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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39)

by 날숨 한호흡 2008. 2. 18.

 

 

 

인간으로 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선계에 오니까 그것이 아니었다.

염라대왕이 따로 없었다.

선계 자체가 염라대왕인 것이었다.

벼슬이 따로 있고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곧 하늘 그 자체였다.

 

"마음을 가볍게 하는 법"

마음을 가볍게 하는 법이라?

마음의 무게가 얼마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가볍게 할 것인가?

잠시 가벼운 생각이 들었으나 선계에서 이처럼 심각한 문제가 없었다.

속에서는 수련으로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을 수련을 하지 않고 선계에 입적함으로 인하여

수련 기회를 놓쳐 이처럼 무겁게 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비수련생에 비하여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바는 아니나

어쨌든 더욱 진화하여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 앞으로 아득한 실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선계의 안목으로는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까이 보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멀리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으로 있을 때처럼 멀리 아스라히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일까?

길인가?

그랬다.

길이 보이고 있었다.

 

길!

길의 의미가 새삼 다가왔다.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았다.

길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지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저 길은 누구인가가 지나갈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내가 가보면 어떤가?

그래.

가보자.

 

이진사는 서서히 저만치 보이는 길의 입구로 내려갔다.

가려고 마음을 먹자 움직여지는 것이 꼭 인간으로 있을 때 천천히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길의 입구는 좁았다.

한 자 정도의 넓이인데 다리는 단단해 보였다.

허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의 저 멀리가 공중에 걸려 있었다.

구름과 더불어 공중에 걸려 있는 다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수만 리는 되지 않겠나?

이 시점에서 왜 나의 눈에 뜨인 것일까?

 

"가보게.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네. 자네는 지금 자네의 자리로 가는 것일세."

 

"저의 자리라니요?"

 

"......"

 

더 이상 말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이던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구름에 걸린 다리 하나만 보이고 있었다.

끝이 없는 다리...

이 다리를 건너야 나의 길이 있다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건너가야 할 것이었다.

 

가보자.

가서 나의 길을 찾으리라.

길이 멀었다.

선계에서 이 정도라면 엄청난 거리일 것이다.

언제나 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이 길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선계와는 다른 길인 것 같았다.

선계란 마음먹는 것이 곧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이 길은 보일 때부터 그것이 아닌 것이다.

선계의 다른 부분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자신이 없었다.

이 길은 무엇인가 다르다.

선계에서의 길이지만 속세에 있는 길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무엇인가가 마음을 가라앉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이것이 두려움인가?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일 것이다. 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욱이 저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지 않는가?'

 

"......"

 

전에는 이렇게 생각하면 대답이 들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답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선계의 일부로 존재하던 전의 입장과는 달라진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머리 위와 다리 아래로 연결되어 있는 기운줄을 확인하였다.

기운줄의 연결이 끊어진다면 과연 건너 갈 수 있을 것인가?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이진사는 다리의 초입을 향하여 천천히 발을 옮겼다.

얼마 건너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다리가 좁아 보였다.

아니 이렇게 좁은 다리는 아니었는데 어느 새 한 뼘도 안 되는 좁은 다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갈수록 다리가 아닌 줄타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실처럼 보였던 것인가?

이렇게 좁은 다리를 과연 건널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바람이 안 불지만 바람이 분다면 저 아래로 떨어질 것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흰 구름이 보이고 있는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 아래는 무엇이 있을까?

속세일까?

속세는 무엇을 통하여 내려다 볼 수 있을까?

이 다리에서 떨어지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닐까?

전에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속세에서 다리를 건너가는 것처럼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이 무엇인가?

내가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인가?

기운줄이 그대로 있는데 무엇이 무서울 것인가?

떨어진들 어디까지 떨어질 것이며 떨어진다 한들 또 선계가 아닌 것인가?

이진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길이 한 뼘 정도로 넓어졌다.

마음먹기에 따라 길이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자신이 떠나온 자리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앞만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득히 무엇인가가 보이고 있었다.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섬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한 것이 보이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수평선에 보이는 섬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구름 위로 솟아 있는 그 섬과 같은 모양은 끝없이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멀리에 있다면 얼마를 걸어야 할 것인가?'

선계에 있다면 마음 먹기에 따라 단숨에 달려 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었다.

한 발 한 발 걸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아주 천천히 한 발 한 발 걸어서 가야 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이렇게 걸어서 다녔던 것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멀리만 보이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으로 생각되는 것은 해가 지지 않는 것과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있다면 이 정도 먼 거리를 맨몸으로 걸어서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선계이므로 인간의 속도로 걸어간다고 해도 도착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었다.

이진사는 한 발 한 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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