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마을에 도착하였으나 친구가 없었다.
친구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라 먼 길을 떠난 것이었다.
진화는 다시 오던 길을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혹시 그 처녀가 있을까 하여 살펴보았으나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빨래를 하던 흔적도 없었으며, 사람이 있었던 어떠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처녀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사람이 앉았던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이 곳이 분명한데..."
틀림없이 그 처녀가 앉았던 곳이었는데 사람이 있었던 자국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였을까?'
일찍이 이러한 일은 없었다.
무엇엔가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까는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여우가 그런 장난을 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까는 분명히 조금의 의심도 없이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인 것과 아닌 것을 모를 만큼 자신이 어수룩하지는 않을텐데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틀림없이 개울 건너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처녀는 개울 건너 편 친구네 집 쪽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헌데 지금 다시 와서 보니 사람이 앉았던 자리조차 없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에게 홀릴 정도로 정신이 없었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이 앉았던 자리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 자리에는 틀림없이 빨래 돌이 놓여 있었으며,
그 돌에서 그 처녀가 빨래를 하였던 것이다.
그 자태가 아리따워 한참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그 처녀가 있었던 자리조차 선명하건만
아까 본 그 자리가 아닌 것이다.
내가 다른 길로 온 것인가 하여 다시 한 번 돌아보았으나 틀림없이 그 곳이었다.
개울을 보니 움푹 패인 웅덩이조차 아까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저 곳이 그 처녀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 아니던가?
진화는 그 곳으로 가서 앉아 보았다.
그 자리는 다른 곳과 무엇인가 다른 것 같았다.
기운이 온화하였다.
사람이 있었던 기색이 남아있었다.
무엇이었는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기운으로 화하여 그렇게 보였던 것인가?
이 곳의 기운이 그렇게 보였단 말인가?
다른 기운이 사람의 모습으로 화하여 보일만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저 웅덩이에 어떠한 기운이 있는 것일까?
그랬다.
웅덩이의 기운과 처녀가 앉았던 곳의 기운이 어떠한 조화를 이루어 환상을 만들어 낸 것일까?
그런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이 곳에는 기운의 조화가 있었다.
그 기운의 조화는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이어온 기운이 이 곳에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 곳의 기운은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아까는 어떻게 처녀로 보였던 것일까?
나의 평소의 어떠한 면이 이러한 기운의 변화를 느끼도록 한 것일까?
사람의 기운과 천지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면 어떠한 일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헌데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기운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감각이
열려야 한다고 하였다.
나의 어디에 그러한 기능이 열려 있단 말인가?
이 나이 되도록 기운을 느끼려는 어떠한 수련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으며, 누가 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나의 전생으로부터 내려온 저 먼 곳의 기억 어딘가에 이러한 감각이 배어 있었던 것일까?
누구로부터 이러한 감각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스며온 것인가?
좋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렇다고 치자.
헌데 아까 왜 그 기운이 처녀로 보였으며, 그 처녀가 나에게 말을 건넸던 것일까?
그 처녀의 기운과 웅덩이의 기운은 어떠한 상호 역할을 한 것일까?
진화는 가만히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웅덩이에 산 그림자가 비치었다.
그 산 그림자는 그 곳에 비치어야 할 산이 아니었다.
그곳에 비치어야 할 산은 나지막한 산이었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 비치인 산은 천하의 절경이었다.
그러한 절경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신선들이 살 것 같은 경치였다.
인간 세상에 이러한 경치가 있다니?
물에 비친 경치가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경치 그대로였다.
거울에 비치인 것과는 다른 경치로서 바로 앞에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경치가 이 세상에 있다면 아마도 보지 않고 이승을 하직한다면 너무도 아까운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물 속에 비친 경치가 어떻게 이렇게 바로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일까?
무슨 환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오자 그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과는 다른 어떠한 현상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럴 수도 있는 것이구나.
사람이 이렇게 홀릴 수도 있는 것이구나.
그러나 자신이 잘못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몸을 움직여 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팔 다리 어느 하나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지금 내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정상이 아닌 곳이 없다.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보고 있는 이 것은 무엇인가?'
너무나도 선명한 산이었다.
절벽과 소나무가 조화를 이룬 그 곳은 구름이 절벽 중간에 걸려 있었으며,
그 사이로 학이 날아다니는 살아있는 곳이었다.
그림이 아니었다.
'이러한 곳이 있다니?'
생전 처음 그림 속에서도 보지 못하던 경치를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움직여 보면 보이지 않을 것인가?
진화는 옆으로 걸음을 옮겨 보았다.
느낌이 달랐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웅덩이 자리에 비치던 산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그대로 물이 흘러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면 어떠할 것인가?
처녀가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 보았다.
다시 물 속으로 산이 보였다.
역시 선명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물 속에 비치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너무나도 현실과 같았다.
'이것이 무엇인가? 내가 아까부터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처녀를 보았을 때 무엇인가 이상하였다.
분명 대갓집 규수로서 개울에 나와 빨래를 할 처녀가 아님에도
이 곳에 나와 빨래를 하고 있었지 않은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외간 남자를 향해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친구네 집을 다녀와서 다시 보니 처녀가 빨래를 하던 자리가 전혀 없었으며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내가 지금 친구네 집에 다녀온 것은 맞는 것일까?
아마도 다른 곳에 다녀온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것은 정상이며 지금 보고 있는 이것만이 다른 것 같았다.
이것 역시 정상인 것은 틀림없으나 어떠한 다른 원리에 의하여 이렇게 보여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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