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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50)

by 날숨 한호흡 2008. 2. 29.

 

 

 

이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속세에서 물에 손을 담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이 물 속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것도 역시 속세의 물과 마찬가지였다.

물이 이렇게 변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물의 성격이 변한 것은 분명한데 물이 이렇게 고체의 형상으로 있을 수 있는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가만히 주변을 보니 조금씩 불던 바람이 불지 않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주변의 나뭇잎도 흔들림이 없었다.

나만 움직이는 것인가?

아까부터 주변의 어떠한 것도 움직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자신뿐인 것 같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희미한 느낌이 구체화되는 것이었다.

자세히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로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나만 움직이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여 귀를 만져 보았으나 이상이 없었다.

자신이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고 있지 않은가?

 

'무엇인가? 괴이한 일이로다.'

도대체 이렇게 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이 곳을 이렇게 멈추어 있도록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진화는 여러 모로 생각을 하였으나 달리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어떠한 원인이 이 곳을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일까?

누구의 힘으로 이 곳이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튼 엄청난 무엇인가가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물이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곳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랬다.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물이 파도의 형상으로 멈추어 있는 것은 시간이 멈추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멈출 수 있다니?

그렇다면 속세의 시간 역시 멈추어 있는 것일까?

이 곳의 시간이 멈추어 있다면 속세의 시간 역시 멈추어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이 곳에 와 있는 동안 시간이 멈추어 있다면 아까 보았던 그 사람들이 움직였던 것은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시간의 예외가 있다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시간에서 벗어난 예외가 있을 수 있다니!

어쨌든 그 곳의 사람들이 있는 곳을 가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가 보자.

가 보려면 물을 건너야 하였다.

바지를 걷고 물로 들어가 도랑을 건너도 역시 물은 그대로 있었다.

따라서 바닥은 평평하면서도 물의 높낮이가 있어 수위가 높은 곳이 있고 낮은 곳이 있었다.

바지가 젖지 않을 만큼 걷고서 도랑을 건넜으나 역시 물은 그대로 있었으며,

나뭇잎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바람이 불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니?

이 곳의 자연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이 곳의 자연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초자연적인 것일까?

자연이란 무엇일까?

자연이란 것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하여튼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곳에 와 있다니?

누구든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 곳은 인간의 지혜로는 풀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슨 지혜로 풀어야 할 것인가?

 

신의 지혜?

이 곳을 만든 사람의 지혜로 풀어야 할 것인가?

과연 그 분이 신인 것은 맞는 것일까?

신이라면 내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그 곳에 계시는 분들이 신일까?

아까는 여러 사람이 보였다.

그 여러 사람들이 전부 신이었던 것일까?

어쨌든 가보자.

신이든 아니든 만나서 보면 확인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진화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으나 그 무거움이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생각을 가벼이 하면 가볍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면 더 빨리 걸을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허나 발걸음을 빨리 옮기려 하였으나 더 빨리 가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듯 했다.

어쨌든 머리 속을 비우고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생각을 말고 가 보자. 그것이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진화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혀서 머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 있었나 싶었다.

내가 살아온 날 동안 겪어온 일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생각들이 머리 속에 들어있다고 머리가 무거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머리 속이 정리되면 가벼울 것은 사실이었다.

머리가 가볍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어떠한 일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여야 할 것인가?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하여야 할 일을 내가 못하면 누가 하는 것일까?

그대로 묻혀버리고 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세상은 누가 무슨 일을 해도 하는 것이며, 그 일이 어떻게든 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가 조종하는 것일까?

하느님일까?

부처님일까?

아니면 그 보다 높은 조물주일까?

진화는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일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다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걸어가면서 한참을 생각하던 진화는 생각의 끄트머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갈 때가 되어야 간다는 것 - 참으로 단순한 진리를 앞에 놓고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한참을 머리를 비우지 못해 수많은 마음의 고통을 겪던 진화는

결국 모든 것은 갈 데로 가는 것이라는 것에 자신의 생각을 멈추었다.

갈 데로 가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을 때

갈 데로 갈 수 있는 것이며, 시간과 노력이 없다면 갈 데로 가기로 되어 있어도 갈 수 없는 것 같았다.

 

'갈 데라...... 갈 곳이 어디인가? 지금은 인가를 찾아서 가는 중이지만 나중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지만 나중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였다.

나중 생각은 지금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은 지금 필요한 만큼만 생각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랬다.

나중 생각은 그때 가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인지도 모르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어찌 나중을 생각하는 것인가?

나중이 길어지면 나의 미래가 된다.

나중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미래를 안다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나중을 안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중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진화는 이러 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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