 것인가?
"못난 사람 같으니. 어찌 그런 하찮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진화는 순간적으로 부정(父情)에 얽매어 대의를 놓치고 있음을 알았다.
지함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면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헌데 어찌 곁에 두고 볼 수 없음만 안타까워 할 것인가?
아비로서 자식이 큰 일을 하는 것을 어찌 싫어할까 만은 잠시 인간적인 정리에 마음을 앗겼던 것이다.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흘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기회를 인간이 만들어서라도 하여야 할 것인데 지금 지함에게는 하늘이 만들어 내려보내 준 것이다.
엄청난 일이 앞에 있는 것인가?
"자네가 거기까지 생각할 것 없네. 그 일은 지함의 일이네.
자네는 이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만 하여주면 되네."
"예. 훈장님."
"사람의 일 중에 사람의 일이 있고 하늘의 일이 있네."
"자네가 하는 일도 하늘의 일이라면 하늘의 일일세. 어떤가? 지함을 공부하도록 하겠는가?"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하도록 하시지요."
"그래야 지. 암 그러고 말고."
동막선생은 지함을 내려다보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과 아버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함은 두 분이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중요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이 세상의 일에 대하여 어느 정도 달관한 표정인 것도 같았다.
진화는 도저히 아이의 얼굴에서 나타날 수 없는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 자리에서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너무나 많다.
어찌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모든 것은 고사하고 일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세상은 너무나 넓다.
그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자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이 넓은 세상의 일 중 자신이 최근 겪은 일들은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없을 만큼 기이한 일이 아니던가?
아마도 동막선생은 아시고 계실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분들 중 그러한 내용을 아시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 아닐까?
진화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선생을 바라보았으나 선생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함과 단화산만 바라보고 계셨다.
"자. 가세. 자네도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지함이와 다녀올 곳이 있네."
"알았습니다."
"자. 아버님께 인사 올려야지."
"아버님.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옵소서."
"그래. 알았다. 열심히 공부 잘하고 조심하도록 해라."
"알았습니다."
지함은 동막선생이 어딘가 가자고 하였음에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으며 아버지와 얼마간 떨어져서
공부를 하여야 할 것임에도 서운하다거나 하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이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화는 한켠으로는
서운한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은 많네. 집에만 있은 들 무엇을 익힐 수 있겠는가?"
"허면 무슨 준비라도 하여야 할 것이 아닌 지요?"
"무슨 준비가 필요하겠는가? 몸만 가면 되네. 자네는 요즈음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필요하던가?"
그랬다.
무엇이든 평소의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나고 겪고는 그대로 돌아오곤 하였다.
무슨 준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당하는 일이었고 그대로 경험을 구하곤 했다.
"아. 예."
"아직도 물어볼 말이 더 남았는가?"
"아닙니다. 다녀 오시옵소서."
"걱정하지 말게. 지함은 오히려 자네를 더 걱정하고 있네."
"그렇사옵니다. 아버님. 저는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래. 알았다. 다녀오도록 해라."
진화는 지함을 보내면서 아까보다는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지함의 표정이 진화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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