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지.
특히 자네와 같은 경우는 아직 선계에 입적이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네."
"생각이라니요?"
"비우는 생각일세. 지상에서 수련을 할 때 비워야 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비움은 곧 가벼움이고 가벼움은 곧 위로 올라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위로 올라갈 수 있음은 곧 하늘에 다가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
그랬었구나.
하늘을 항상 옆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은 위에 있는 것인가?
"하늘은 위에 있네. 물질적으로는 항상 옆에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며 사실상 그렇다고 할 수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높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정신적인 위치는 높이 있으면서 어디에나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어떻게 구분을 하여야 할 것인가?
옆에 있으면서도 높이 있는 것.
"간단히 생각하면 되네. 서당의 훈장들께서는 항상 학생들이 생각지 못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계시지만
한 교실에 서 있지 않은가? 그러한 이치와 같은 것이지."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등급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언제까지든 머물어야 할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네. 자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이네."
자신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요?"
"자신을 버려야 하네.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무거워서 건너기 힘들 것이네."
자신을 버리라니?
나를 이보다 더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아직 자신이 무거워서 그런 것일세. 자신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워서는 이 다리를 건널 수 없네."
건널 수 없다니?
이만큼 가벼운 사람도 있는가 싶게 가볍게 느껴지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무거워서 건널 수 없다니?
이 다리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가벼워야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선인이 아니고는 건널 수 없을 것일세. 자네는 아직 선인이 아니므로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을 것인가
장담하기 어렵네."
그렇구나.
이 다리가 실처럼 보인 것이 그러한 이유였구나.
그러한 말을 듣고 보니 거미줄보다 더 무게를 견디는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이래가지고는 정말로 건너기 어려울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멀어 보이기만 하는 이 길을 가기만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진정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의 어디에 문제가 있어 선계의 입적이 이렇게도 어렵고 더딘 것일까?
"생전에 수련을 하면서 자신의 무게를 덜지 않으면 사후에 하기가 어려운 것이지.
사후란 어디까지나 생전의 존재를 그대로 평가하는 곳이기 때문이네."
그랬었구나.
하지만 나의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나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전부 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면 수련을 한 사람은 어떠한 평가를 받는 것일까?
갑자기 앞이 훤해져 왔다.
구름이 빛을 내며 뭉게뭉게 일어나서 커져 오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이제는 어떠한 일에도 마음의 동요가 별로 없었다.
선계의 일이란 것이 변화무쌍한 탓도 있으려니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더욱 문제인 것
같아서 가급적 잔잔한 마음가짐을 지니려 노력한 것이 그런 대로 진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안에서 또 무슨 조화가 일어나려나 하며 바라보았으나 얼마간 아무런 조화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어디에 걸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리의 모습이 보여야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가 알 수 있을 것인바
저만치 앞의 다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인지 다리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눈으로는 알 수 없을 만큼 무디어져 있는 것인가?
이진사는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자신의 무능이 한스러운 것이었다.
이진사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다리가 넓어졌다.
그런 대로 걸을만한 정도까지 넓은 길이었다.
다만 흰색의 판일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래로는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도 곱디고운 흰색이었다.
이렇게 고운 색깔의 구름이 있다니!
구름의 빛깔이 이렇게 고운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흰색이되 옥처럼 푸른빛이 은은히 도는 흰색이었다.
구름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지난날들의 일이 떠올랐다.
지상에 있을 때는 저렇게 구름이 아름답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구름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지상에서 있었던 어떠한 일들도 이곳에 오면 저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네. 자네의 마음이 그만큼 고와졌다는 뜻이지."
"고와졌다는 것은 마음이 비워졌다는 뜻입니까?"
"그렇네. 우주에서는 인간들의 마음이 비워졌을 때 더욱 많은 것을 채워주시지.
선인들이 하는 일은 인간들의 마음이 비워졌을 때 우주로 채워주시는 것이네."
그렇구나...
그런데 나의 경우 선인이 아니니 어떠한 임무를 받을 것인가?
"자네는 준선인이므로 보조적인 임무를 부여받을 것이네."
"보조적인 임무라면 어떠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아직 알 것 없네. 자네는 지금 그 다리를 건너는 것만도 힘겨울 것이네."
그렇다.
지금은 다리를 건너는 것이 1차 목표인 것이다.
다리를 건넌다면 또 다른 어떠한 목표가 있겠지만 지금은 우선 다리를 건너는 것만이
나의 목표인 것이다.
모든 것은 그 후에 생각하자.
나의 마음 가운데 있던 모든 것들이 상당히 비워졌으나 더욱 비워야 할 것들이 있으며,
이 비워야 할 것들을 비운 후에 주된 것이든 보조적인 것이든 나의 일을 만날 수 있으리라.
가자.
이진사는 훨훨 앞으로 나아갔다.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
마치 다리에 발이 닿지 않는 것처럼 걸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가벼운 기분은 선계에 온 이후 처음이었다.
아마도 마음을 비운 탓에 이렇게 가벼운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이리라.
내가 이럴진대 선인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볍고 빠를 것인가?
"날아가는 것 보다 훨씬 빠르지."
그럴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보다 더욱 빠를 것이었다.
이진사는 자신이 공부를 마치고 다시 올 때쯤은 그러한 걸음걸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훠이훠이 옮기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이진사의 경우도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서서히 선계의 한 부분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었다.
'1. 선계수련 교과서 > 소설 선(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仙 (045) (0) | 2008.02.24 |
---|---|
소설 仙 (044) (0) | 2008.02.23 |
소설 仙 (042) (0) | 2008.02.21 |
소설 仙 (041) (0) | 2008.02.20 |
소설 仙 (040) (0) | 2008.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