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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42)

by 날숨 한호흡 2008. 2. 21.

 

 

'무엇인가?'

선계에 온 이후 전혀 상상치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보아 왔는지라 이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무엇이 있으면 가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저곳으로 가려면 얼음을 밟고 건너가야 할 것이었다.

발이 시릴 것 같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에는 아무 것도 신은 것이 없었지만 아직도 인간의 습성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마음을 움직여 앞에 보이고 있는 얼음으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얼음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아니 얼음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작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작아지다니...'

이것은 또 무엇인가?

얼음 속에 있는 무엇을 알아보려 한 것이건만 이렇게 변화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앞에서 가만히 보고 있자 얼음이 녹아 내리며 그 안에 있던 실체가 나타났다.

성(城)이었다.

커다란 성이었다.

 

하얀 석고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성이었다.

성벽이 높았다.

수십 길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이 보이지 않았다.

이진사는 천천히 그 성을 한바퀴 돌았다.

성의 뒤로 돌아가자 점차 성벽이 낮아지다가는 나중에는 성벽이 없었다.

성안이 들여다보였다.

 

한 사람이 옷을 벗긴 채 하부만 천으로 가린 상태에서 땅에 박힌 두 길 정도의 나무에 묶여 있었다.

그 주변에는 서너 명의 로마 군인을 닮은 병사들이 삼지창 같은 것을 들고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었으며, 그 안에는 시간의 흐름도 없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것을 보여주고 있는 의도가 무엇일까? 아직 나의 과정이 끝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지금 보고 있는 것조차 나에게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아두는 것이 나에게 필요할 것일 테니 보아두도록 하자.'

 

이진사는 편히 생각키로 하였다.

지금 보고 있는 저 광경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알 수 있을 만큼 알아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니

이곳에서 얼마간은 머물러야 할 것이었다.

자리를 잡고 마음을 편안히 한 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묶여 있는 사람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이게 누구인가?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다.

내가 왜 이러한 곳에 와 있는가?

내가 이러한 곳에 와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저렇게 매달려 있다니?

서서히 그 사람에게 다가가자 점차 상호간의 영상이 일치되더니 어느 덧

묶여 있는 그 사람의 눈으로 들어와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시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바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기아와 헐벗음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굶주린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저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죄인가?

점차 보이는 부분들이 희미해져 갔다.

 

이번에는 푸른 바다였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무서운 크기의 파도였다.

점점 아무런 생각이 없어져 갔다.

그 외에도 수많은 광경들이 바뀌어 갔다.

그러나 그것들이 바뀌는 것은 자신의 머리 속에 남아 있던 생각들이 소진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머리 속 어딘가에 남아 있던 그 많은 생각의 찌꺼기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생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불러 일으켜 판단을 혼탁하게 할 수 있는 과거의 잔존물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신이 정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가야 할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전부 자신의 영혼에 대한 탈색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리라.

다시 앞이 어두워져 왔다.

발바닥의 밑 부분이 낯익은 감각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밟았던 감각이 살아오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몸이 위로 끌려 올라갔다.

마치 줄로 묶어서 끌어 올라가는 것처럼 올라가자 서서히 멈추어 서더니 어딘가 내려졌다.

 

"이제 눈을 떠보게."

 

얼마만의 기음(氣音)인가?

다시 말이 들리다니!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선음(仙音)이 들리는 것이었다.

눈을 뜨자 자신이 건너던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이 건너다가 떨어져 내렸던 바로 그 위치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인가?

지금까지 내가 꿈을 꾸었단 말인가?

이 자리는 무엇이고, 지금까지 겪은 것은 또 무엇인가?

 

"지금까지 그냥 본 것은 아닐세. 자네는 자네가 겪을 것을 겪은 것이네."

 

그렇다면 나는 얼마의 역경을 더 겪어야 한단 말인가?

 

"역경이라고 할 수 없지. 당연히 겪어야 할 것을 겪는 것일세."

 

"겪어야 할 것이라면 어떠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자네가 전생에서 보고 들었으나 마음속에 새기고 털어 버리지 못한 부분을 지금 보고 겪으며

털어 버리고 있는 것이지."

 

그랬었구나.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나타나서 나의 앞에 보였던 것이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전부 겪어야 할 것이라면 앞으로 상당 부분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리를 건너가는 것은 아마도 엄청난 시일을 요할 것이 아닌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일세. 자네가 생각하기에 따라 금방 건너갈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마도 나의 마음가짐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 길지 않은 시간 내에 건너갈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이곳을 건너가면 또 어떠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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