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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26)

by 날숨 한호흡 2008. 2. 1.

 

 

<토정 이지함 선인과 필자와의 대화 한 토막>

 

=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 무엇이온지요?

 

= 소설답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으신지요?

- 소설이라면 허구를 말씀하시는 것이온데 사실에 근거한 허구는 제가 이야기 해 드리는 것을 기본으로

꾸미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선계란 원래 사실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므로 허구를 만드느라 한 번 파장이 엇갈리면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을뿐더러 그러한 것 또한 어렵습니다.

 

= 그렇다면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소설 같을 수는 없을 것인지요?

-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것이 소설 같을 수는 있습니다.

 

= 가능하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가급적 독자들이 극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여주는 것이

이지함 선인을 올바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 저의 삶은 그리 극적인 것이 아니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내부적으로 즉 마음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을 뿐 외부적인 고생이나 극적인 사항은 별로 없사옵니다.

 

= 그렇습니까? 그래도 독자들은 이지함 선인의 극적인 이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저는 공부를 위한 내용을 말씀드릴 뿐이옵고, 극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소설가들이 많이

하였으므로 그들의 역할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사명은 저의 일대기를 있는 그대로 말씀드림으로써 공부에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부란 것이 항상 열심히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공부를 하는 도중에 재미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해서 말씀드려 본 것입니다.

-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와 소설은 다른 것이니 소설은 소설가에게 맡기시옵고, 공부 방향으로 나가시는 것이

어떤가 하옵니다.

 

= 알았습니다. 그러하면 항상 이렇게 나가면 되겠는지요?

-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뿐이옵니다.

 

= 알겠습니다.

- 소설가의 영역은 허구의 영역이옵고, 공부하는 사람의 영역은 진실의 영역이므로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사옵니다.

소설은 소설가에게 맡기시옵소서.

 

= 알겠습니다.

- 전부 말씀드린 후에 다시 한 권의 소설로 꾸미셔도 될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 지금은 바쁘시면 나중에 한 번 해보시옵소서.

 

= 그러겠습니다.

* 필자의 말: "메릴렌스에서 온 선인, 토정 이지함"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 선조께서 선인으로서 지상에 파견 나오신 이유와 공부 방법, 도를 이룬 후 펼친 과정 등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선인께서 바라시는 바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려다 보니

공부를 하지 않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이 글은 만인을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수련생들에게

'선계수련에 관련한 모든 부분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하는 글입니다. 따라서

필자도 작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선계수련의 안내자로서 쓰고 있습니다.

일반 독자를 위해서는 나중에 재미를 가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이고자 합니다.

 

 

 

 

이진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마도 남들보다 속으로는 더 많은 갈등을 하면서 살아왔으리라.

이승을 떠난다 한들 나의 업적에 대하여 과대 평가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한 것에 대하여 만큼은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었다.

나의 일생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형편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낫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생을 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마음속으로 뿌듯한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래도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고,

이러한 것들이 큰 것은 아니나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하여 그런 대로 자국이 남아있었다.

 

진이를 비롯하여 며느리도 자신의 뜻을 잘 받들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낳은 아이에 대하여 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이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아이를 아이답게 취급하지 않고 어른처럼 취급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너무나 매몰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아이에게 도리(道理)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도 어릴 때의 진이에게 그러한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고는 하였다.

하지만 진이는 자신보다 한 술 더 떠서 지함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어리다고 해서 조금도 양해하는 법이 없었다.

지함이 동네 아이들처럼 아이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가 없었다.

아이가 빗나갈 우려가 있을 정도의 엄격함이었다.

예를 들어 사정이 있어 하루 할당량의 책을 읽지 못하면 자는 아이를 깨워서라도 밤늦게까지 반드시

읽도록 한다든지, 아침 저녁 단정한 모습으로 동네 어른들께까지 문안 인사를 여쭙게 한다든지,

길가는 사람들에게라도 공손하게 대하지 않으면 심하게 책망하고 상대방에게 반드시

사죄드리도록 한다든지, 한 달에도 몇 번씩 되풀이되는 동네나 집안 행사에

어엿하게 참가자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지함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그러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대인(大人)다운 풍모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으며,

부모님의 걱정에 대하여 전혀 노여움이 없었다.

이러한 것은 타고난 대인으로서의 대범함을 가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아이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함이 커가는 모습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는 이진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마음을 놓고

향천(向天)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향천이라...

내가 벌써 한 평생을 보내고 향천을 할 때가 된 것인가?

사람의 수명(壽命)은 하늘의 명(命)임으로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나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승에 있는 동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들라면 아마도 한정된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역시 적지 않았다.

 

우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둘째는 인간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셋째는 인간이 머물다 떠난 자리 역시 지속적으로 인간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

인간의 태어남은 최초의 만남이었다.

부모로서 만나고, 형제로서 만나며, 이웃으로 만나고, 타인으로 친인척으로 만났다.

만남은 인간으로서의 출발이며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또한 살아감은 인간으로서 닦여감을 뜻하는 것으로써 이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선인이 되는가,

인간으로 남는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떠남, 즉 향천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온 것 전체에 대하여 평가받는 자리였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평가.

이 세 가지 과정을 통하여 인간은 선인으로 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남을 받을 수 있는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이제 두 가지 과정을 마치고 세 번째 과정을 남겨두고 있었다.

자신이 이승에 들어 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을 끝낸 것이었다.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떤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무료한 시간이었으나

매듭을 지을 만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음에 대해서는 이진사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이진사는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마음을 덜어낼 준비를 하였다.

모든 것에서 집착을 벗어내었으며 자신이 깊이 심어 놓은 모든 것들에게서 자신의 마음을 거두었다.

자신의 마음을 심어놓았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신이 이승을 떠난 후

후세에 이승에 태어날 선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으나

그마저도 부담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것을 거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서서히 이승에 심어 놓은

자신의 무게를 줄여가고 있었다.

 

이러한 이진사의 시도는 자신의 마음의 무게를 상당 부분 줄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진사는 부담 없이 향천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향천할 시간이 다가오자 이진사의 마음속에는 지나간 날들의 많은 사건들이 지나갔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비움의 의미를 지닌 채 이진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비움"

그것은 진정 자유였다.

이진사는 이 비움의 의미를 진정 깨달아 가고 있었다.

이렇게 가벼운 것이라면 진즉 비웠어야 더 많이 깨달을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다녀간 자국을 남기기 위해 마음을 심었던 것마저도 욕심임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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