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사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에의 집착을 끊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임을 알았다.
이후 이진사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생명에 대한 집착마저도 벗어날 즈음 이진사는 자신이 이승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자유도 자신의 것보다는 덜 할 것 같았다.
이 정도의 자유라면 우주의 어느 곳에 있던지 간에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향천 이전 자신이 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나서부터
이진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진정 소중하고 값진 것임을 인정하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훨훨 날 것 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집착에서 벗어나고 부터는 아까울 것도, 미련을 가질 것도, 안타까워야 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 자신의 길에 대한 걱정마저도 간섭이며, 무질서이고, 남의 일을 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때로는 이러한 것이 진정 모든 것을 위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마저도 들 정도로
얼마전의 이진사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진사의 변한 모습에서 어쩌면 향천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예전의 이진사가 아닌 것이었다.
예전의 이진사는 이렇게 모든 것에서 초연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이진사만은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던 이진사가 어느 날인가 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집안 사람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도 알아채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커다란 동기를 필요로 하였다.
이진사의 경우 하늘의 뜻을 읽고 나서 모든 것에 집착을 놓았고,
이 집착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사람을 너무나 변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이진사는 자신의 향천일을 짚어보았다.
앞으로 길어야 서너 달인 것이다.
가급적 길일을 택하여 떠나 볼 생각이었다.
자신의 육신마저도 남기지 않으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자신의 일생을 잘 보필하여온 육신에 대한 예의로서
가능한 한 삭아서 사라질 동안만이라도 도리를 다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더욱 열심히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지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진사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써 매일 새벽 하루에 두서너 시간씩
만물에 감사하는 명상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자신에게 남겨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 시간들을 내가 이승에 있는 동안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시간으로 보내자."
이런 생각들로 지내던 어느 날 이진사는 자신의 명이 거의 다하였음을 느꼈다.
수 일전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기가 약해지고, 땅에서 받던 지기가 강해진 것이었다.
"지기가 강해지다니..."
지기가 강해지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 가지는 천기가 약해짐으로써 지기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우는 천기를 받아들이는 혈이 막혔을 경우에도 있을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런 때는 스승이나 수련 정도가 높은 사형 등이 혈을 개통시켜 줌으로써 해결되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천기는 그대로 있으나 지기가 워낙 강해져서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지기에 휩싸여 지기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기에 패하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게 된다.
대개 수련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진사의 경우는 전자였다.
천기가 막히고 있었다.
모든 것을 비우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천기를 당기는 힘이 약해져 버린 것이다.
천기를 당기는 힘이 약해지게 되면 천기는 약해지나 지기는 가까이 있어
그 효력이 동일하게 미치므로 지기가 강해진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자신의 경우가 전자임을 알고 있었다.
경혈을 열거나 천기를 당기므로 인하여 천기를 강화시킬 수는 있으나
이 또한 이진사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진정 원한다면 오로지 하늘 기운을 받으며 마지막을 장식하고픈 생각뿐이었다.
하늘 기운이 중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 준다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마지막을 편히 보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기가 강해진다면 지기에 의해 그나마 있었던 천기마저도 더욱 약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진사는 마지막 소망마저도 버리기로 하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전부 비운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비운 후에 정말 가벼이 떠날 수 있으리라.
천기인들 어떠하며 지기인들 어떠할 것인가?
천기도 지기도 느끼지 못하던 날들도 잘만 살아왔거늘 이제 향천을 준비하는 요즈음
천기가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이제 곧 아무 것도 없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 들어가는 곳이 어떠한 곳인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여러 사람이 쓴 것을 읽은 것이 있어
그런 대로 알고는 있었으나 확신은 없는 터였다.
이진사는 이러 저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육신의 무게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일어서려 하자 일어서기가 상당히 불편하였다.
이러한 일은 아직까지는 없었던 일이었다.
몸이 무거우면 좌우가 동시에 무겁지 한쪽으로 쏠려서 감각이 치우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였다.
동네 분들 중 돌아가신 분들도 보였다.
이진사는 다시 일어서 보려 하였다.
그러자 몸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기운으로 일어서지는 것 아닌가?
이진사는 너무나 놀랐다.
이렇게 향천을 하는 것인가?
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일어선 것이다.
다시 앉아 보았다.
그대로 앉아 졌으나 몸을 비켜 앉아 지는 것이었다.
이미 몸과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떠나는 것이구나...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어느새 유언을 남길 만큼의 미련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한 것이 언제이던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순간 모든 것이 이진사의 마음을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진사와 관계 있었던 것들은 이제는 깨끗이 비워져 어디에도 이진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진사는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더 이상 남아 있고 싶어도 남아있을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진사는 일어선 채 남겨져 있는 몸을 바라보았다.
이진사를 육십여 년간 싣고 온 육신은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더 없이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이만하다면 이제는 떠나도 되리라...
저렇게 평온한 얼굴은 아무에게서나 나올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도 이제 인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만큼 마음이 열린 것일까?
자녀들은 이제 클 만큼 커서 나의 향천을 편안히 바라 볼 만큼 되었으니
그 애들이야 조금의 서운함만 뺀다면 될 것이나 손자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애는 오히려 총기가 있고, 선기(仙氣)가 보여 사실상 가장 걱정이 덜 되는 편이었다.
그렇다.
이제는 떠나도 될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떠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기는 하였으나
어쨌든 마음놓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이승에 와서 한 갑자를 잘도 지내왔다.
모든 것을 깨달은 시점이 너무 짧아서 결코 보람있게 보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마지막에라도 어느 정도 깨달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만큼 깨닫고 이만큼 비운 채 갈 수 있는 것만이라도 다행으로 알아야 할 것이었다.
이진사는 드디어 마음을 속세에서 아주 비웠다.
모든 것을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아주 정리가 되었다.
이진사의 향천은 동네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서운한 일이었다.
고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가 비워진 듯한 느낌을 너무나 크게 주었다.
단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 이상의 비워짐...
무엇인가 이들의 가슴에서 거두어 진 듯한 느낌을 전해주고 가버린 것이다.
비단 사람들의 가슴에서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나무와 풀, 산과 들에서도 무엇인가가 거두어져 버린 것 같은 공허가 배어 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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