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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32)

by 날숨 한호흡 2008. 2. 8.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아까도 지금 이 자리였으며, 지금도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위치가 옮겨지는 것은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해서 위치가 변하는 것을 모를 정도로 감각이 무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앞에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개가 걷히듯 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눈이 열리는 것인가?'

이진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네. 자네의 눈은 이제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눈이 되는 것이네."

 

'아뿔사. 생각하는 것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눈이 열리는 것도 단계가 있는지요?"

 

"자네가 지상에서 수련할 때 보이는 것도 단계가 있지 않던가? 그것과 같은 것이네.

이곳에서는 일정 단계에 있지 않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네.

그 일정 단계는 기적인 단계를 말해주는 것일세.

아까 자네는 이곳으로 오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을 것이네만

우리들은 자네가 오는 것을 모두 보고 있었지.

이곳에서는 자신이 인솔하여야 할 사람이 오는 것을 미리 보고 있네.

그래서 자신이 인솔하여야 할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네. 자네는 우리가 벌써부터 지켜보고 있었지."

 

"상당히 많은 수의 분들이 오실 텐데 전부 지켜보고 계시는지요?"

 

"전부 지켜볼 필요는 없네. 대부분 스스로 갈 곳으로 가게 되어 있지.

우주의 장점은 대부분의 것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네.

따라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되어 있지."

 

"그랬군요. 제가 선생님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른지요?"

 

"특별히 무엇이라고 부를 필요 없네. 이곳에서는 상대방을 생각만 하면 그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되어 있네."

 

"저는 앞으로 어찌 될른지요?"

 

"이곳에 온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그것이 궁금한가?"

 

"예."

 

"아직은 이르네. 자네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었네만 아직 결정을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생각들하고 계시네."

 

"아. 예-."

 

"당분간은 이곳 누하단에서 지내게 될 것이네. 기로 이루어진 세상이므로 잘 곳이 따로 있고,

먹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세. 인간으로 있을 때의 버릇을 고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걸세.

아무쪼록 빨리 속세의 습(習)을 버릴 수 있도록 하게."

 

"예."

 

"이곳의 생활은 그리 성급히 생각지 말게."

 

"성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오나 어떻게 될 것인가가 궁금하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성급히 생각지 말라는 것이네."

 

모든 것이 될 때가 되어서야만이 되는 것이 이곳의 법칙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인간으로 있을 때의 습성이 남아서 모든 것이 궁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조금 더 있으면 궁금하지 않게 될 것이네. 될 때가 되면 되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네."

 

"네."

모든 것이 때가 되면 되는 곳, 나의 삶의 결과에 대하여 평가를 받는 마당에 있어

나의 궁금함은 이곳에서 수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아쉬워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소용될 때가 되면 저절로 되는 것이 법칙이라면

내가 성급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우주란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때가 되면 되는 것이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허나 미리 알면 대비를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인간 세상의 일이라면 미리 알고 사전에 대비를 하여 놓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것이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아니면 나의 신분이 아직 그러한 것을

문의할 정도가 되지 않아서일까?'

 

"모두이네. 모든 것이 때가 되면 될 것이려니와 자네가 아직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네. 이곳이 인간세상과 다른 것이 그것이지.

자네도 이곳의 식구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네."

 

모든 것은 체감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라는 개념이 없이 연이어지는 시간처럼 느껴졌으며,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서 이곳

우주의 시간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인간세상의 습으로 본다면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나 이곳의 습으로 보면 당연한 것이니

너무 궁금해하지 말게.

모든 것은 때가 오면 밝혀지는 것이니 자네가 그렇게 생각지 않아도 될 것은 되고,

안될 것은 안 되는 것이네."

 

인간으로 있을 때와는 모든 것이 다른 것 같았다.

이진사는 인간으로 있을 때의 모든 기준을 버려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모든 가치와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주의 기준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우주의 기준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을 새로이 배워야 할 것이다.

새로이 배워야 할 것이라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의 것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버리자!'

 

"그렇네. 이곳에서는 모두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네."

 

"알겠습니다."

대화가 따로 없었다.

생각하는 것이 바로 대화였으며, 이것이 곧 바로 전달되어 상대방이 알아버리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모두 버리기로 생각을 달리 하였다.

생각을 달리 하는 것조차 이곳에서는 모두 감지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 역시 그렇게 감지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당시에는 인간의 습성이

몸에 배어 있어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 모두 버리고 가벼워질 때까지 있게. 그리고 난 후 다시 이야기함세."

 

"알았습니다."

 

그 정도의 대화를 한 후 그들은 갔다.

몇 발자국을 뒷걸음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다시 햇볕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계속 흘렀다.

아마도 며칠이 지난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며칠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므로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훤한 가운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정확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인가에 대하여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천천히 흘러가는 것도 같았다.

누하단에서 며칠 정도로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러한 시간이 지상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바뀌고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으나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지상에서는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촌각이 흘렀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세월의 흐름은 속세의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본다면 쉽게 알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을 확인할 수 없는 처지에서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자신의 마음에 궁금하게 남아있던 모든 것들을 점점 비워가고 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러한 것은 점점 아득히 높아 보이던 천웅각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비워지는 것만큼 나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가마득히 높게 보이고 있는 천웅각이었지만 그래도 느낌상으로 한결 낮아진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기분이 느낌만은 아닌 것 같았다.

천웅각의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글씨 한자의 크기는 가로 20자, 세로 20자 정도인 것 같았다.

눈이 좋아진 것은 아닌데 기안(氣眼)이므로 이 정도의 크기가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려하자 천웅각이란 글씨를 조각할 때 약간의 요철이 생긴 것까지도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상의 거리라면 거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크기였으나 선계이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정도의 시력이라면 인간으로서는 아마도 최상의 시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계란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정도의 시력을 가질 때에야 선인들의 시력은 실로 무서울 정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을 것

아니겠는가?

아마도 저 멀리 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까지도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으리라.

선계란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구나.

 

그러나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마저도 버리라는 것이 아까 만난 선인들이 내게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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