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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63)

by 날숨 한호흡 2008. 3. 15.

 

 

 

선생의 눈치를 보니 바로 그 점을 아시고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자네는 너무 몸을 아끼지 않는 것 같네. 몸 생각을 해야지."

"괜찮습니다. 훈장님."

"아니네. 잠시 이리 올라와 보게. 자네 맥을 좀 봄세."

"아닙니다."

"어서 올라오게. 내가 집히는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야."

"예. 그럼 소생 잠시 올라가겠습니다요."

 

점박이의 맥을 보시던 선생은

 

"자네 요즈음 속이 좋지 않았지? 이래가지고서야."

"예?"

"기가 막혔네. 임맥에서 기운이 막혀서 아마 속이 거북할꺼야."

 

점박이는 깜짝 놀랐다.

 

"예. 그렇습니다요. 훈장님."

"그럴꺼야. 내가 그런 것 같아서 올라와 보라고 한 것이지."

"아- 예."

"그래. 어떻게 하고 있나?"

"그냥 있습니다요."

"그러면 계속 가슴이 답답할 것일세. 내가 잠시 보아 줄 테니 그대로 해보게."

"예. 소인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막선생은 점박이의 등을 서너 번 치더니 누우라고 하고는

이마에서 아랫배까지 손가락 한마디 정도만큼 내려가면서 천천히 그리고 지긋이 눌러주는 것이었다.

점박이는 가슴이 점점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가슴이 아니고 온 몸이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속이 편해지면서 온몸이 나른해지더니 잠이 쏟아졌다.

이렇게 자면 안 되는데, 훈장님 앞에서 이 무슨 일인가?

하지만 억지로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눈꺼풀이 천만근이었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혼미한 가운데 무엇인가 눈앞에 지나가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여유도 없었다.

깜빡 잠에 떨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한참을 잔 것 같았다.

무엇인가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무슨 글씨 같았다.

자신이 글씨를 모르므로 지금 앞에서 보이는 것이 무슨 글씨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글씨의 뜻이 금방 가슴에 와 닿았다.

자신이 글씨를 읽을 줄 모름에도 지금 글씨를 읽은 것이다.

어떻게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글씨를 읽은 것이다.

 

"진화에게 동막선생을 찾아보도록 전해라.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니라."

 

점박이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깜짝 놀랐다.

잠이 깨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선생은 안 계시고 학동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혼자 동막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에서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례가 있나?

큰일이다 싶었다.

동네에서 존경받기로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훈장님 아니던가?

그 분 앞에서 잠이 들다니?

얼른 일어나 옷을 가다듬었다.

잠결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진화에게 동막선생을 찾아보도록 하라고 한 것 같았다.

진화라면 이진사의 아들로서 자신이 상당히 어려워하는 사람중의 한 분 아닌가?

나이를 떠나서 어려운 분인 것이다.

어떻게 전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라고 부르며, 어떻게 아뢰어야 할 것인가?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이상한 시간에 동막선생으로부터 치료를 받다가 본 것을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하여도 자신이 없었다.

무엇이라고 하여야 할 것인가?

상대가 믿어줄 것인가?

꿈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는 놈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할 수 없다.

어찌 본 것을 안 보았다고 할 것이며, 또 본 것을 전하지 않고 있을 것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그것을 진화에게 전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가자.

가서 말씀드리고 나서 이상하게 들으셔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해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지금 가면 계실 것인가?'

계시면 아뢰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이야기 해보고 나서 욕을 먹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점박이는 진화네로 걸음을 옮겼다.

진화가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보기는 하여야 할 것 같았다.

동네에서 자그마한 논두렁 서너 마지기와 밭떼기 서너 조각에 농사를 하고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남의 일을 해야 하는 점박이로서는 도지를 받치고라도 진화가 농사지을 땅을 빌려주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오늘은 꿈인지 생시인지 자신이 본 것을 전달하기 위해 가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서 무엇이라고 말씀드려야 진화가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들어 줄 것인가?

처음부터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인가?

 

점박이는 진화네로 갔다.

마당쇠에 의하면 진화는 어디로 갔다고 하였다.

하지만 금방 돌아오실 것이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점박이가 마당쇠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있던 중 멀리서 진화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진화의 기침소리는 최근 들어 생긴 버릇이었다.

자신이 있음을 알림으로서 집안 사람들에게 조심을 하도록 하려는 배려에서였다.

마당쇠와 점박이는 진화에게 인사를 하였다.

 

"어르신 무고하신지요?"

"그래. 점박이. 자네 어쩐 일인가?"

"예. 잠시 지나던 길에 들렸사옵니다."

"그래. 별고 없었는가?"

"그럼은 입쇼."

"놀다가게."

"예."

 

점박이는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진화에게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마당쇠에게도 진화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이야기해도 무관할 것 같았다.

점박이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진화를 불렀다.

 

"근데. 어르신."

"어. 왜 그러나?"

"저기..."

"왜. 무슨 일이 있는가?"

"다름이 아니라..."

"무슨 말인가?"

 

진화도 최근의 범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지라 점박이의 행동을 보면서도 나무라지 않았다.

 

"해보게. 여기서는 안 되는 말인가?"

마당쇠가 내용도 모르면서 눈을 꿈벅하였다.

"예. 그게 그러니까..."

"이리 오게."

"예. 어르신."

 

진화가 앞장서서 훠이훠이 걸어가서는 사랑방으로 들어가고 점박이가 뒤를 따라 들어갔다.

틀림없이 무슨 말인가 하려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녀석이 갑자기 내게 올 리가 없을뿐더러 저희들끼리 하면 될 것을

나한테까지 이럴 일이 없지 않겠는가?

무슨 중요한 용건이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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