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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69)

by 날숨 한호흡 2008. 3. 21.

 

 

어린아이가 부모를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찌 저렇게 마음이 편하단 말인가?

대범한 면이 있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저리도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현재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다 알고 있으면서 저리도 편안한 얼굴을 한단 말인가?

지함을 내려다보던 진화는 갑자기 무엇엔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아이의 눈이 너무 맑은 것이었다.

맑고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어쩌면 겨우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저리도 깊은 눈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매일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아이의 눈을 지금 다시 본 것이다.

아직까지는 저렇게 깊은 눈을 나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오늘에야 저 아이가 저런 깊은 눈을 보여준 것이다.

아니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본 것이다.

진화는 지함의 눈을 통하여 무엇이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기운이 지함의 눈을 통하여 여과되어

더 없이 맑은 기운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하늘의 눈'

하늘의 눈을 본 것이다.

동막선생은 저것을 알고 있을까?

진화가 키우면서도 보지 못했던 지함의 눈을 동막선생은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지함이 동막선생을 만나면서 무엇을 배웠고 그 결과 저러한 눈이 되었을 것이다.

지함의 눈에 비하면 자신의 눈은 썩은 동태눈에 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신이 지함의 눈을 보는 순간

정말로 창피함을 느낄 정도로 무력감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것 없네. 내다보아서 무엇을 어쩔 것인가?"

"아-. 아닙니다. 그저--."

"이 세상은 보아서 좋을 것이 있고, 나쁠 것이 있지. 볼 것만 본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일세."

"네."

"자네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많을 것이옵니다."

"그래. 그것을 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

보아서 무엇을 어찌 할 것인가?

나의 능력으로는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욱 뛰어난 사람들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갔으면서도 세상은 이렇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 것만 알면 되는 것이네. 그 알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그런 것 같았다.

알 것만 알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것이었다.

아니 알 것만 알려하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주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이 필요 없는 것을 알려하다가 중요한 시간을 다 보내고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지금에야 하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자신만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였었는데 왜 이렇게 순간적으로 초라해져 버린 것인가?

어느 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지함은 동막선생을 따라 갈 것이다.

진화는 두 사람을 다른 길로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허전함을 느꼈다.

찬바람이 솔솔 불고 있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에 아이가 얼마나 견디어 낼 것인가?

하늘은 맑았으나 그 맑은 늦가을 하늘이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이제 이 아이는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겨우 일곱 살에 벌써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몇 살에 나의 길을 갔는가?

지금까지 나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찾아서 살았으며 무엇을 추구하고 살았는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그저 내려 받기만 하였을 뿐 효도를 한 적이 있었는가?

또 이 이이한테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진화는 아직 이 아이 외에는 자식다운 자식을 가졌다는 느낌이 없었다.

이 아이 위로도 두 아이가 있었으나 아버님께서는 마치 다른 손자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셨다.

이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님은 손자를 가졌다고 하였으나

그 전에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님께서 두 손자를 더 두었음에도 이 아이만 손자로 생각하신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을 알고 계시던 아버님께서 무엇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아니겠는가?

아버님께서 자신이 두 아들을 먼저 낳았음에도 손자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셨던 것에 대하여

오늘날까지 설명할 길이 없었던 진화는 지금에야 마음에 집히는 바가 있었다.

아버님께서 자신이 지함을 낳고 나서 너무나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기뻐하신 것에 비하면

그 전의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무반응으로 일관하셔서

동네 사람들까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아버님께서는 오직 지함만이 손자인 것처럼 행동하셨다.

그것이 너무나 외부로 드러나도록 행동하심으로써 다른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이 될 정도가 아니었던가?

다른 아이들도 차분하기는 마찬가지이며, 공부 역시 잘하였으나

지함 만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없었다.

아버님께서 다른 아이들에 대하여서는 일체 언급이 없으셨으나

지함에 대하여서만 이야기하셨던 것에 대하여

오늘 동막선생을 따라가는 지함의 눈동자가 답을 주고 있었다.

진화는 어느 덧 어린 지함에게 마음속으로 의지하는 부분까지도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곤 하였다.

 

'내가 나이가 한 두 살도 아닌데 어린 지함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그러나 지함의 꼭 집어낼 수는 없으나 어른스러운 그 무엇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가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러한 자신을 나무랄 수만도 없었다.

하여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지함은 진화에게도 숙제였다.

오늘 동막선생은 지함을 데리고 가시면서 평소에는 보지 못하였던 그 무엇을

지함의 눈을 통하여 보여준 것이다.

말없는 가운데 지함의 눈을 본 진화는 그 눈이 의미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진리, 바로 엄청난 진리를 뜻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도 맑을 수가 있단 말인가?

진리가 아니면 불가능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직 진리만이 가능한 세계.

진화는 오늘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하루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의 자식이 하늘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늘.

과연 하늘은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자식을 하늘에 바치는 나는 나중에 무엇을 받을 것인가?

나의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도 그렇게 처지는 삶을 살았다고는 볼 수 없다.

허나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늘의 선택을 받고 아니고를 무엇으로 알 것인가?

누구든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다 하늘의 사람이 아닌 것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허나 그 중에서도 하늘의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만큼 큰 일이란 어떠한 일일까?

하늘의 법도를 인간 세상에 펴는 일일까?

하늘의 법도를 어찌 알 것인가?

안다고 한 들 어찌 펼 것이며, 그 펴는 것에 대한 심판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또 그것이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할 것인가?

진화는 머리 속이 복잡해져 감을 느꼈다.

 

허나 오늘 전부 알아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일을 어찌 이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알 수 있을 것인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앞에는 동막선생이 지함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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