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반드시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닌 듯 하였다.
하지만 원칙이 아닌 듯 생각되는 그것이 원칙인 것은 우주의 기준으로나 재볼 수 있음직한 일이었다.
크고 작은 것이 인간의 기준으로 재지는 것이듯 도의 깊이는 우주의 기준으로 측량되는 것인 듯 싶었다.
마냥 평범한 것 같았던 이진사는 향천 이후 이제껏 겪어 보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육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몸을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편안한 얼굴이었으므로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다시 한번 자신의 육신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공중으로 올라가는 자신의 기체(氣體)를 낮추어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기체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통제력을 잃은 자신의 기체는 공중으로 천천히 계속 솟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통제력을 잃은 자신의 기체는 공중으로 천천히 계속 솟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미 자신의 몸이 아니고 기운으로 화해버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진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마음 편히 생각을 하는 길 뿐인 것 같았다.
"그래. 이제 와서 무엇을 더 어찌한단 말인가! 한 번 더 바라본들 무엇이 더 남겠는가.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가자. 어딘지 모르지만 지나간 날의 나의 삶에 의해 평가받을 것 아니겠는가?
내가 올바로 살았으면 올바로 살아온 값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값을 받을 것이다.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자. 무엇을 더 망설이는 것인가. 가자. 그리고 맡기자."
이진사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기로 하였다.
살아생전 모든 것을 비우는 연습을 무던히도 한 탓에 마음을 먹자마자 모든 것이 쉽게 잊혀져 가고
다시 마음이 가벼워져 갔다.
이진사는 하늘을 보았다.
무엇인가 검은 점 몇 개가 보였으나 아직 멀어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사람들인 것 같았다.
누군가?
나처럼 올라오는 사람들인가?
하지만 그들이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가만히 떠 있는 것 같았다.
점점 다가가자 멀리 몇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섯 명 있었다.
공중에 떠 있지만 땅에 서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 있었다.
한 명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고 있었으며 나머지 네 명은 편안한 자세로 서서
이진사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사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맞이하는 것으로 알고 인사를 하려 하였으나
본척 만척 하며 그대로 서 있었다.
이진사는 이들을 지나쳐 다시 공중으로 올라갔다.
이제 떠나온 육신은 보이지 않았다.
공중의 모습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냥 하늘이 아니었다.
밟고 걸으려 하면 밟고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자신은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바람의 힘에 풍선이 밀려 올라가듯 그렇게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이 하늘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떠 올라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은
주변의 것들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음에 비추어 알 수 있었다.
방금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표정들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었지만 무표정보다는 편안한 인상에
약간 긴장된 표정들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이 악한이 아니고
선한 사람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금 생각건대 그들이 이진사의 인사를 받지 아니한 것은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였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신경쓸 것 없다."
지금 그것마저도 비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비우는 데까지 비워 보자.
어디까지 비워야 모두 비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이 보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비워보자.
비우는 데까지 비우다 보면 비움의 끝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는 비움의 끝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이진사가 떠올라 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에는 서서히 올라가는 듯 아닌 듯 떠올라갔으나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속도가 더해지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이 한참을 올라간 것 같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흐린 날처럼 뿌연 것이 안개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것이 가끔 보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문득 앞이 밝아져 오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먼 곳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보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니 이진사가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이번에는 일곱, 아니 여덟 명이었다.
순백색의 옷을 입은 사람과 미색의 옷을 입은 남자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아까도 전부 남자들이었으나 지금도 역시 남자들이었다.
175-180cm 정도의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으며, 이들 중에는 가벼운 끈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으나 아까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연장 같은 것을 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였다.
그들이 들고 있었던 것은 커다란 것들이었다.
키보다 큰 것도 있고, 어깨 높이 만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연장치고는 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보이는 이들은 아주 작은 것들을 들고 있었다.
이진사는 이들 역시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들을 지나쳐 올라가려 하자 한 사람이 이진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공중에서 아주 자연스레 걸어오는 것이었다.
공기를 밟고 움직이는 것이 어찌 저렇게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처럼 자연스러울까?
이진사는 그들이 자신을 보고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심으로 가만히 떠 올라가고 있었다.
헌데 그들이 자신을 향하여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얼굴은 두건 같은 것을 착용한 그늘 밑에 웃음을 띤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어디에서 보았을까? 틀림없이 어디선가 본 사람들인데."
하지만 못 본 것 같기도 하였다.
사람들이란 것이 본래 비슷한 용모를 가진 경우가 많아서 반드시 보았다고 할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이진사는 이들을 어디에서 보았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들 역시 자신을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들이 자신을 보고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시는 뉘시오?"
나를 보고 부르는 것이 아니리라.
그냥 올라가자.
먼저처럼 보았으리라고 생각하고 대답을 하였다가 무안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이나 이 사람들이 나를 알리 없지 않는가?
하지만 이들은 이진사를 부르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시는지 물었소이다."
이진사는 그제서야 자신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았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럼 누가 계시오?"
"저는 방금 올라와서 아직 어디가 어딘지 모르옵니다. 제가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알겠사옵니까?"
"그래도 가고 싶으신 곳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있는데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리 없습니다."
"선한 자가 가는 곳이 있고, 악한 자가 가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저는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을 것 같으나 굳이 따진다면
악한 자가 가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사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잘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늘을 위하여 무엇도 제대로 한 것이 없사옵니다."
"이곳이 어딘지 아시고 계십니까?"
"모르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심정이 어떠하신지요?"
"마음이 가벼울 따름입니다."
"아쉽거나 한 것이 없는지요?"
"아쉽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 것을 아쉬워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전부 비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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