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사람들과 주변 환경이 움직이고 있는 것에서 어떠한 원칙을 찾아내려 해 보았다.
'원칙'
잘은 모르겠으되 어떠한 원리에 따라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리는 찾아내는 순간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일까?'
당장은 찾아낼 수 없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 집중하여 바라보다 보면 무엇인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려는 나의 노력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그림으로부터 나오는 기운이 자신을 감싸고 있지 않은가?
아주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었다.
봄바람처럼 아늑하게 지함을 둘러싸고 있었다.
알 듯 모르듯 둘러싸는 기운이 점점 진해지면서 지함의 주변을 에워쌌다.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지함은 그림에서 나온 기운에 취해서 다시 앞에 보이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점점 정지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따라서 멈추어 서고 있었다.
주변의 빛은 환해지고 있는데 동작이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지함은 고개를 들어 모든 것을 다시 살펴보았다.
자신이 지금 보았던 사람들의 그림은 큰 그림의 일부였다.
다시 보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하였나 싶을 만큼 그림이 정지해 있었다.
그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크고 넓어서 끝이 없는 그림 같았다.
'이렇게 넓고 큰 그림이 있다니?'
저 높은 하늘의 끝에서 저 아래 땅의 끝까지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좌를 보아도, 우를 보아도 그림은 연속되어 있었다.
그 그림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자신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림 속의 수많은 사람들과 돌, 나무, 풀, 강과 산 등 주변의 환경들이 어우러져 보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작아져 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아주 작아진 것도 아니었으며, 크게 보려고 하면 크게도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림이 점점 넓어지고 커지며 산하를 포함한 그림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림으로부터 나오는 기운이 그림의 한 곳으로 집중되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어디인가?'
그림의 한 가운데 청색의 작은 점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자 그림의 중심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림 속의 연못이 아니고 정말 연못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주변의 실개천에서 흘러나온 물이 그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연못에서 물이 흘러나가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모이는 물들이 흘러나가는 대신 기운이 되어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저렇게 기운이 좋은 연못에서 물을 떠 마시면 아마도 엄청난 기운이 솟아 나올 것이다.'
가만히 연못을 내려다보자 그 연못은 지상의 연못이 아니고 하늘의 연못인 것 같았다.
'천지(天池)'
하늘의 연못.
천지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천지 같았다.
하늘의 연못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기운이 나올 수도 없을뿐더러 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만큼
흘러나가는 물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연못에서 나온 기운이 서서히 지함의 아래로 몰려들더니
지함의 아래에 방석모양으로 형성되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몰려든 기운이 점점 진해지더니 지함의 엉덩이가 약간씩 들썩였다.
기운이 부양력을 발생시키는 것 같았다.
지함은 손으로 바닥을 만져보았다.
헌데 바닥이 만져지지 않았다.
이미 손으로 바닥을 만져볼 수 없을 만큼 들어올려진 것이었다.
지함은 그림위로 들어올려져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높이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한 뼘 정도의 높이로 떠올라 있었다.
'사람이 떠오르다니?'
아무리 선계공부중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떠오른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전에 '축지'라고 하던가?
사람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원하는 장소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으나
떠오른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겨우 일곱 살일 뿐인 지함의 입장에서는 그리 많은 경험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헌데 지금 속세를 떠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하늘공부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일을 겪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떠오른다.'
단순히 재미있는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떠올라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떠오른다는 일이 이렇게 가볍게 조금만 떠오른다면 모르되
높이 많이 떠올라서 어디론가 날아 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괜찮을 수 있으나 바람이 세게 분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은 괜한 불안감일까?
아닐 것이다.
처음으로 이러한 경우를 당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떠오른다는 것이 이렇게 좋지만은 않은 일임을 느꼈다는 것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어릴 때는 공중으로 떠오른다는 것은 하나의 부러움이자 불가능의 대상이었다.
헌데 막상 떠오르자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진 것이다.
해결방법이 없는 불안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대책이 마땅치 않음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이러한 경우에 대한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지함으로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런 지 알 수가 없었다.
지함은 스승님께서 나타나 주시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동안 기원을 하였음에도 스승님으로부터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스승님께서 잠시 선계에 가신 것은 아닐까?
하지만 스승님께서 계시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도 뿌리 깊은 불안은 아니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표면적인 불안인 것이다.
역시 혼자 해결하여야 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몸은 인간의 몸이면서 공부는 선계의 공부를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불가능할 것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방법.
이것이 수련하기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급하지 않은가?
우선 공중에 뜬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할 런 지를 모르는 것이다.
지함은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손을 뻗어보았으나 안 되자
다리를 풀면 땅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다리를 풀어 내리 뻗자 다시 바닥이 멀어지며 몸이 그만큼 공중으로 뜬 것이었다.
역시 공중이었다.
마치 지함의 속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내가 방법을 올바로 배워야지 편법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잔꾀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법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무엇으로 가능하도록 할 것인가?
나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배운 것이 없다.
스승님께서 계시는 것도 아니다.
혼자의 힘을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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