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형상으로 보면 분명 아버님이었다.
이렇게 분명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애비가 온 것이 반갑지 않단 말이냐?"
"아닙니다. 너무 반가워서 드린 말씀이옵니다."
"그간 별일 없었느냐?"
"예. 아버님께서는 무고하셨는지요?"
"이승을 떠난 사람이 무슨 별일이 있겠느냐?"
"......"
"지함은 어찌하고 있느냐?"
"예. 잘 크고 있습니다."
"지함이 나와 네가 못 이룬 것을 이루어 줄 아이이니라. 잘 키우도록 해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당신이 못 이룬 것과 내가 못 이룬 것을 이루어 줄 아이라니?
또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건대 3대에 걸쳐 일을 한단 말인가?
"아버님."
"다른 일은 없을 것이다. 지함에 관하여는 아무도 시비가 없을 것이며,
이 애로 인하여 만인이 위안을 얻을 것이다."
예전의 기력이 좋으실 때의 아버님 목소리와 동일하였다.
누구도 아버님임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용모와 음성이 아버님과 흡사하였다.
진화는 아버님을 다시 뵙게 된 것이 사실인가 여부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랐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상세하게 문의할 시간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다른 내용은 아직 알 것 없다. 다만 명심하도록 해라. 크게 될 아이이니라."
"알았사옵니다. 헌데 이렇게 오실 수 있는지요?"
"무슨 말이냐? 죽은 사람이 어찌 이렇게 올 수 있단 말이냐?"
"그러면 어찌 지금은 이렇게 말씀하여 주실 수 있는 것인지요?"
"지금은 남아있던 지기를 잠시 이용하는 것이다. 아마도 더 이상은 힘들 것이다.
앞으로 내가 소식을 전하지 못하더라도 지함을 잘 키우도록 해라."
"네. 알았습니다. 지금도 잘 크고 있으나 앞으로도 잘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해라."
부친의 목소리가 점차 희매해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뵈올 수 있다니? 이것이 정녕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뵙는 것이란 말인가?
진화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져 왔다.
"나를 더 볼 수 있는 방법은 온 집안이 천기수련법을 익히는 방법밖에 없다."
"천기수련이라고 하셨는지요?"
"그래. 천기수련이다."
"어찌하면 배울 수 있겠는지요?"
"마음속으로 계속 간청하면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니라.
단화산과 관련이 있으니 알아보도록 해라.
더 이상 알려준다면 수련의 효과가 없을 것이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라."
"알았사옵니다."
음성이 점점 작아져 가고 있는 가운데 영상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제는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아버님."
"```~~~~~~~??????????-------________--------?"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였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잠시만 더 계시다가 가실 수는 없사온지요?"
"...~~~~~-----_____"
진화는 귀를 기울여 듣고자 하였으나 무슨 소리가 나긴 하였으되 더 이상 대답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방 아랫목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님의 영상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진화는 아랫목으로 다가가면서 아버님의 형상을 만져보려 하였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한바퀴 휘저었을 뿐이었다.
"아버님...... 그렇게 오셨다 가실 수도 있사옵니까?"
잠시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모든 것이 꿈이 아닌가 싶도록 허무하게 흘러가 버렸다.
아버님을 뵌 것이 언제이던가?
너무나 깨끗이 살다 돌아가신 아버님이셨다.
정말로 돌아가신다는 말의 의미를 그대로 새겨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이승이란 와서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리라.
영원히 머물 수도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없는 이 곳.
물론 오지 않으려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 가지고서야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고난을 두려워하여서는 아무 것도 건질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인 것이다.
지금까지 무엇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지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간 약간의 두려움이 있긴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져 버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모에 관한 일일 것이다.
진화는 이진사가 향천하고 난 후 자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의지하였으며,
아버지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방금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다시 나타나셨던 것은 자신에게만 가능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아버님에게 의존하려했던 과거의 무의식이 아버님을 모셔와서
그런 내용을 전달받도록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님을 잊고 살아온 적은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친께서 생존해 계시기는 하나 모친으로부터는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껴본 적은 있어도
삶의 큰 지혜를 전수 받은 기억은 별로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진화는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잠시 전의 메시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에 잠겼다.
말씀의 요지는 지함을 잘 키우라는 내용이다.
아버님과 자신, 그리고 지함에 이르기까지 3대가 한가지의 일을 하는데
그것을 이루는 것은 지함이라는 말씀이 아니었던가?
무슨 일이든지 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지기의 힘을 빌려 잠시 그러한 말씀을 해주신 것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지침을 정함에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지함이 그렇게 중요한 소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니?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용이 나타나고 서기가 어리는 등 엄청난 태몽을 꾸면서 태어났단 말인가?
어쨌든 다른 아이들보다 다른 면이 있기는 하였다.
그 다른 면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남들이 보아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달랐다.
하지만 그러한 면이 지함의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남으로
주어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헌데 그것이 아닌 것 같은 것이다.
무엇이든 사명이 있다면 어떠한 사명일 것인가?
진화는 지함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에 잠겼다.
오늘 밤 나의 생각을 마무리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일 다시 생각하도록 하자.
진화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지함은 당시 서당에 다니고 있었다.
이 서당은 동막선생(한국의 선인들 이지함 편에서는 계골선생으로 소개된 분이나 원명은
동막선생이십니다)이라는 분이 훈장으로 계시는 곳이었는데
이 선생의 학식이 워낙 높아서 주변 고을에서 존경이 대단하였다.
학식뿐만이 아니라 인격 또한 훌륭하여 이 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감동이 올 지경이었다.
인근의 농군들은 가을이 되면 이분께 조금씩이라도 곡식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 하나의 기쁨이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께서는 그 농군에게 도움이 될만한 말씀을 한마디씩 하여 주시는 것이었다.
점박이라는 농군이 그 해 가을에 찹쌀을 서너 되 가져다 드릴 때에는
선생께서 점박이의 건강에 관해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훈장님. 금년에 쇤네가 농사를 조금 했습니다요. 얼마 안됩니다만 찹쌀이니 맛이라도 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요."
"고맙네. 이런 걸 뭐 하러 가져오나. 자네도 어려울 텐데."
"아닙니다요. 저희는 먹을 것이 많습니다요."
"올해 농사는 어떠한가?"
"보시다시피 잘 되었습니다요."
"그런가? 다행이구먼. 그런데 자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가?"
"아닙니다요. 괜찮습니다요."
점박이는 최근 들어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처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으나 자신의 증상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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