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 들어간 진화는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박이를 불렀다.
"들어오너라."
"소인이 어찌 감히..."
"글세. 들어오라니까."
"예. 그럼."
점박이는 방으로 들어가서 진화 앞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았다.
평소 진화를 보기는 하였으나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대하기는 처음이었다.
더욱이 방에서 마주 앉으니 점박이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본 것도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 마당에 이러한 자리에서 헛소리라도 한다면 앞으로 진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진화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점박이는 더욱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진화가 보니 점박이가 무슨 말을 하기는 하여야 할 것 같은데 말을 못하고 있었다.
말을 못하는 것이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짐작컨대 근래 들어 자신이 본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들과 무관치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방으로 불러들인 것인데 역시 생각을 바로 한 것 같았다.
"그래. 무슨 말이냐? 괜찮으니 말해 보아라."
"저. 나으리."
"무슨 말이라도 괜찮으니 말해보래두."
"예. 저 나으리. 소인이 서당에 찹쌀을 조금 가져다 드리려고 갔다고 훈장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요."
"동막선생님 말이냐?"
"예."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예. 찹쌀을 드리고 나오던 중 훈장님께서 잠시 맥을 보아 주셨습니다요."
"음. 그래서?"
"맥을 보아주시고 나서 훈장님께서 소인이 속이 답답한 것을 아시고 소인의 여기 저기를 눌러 주셨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습니다요."
진화는 점박이가 하는 말에서 무엇인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 사람이 내가 본 것을 다른 방법으로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안 자려고 애를 썼으나 너무나 잠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이 떨어졌습니다요. 헌데..."
점박이는 어떻게 설명을 하여야 할지 몰랐다.
글을 읽었다면 진화가 믿어줄 것인가 하는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할 것인가?
이왕 말을 꺼낸 것이다.
어차피 믿어줄 것이라고 생각지 않고 한 짓이 아니던가?
"훈장님께서 임맥인가가 막혔다고 하시면서 주물러 주시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요."
"어디가 아팠느냐?"
"요새 들어 속이 답답하였습니다요."
"음..."
"갑자기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인 것도 아니고 잠이 들은 것도 아닌 채 무슨 글씨를 읽었사옵니다요."
"네가 글을 배웠단 말이냐?"
"아닙니다요. 그래서 소인도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요."
"그래. 어떻게 읽었느냐?"
"그냥 읽어졌습니다요."
"그냥 읽어지다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요. 꿈속인 것처럼 그렇게 읽어졌습니다요."
"그렇다?"
"예."
진화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본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믿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 아니던가?
그러한 것을 자신이 보며 지내온 것이었다.
자신이 겪은 것도 그렇거늘 점박이가 겪은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점박이는 순진하고 아직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말을 하고 있는 표정이며, 말투가 전혀 거짓이 아닌 것 같이 보이고있는 것이다.
우선 믿고 이야기를 전부 들어보자.
다 들어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아니겠는가?
"그래. 어떻게 읽어진 것 같더냐?"
점박이는 진화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 걱정이 되었으나
자신을 믿어주는 것 같이 보이자 걱정이 덜어지면서 말이 술술 나왔다.
"예. 깜빡 잠이 들은 것 같았는데 무엇인가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이 있었사옵니다.
잘은 모르지만 무슨 글씨 같았사옵니다. 헌데 금방 그 글씨의 뜻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어디로 읽은 것인지 잘 모르지만 가슴에 그 뜻이 와 닿은 것 같았습니다요.
지금은 그 글씨가 생각나지 않습니다요."
"가슴에 와 닿다니 어떻게 가슴에 와 닿았단 말이냐?"
"잘은 모르겠으나 글씨가 읽어졌습니다요."
"그랬단 말이냐?"
"예. 어떻게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저도 모르게 글씨가 제 가슴으로 들어온 것 같았사옵니다.
그리고는 저절로 그 글씨가 어르신께 말씀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요."
"그래. 무슨 내용이더냐?"
"어르신께서 동막훈장님을 찾아보시라는 말씀같았습니다요."
"...... 그 밖에 없었느냐?"
"다른 말씀이 있었사옵니다. 아마도 동막훈장님을 찾아뵈오시면
궁금하신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이라는 것 같았사옵니다."
"음...... 그 말씀 이외에는 없었느냐?"
"예. 그 말씀 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요."
"혹시 다른 말씀이 없으셨는지 잘 생각해 보도록 해라."
점박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말씀은 없으셨던 것 같았다.
분명 '진화에게 동막선생을 찾아보도록 전해라.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니라.'라고
한 것밖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씀밖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생각을 하던 점박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없었사옵니다요."
"그래. 알았다. 혹시 그 일을 누구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느냐?"
"예. 이 일은 누구에게 이야기하면 안될 것 같았사옵니다."
"그래. 알았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나한테만 이야기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알았습니다요. 어르신."
"그래. 알았다. 돌아가 보도록 해라. 그리고 마당쇠에게 이를 테니 쌀 섬이나 가져가도록 해라."
"아닙니다요. 어르신."
"아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구나."
"어르신. 아마도 그렇게 하시면 마당쇠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요.
나중에 논이라도 좀 부칠 수 있도록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요."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
"그럼은 입쇼.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감지덕지 이옵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
"예. 어르신."
"어서 가보도록 해라."
"예. 어르신. 소인 물러가옵니다요."
"그래라. 다시 한번 이르지만 절대로 누구에게 발설하여서는 안 되느니라."
"걱정 마시옵소서. 어르신."
진화는 점박이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하는 말을 들어보아서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점박이가 평소에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닐뿐더러 자신이 최근 본 것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점박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건대
그 의문에 대하여 해답이 나올 것 같은 실마리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막선생.'
어찌 그 분을 생각지 못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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