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한다. 이 길은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는 나의 길인 것이다. 가자. 힘내서 걷자.'
길은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했다.
좁을 때는 한 뼘도 되지 않다가 넓을 때는 간신히 옆으로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건너 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체(기로 된 몸체)가 걸어간다면 닳은 흔적이 남지 않을 것이다.
기체가 건너갈 들 무슨 발자국이 남을 것이며, 닳은 흔적이 남을 것인가?
아무런 자국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간 것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건넌 것은 아닐세."
다시 선인의 말이 들렸다.
"지금까지 한동안 왜 말씀이 없으셨는지요?"
"그 곳은 대화가 불가능한 구간일세. 혼자 마음의 결정을 하여야 하는 구간이기 때문이지."
건너갈 것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구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중요한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는 어떠한 조언도 구할 수 없을 것인가?
"그렇네. 선계의 모든 일은 자신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따라서 중요한 일에 닥쳐 누구의 조언을 구하는 일은 현재 자네에게는 불가능한 일일세."
그랬었구나.
건너지 않았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 것인가?
"그 시험에 대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네. 자네가 결정을 잘 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하여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일세.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본인이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 과정이 전부 끝나기 전에는 해답을 알 수 없지."
그렇구나.
나는 지금 시험중이구나.
지금부터는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의 결정으로 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가보아야 할 것인가?
그렇기를 기원해도 그렇게 될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으로라도 가야 할 것 같았다.
'간다. 혼자서 간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다. 모두 나 혼자의 힘으로 해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이진사의 기체가 가벼워졌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두 배는 빨라진 것 같았다.
'이런! 생각 한 번에 이러한 효과가 나다니...'
마음먹기에 따라 항상 변수가 있는 것이 선계의 일이었다.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면서 가려 했다면 몸이 무거워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잘 생각한 것이네.'
자신의 내부에서 말이 들렸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나 아닌 또 하나의 나인가?'
그러나 혼자 가보려 마음을 먹었으므로 다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버려 두시옵소서. 하늘이 저의 마음을 아시고 계신다면 어떤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렇다.
이 세상은 모두 혼자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분에게 폐를 끼쳐가며 간다는 것 역시 도리는 아니리라.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혼자 간다고 해서 그냥 버려 두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대로 놓아두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잊고 가보려 애썼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철저히 혼자서 해내 보리라.
그것만이 나의 길을 스스로 알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만이 그 길을 가고 나서 나 혼자 갔노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련이란 것이 원래 혼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누구에게 의지하며 가려 한 것 아니었던가?
도의 길을 가면서 점차 알아지는 것은 바로 항상 혼자였으며 그 혼자라는 사실이 더 없이 편안한 것이고,
그러한 의식이 성장하여 드디어는 한 분야를 책임질 수 있는 그릇이 되어 가는 것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이제는 혼자서 해 보리라.
발걸음이 가벼워지자 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길은 더욱 넓어졌으며, 가는 발걸음도 편안해졌다.
이제는 두려움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저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였던 일도 옛일 같았다.
그럼에도 그 길은 멀었다.
'이 길이 이렇게 먼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천천히 가자.'
하얗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저 하늘은 지상에서 보던 그 하늘일까? 아니면 다른 하늘일까?'
아마도 같은 하늘은 아닐 것 같았다.
지상에서 보던 하늘은 우주의 전부처럼 여겨졌었지만 우주에서 보는 하늘은
아주 일부만 지상의 하늘일 것 같았다.
어쨌든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가는 길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그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선계가 아니던가?
생각을 속일 수 없는 곳.
생각을 하는 그대로 드러나는 곳.
생각을 바로 하는 버릇이 들지 않는다면 정말로 힘든 곳이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며 생각과는 다른 말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속세의 일이었다.
헌데 이곳은 그것이 안 되는 곳이었다.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이 외부로 표현되고, 그것이 다른 선인들에게 알려지며,
선계의 모든 선인들이 알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아마도 기(氣)적인 상태이므로 이것이 가능한 것 같았다.
이것이 선계의 실상인 바에야 행동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온다면
불일치로 인하여 상당한 혼선이 오도록 되어 있었다.
그 주위는 물론 상당히 널리 까지 파장의 혼란이 있었던 것이었다.
우주란 정리된 곳이어서 정리상태가 흐트러지는 순간 주변의 혼란이 오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정제된 사람만이 입장이 허용되었으나
이진사의 경우 다행히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어느 정도 익힌 상태이므로
혼란이 없이 이 정도의 상태에서 오게 된 것이었다.
인간들이 몇 명만 온다해도 많은 혼란이 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다리가 흔들렸다.
바람은 없는데도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떨어지지 않고 서 있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흔들림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다리에 상당한 힘을 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다리의 흔들리는 정도가 심해지며 드디어는 다리가 뒤집어 짐에 따라
이진사는 발을 헛디디며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풍선처럼 서서히 떨어지던 중 무엇인가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웠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것이 닿는 것이었다.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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