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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33)

by 날숨 한호흡 2008. 2. 9.

 

 

 

다시 몸이 무거워졌다.

모두 버리라고 하였음에도 미련을 가진 것이 감지된 것 같았다.

이곳의 모든 것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누가 지시하거나 작동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 자동이었다.

아직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 선계의 인간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이진사의 경우

예전의 모든 것을 덜어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것들이 전부 감지되고

그것이 이진사의 행동에 낱낱이 반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진사의 경우 이미 많은 부분을 비우고 왔으므로 그래도 상당 부분이 참작되어

이 정도에 그치는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지상에서 모든 것을 비우는 연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만났던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과 동행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과 동행한다고 해서 무엇이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릴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지상에서는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다.

이곳이라고 한정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나 지상의 경우 그것이 너무나 분명하였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고 올 수는 없는 것이며, 아주 부분적으로 성취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시각으로 볼 때 상당히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였다고 보여지는 인간들의 경우에도

임종 직전까지 추태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임종에 와서도 추태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던 이진사는 마음을 비우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와서 보니 아직 많은 부분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비우고 나면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이승을 하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승을 하직하지 아니하였던가?

그것은 무엇인가 오차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만큼 공부를 하였으면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이승을 버릴 수 있어야 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떠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그곳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찌하랴!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되어 버리고 만 것을......

어쨌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더 이상 무엇을 비워야 할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 구석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 비웠다고 생각하였었는데 다시 무엇이 뭉게뭉게 일어나고,

그것이 모여서 마음속에서 풍파를 일으키고, 자신을 흔들어 놓았다.

인간 세상에 있을 때는 그러한 것을 표정관리하면서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계인지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있는 이곳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

 

마음을 바로 먹어야 하리라.

마음을 바로 가져야 만이 나의 길을 올바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바로 먹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아직 잘 모르겠으되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내려가던 이진사의 위치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마음을 먹기에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마음먹은 바에 대하여 이렇게 정확히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마음을 바로 먹어야 할 것임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마음을 비워야 하리라.

마음을 비우고 나면 한결 천웅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어야만이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마음을 비운 결과가 정확히 반영되고 그것에 의해 자신의 마음의 무게가 평가되는 곳.

 

가만히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있었다.

그들 역시 마음을 비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개중에는 스님의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고, 평복을 한 사람도 있었다.

평복이지만 위치가 높은 사람도 있었고, 스님의 복장을 하였으나 낮은 사람도 있었다.

저 아래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상태를 알려주는 위치에서 떠 있었다.

하지만 떠 있는 상태임에도 자신들이 지상의 땅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경이롭고, 상상키 어려운 세계였다.

명(命)의 세계가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에 대하여 이진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인간이 사후에 자신의 공과에 따라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지옥과 천당으로 간다는 것,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으로 간다는 것에 대하여는 들은 바가 있으나

그 이상에 대하여는 죽는 날까지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찌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이것은 한정된 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어찌해서 확인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므로 포기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와서 보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었던 일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것을 안들 어찌할 것이며, 알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인간의 무리에 끼었던 것은 인간의 무리에 끼어서 인간을 통하여 배우고, 인간에게 돌려주며,

인간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하여 보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던가?

 

갑자기 속세에 남겨놓고 온 가족들이 생각났다.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모두들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일.

이진사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남겨놓고 온 자손들이 얼마나 자신의 일을 잘 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심 걱정조차 오히려 방해가 됨을 인식하고 모두 버리기로 하였다.

공중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이진사의 영체는 점차 공중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음이 비워졌다는 증거였다.

 

마음이 비워짐으로 인하여 가벼워진 이진사가 천웅각에 다다른 것은 아마도 지상의 시간으로 하면

1개월 이상은 족히 흘렀을 것처럼 느껴지는 즈음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천웅각의 입새는 의외로 좁았다.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문이 있었으며, 문 양쪽으로 일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바닥은 대리석과 같은 돌로 깔려 있었으며 옆은 나무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천장은 높아서 어둡고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언뜻 올려다보니 나무로 된 서까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절에 들어갈 때 사천왕상이 있는 곳이 연상되었으나 입구가 너무 좁아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저러한 재질로 어떻게 저렇게 큰 건물을 받치고 있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다가가자

일전에 만났던 백의(白衣)인들이 이진사를 맞이하였다.

 

"수고하시었소. 장도에 힘이 많이 드셨으리라 생각하오."

 

"아닙니다. 잘 인도해주신 덕분에 편안히 올 수 있었사옵니다."

 

"이제 천웅각에 드셨으니 지금까지의 고생은 모두 잊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은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하느님인 것이며,

이제 진사께서도 하느님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옵니다.

지상에서 공부중인 수많은 인류 역시 하늘의 일부이며, 한낱 미물까지도 하늘의 일부인 것입니다.

앞으로는 하늘의 일부로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자-. 드시지요."

 

"네."

 

이들이 앞에서 안내하고 이진사가 뒤에 따랐다.

별로 밝지 않은 좁은 통로를 한참 지나가자 앞이 다시 밝아지며 넓은 정원 같은 곳으로 나왔다.

이곳을 지나 맞은 편에는 작은 방들이 주욱 이어져 있었다.

한 백의인이 그 중의 한 방을 가리키며 안내를 하였다.

 

"이곳으로 드시지요."

 

"예."

 

안으로 들자 의외로 좁은 공간이었다.

마치 한 사람이 기거할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으며, 이 공간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누우면 발이 닿을 것 같은 정도의 넓이였으며, 바닥에는 자리가 깔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큰 천웅각이 이렇게 좁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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