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지 않는 가운데 진화의 발걸음은 계속 옮겨졌다.
앞으로 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앞에서 막는 것 같은 기운이 있었다.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대로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무엇인가가 보였다.
집 같았다.
아니 집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여러 채가 있었다.
기와집이었다.
대갓집처럼 큰집이었다.
속세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크기였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살고 있다면 보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이 곳에도 동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빈집의 티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인가 따듯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누군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인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기와집의 앞까지 다달았다.
집의 담장이 너무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대문 위에 간판이 걸려 있었다.
"천상각(天上閣)"
이 기와집이 천상각이라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처럼 크게 생겼지 않은가?
그런데 누각처럼 천상각이 무슨 말인가?
적어도 이렇게 큰 집이라면 무슨 형태이든 다른 간판이 걸려 있어야 마땅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큰 누각이 있단 말인가?
진화는 기침을 한 번 하였다.
누가 있다면 인기척이 있을 것이었다.
헌데 기침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진화는 대문을 넘어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다시 기침을 하였으나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집은 생각과는 달리 빈집이었던 것일까?
대문의 안으로 각종 꽃들이 피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꽃들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진화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담장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멀리서 볼 때 이 곳의 집들이 여러 채인 것처럼 보였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진화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들린 것 같았다.
사람의 인기척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소리였다.
사람의 옷깃이 스치는 소리처럼 들렸으나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다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은 것일까?'
하지만 헛것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무슨 소린가가 들렸던 것이다.
'무슨 소리일까?'
그냥 소리가 아니었다.
머릿속을 관통해 지나가는 소리였다.
이렇게 맑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천상의 소리일까?'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정도로 맑은 소리였다.
단지 옷깃을 스치는 것 같은 가벼운 소리임에도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누군가가 걸어오느라 옷깃이 스치는 소리 같았다.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으면서도 옷깃을 스치는 소리가 들리다니?
더군다나 담장 외에는 보이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일까?
진화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도저히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정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천상각이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서는 이 곳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와서 잠시 쉬다가 가는 곳일까?
잠시 더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화는 다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하였다.
수십 미터쯤 갔을 때 저만치 앞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사람인 것처럼 보였으나 누군지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다시금 마당의 넓이를 알 수 있었다.
저렇게 넓은 곳이었구나!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서는 남자 같았다.
하지만 걸음걸이로 보아서는 여자 같기도 하였다.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까?'
차츰 다가가면서 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상대방도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분명 본 얼굴이었으나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였다.
깊이 생각을 더듬어 보던 진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개울가에서 본 바로 그 낭자의 얼굴 같았다.
당시에는 여자였고 지금은 남자의 옷을 입고 있으나 바로 그 낭자였다.
그렇다면 그 때에는 왜 여자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일까?
남자인가? 여자인가?
옷을 보면 남자 같기도 하고 당시의 생각을 하면 여자인 것 같아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 속이 복잡해져 왔다.
무슨 말인가 하여야 할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하지만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되었다.
바로 그 처녀였다.
먼저 말을 건 것은 그 처녀였다.
"어쩐 일로 이 곳에 오셨는지요?"
"소생도 연유를 모르겠소이다. 이 곳은 어떤 곳이며, 낭자는 이 곳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아직 때가 아니옵니다. 돌아가시옵소서."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아직은 이 곳에 오실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셔서 하실 일을 마저 하고 오십시오."
"돌아갈 방법도 모를뿐더러 가서 할 일이란 또 무엇이요?"
"가시면 하실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일들을 모두 하고 나서 이 곳에 오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요?"
"그냥 가시면 됩니다."
"그냥이라니? 이 곳에 오기 전에도 수없이 돌아가는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소이다.
하지만 갈 방법을 찾지 못하였소. 그런데 어떻게 그냥 가라고 하시는게요?"
"간다고 생각하시면 가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처녀의 얼굴은 화를 내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얼굴보다도 용모가 단정하고 목소리 또한 맑고 또렷하였으며,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완벽 그 자체였다.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무엇이온지요?"
"낭자는 뒤시며, 이 곳이 어떠한 곳인지만 알면 돌아가겠습니다."
"이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하여는 아직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오실 곳이라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 말씀드릴 내용이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내가 이 곳에 와 있는 것이요?"
"지금은 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오? 낭자!"
"곧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이 곳에는 낭자 혼자 계시는 것이요?"
"더 이상의 질문은 허용되지 않사옵니다. 자. 돌아가시옵소서."
갑자기 진화는 자신을 이끄는 어떠한 힘이 강력히 뒤로 미는 것을 느꼈다.
처녀는 그대로 서 있건만 자신은 어떠한 힘에 이끌려 뒤로 마구 미끌어져 가는 것이었다.
"낭자. 더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요. 한가지만 물어도 되겠소이까?"
"잘 돌아가시옵소서. 이 곳에서의 일은 잊으시고 여생을 잘 보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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