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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25)

by 날숨 한호흡 2008. 1. 31.

 

 

이진사는 자신의 가계(家系)가 근선인(近仙人)임을 모르고 있었다.

선인은 아니되 조상들의 은덕으로 가계가 선인화할 자질을 비교적 많이 갖추고 태어난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으며, 항상 하늘을 의식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활태도는 무슨 일이든 하늘의 판단을 구해보는 버릇을 가지도록 하였으며,

나름대로 하늘에 의지하고 언젠가는 하늘에서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도록 하였다.

 

하늘은 모든 일에서 오차가 없이 정확하였으며, 순리대로였고, 그 자체가 조물주이며 신(神)이었다.

이진사는 이러한 하늘에 대한 인간들의 마음가짐이 하늘의 뜻에 적합하게 생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이 보임을 아는 순간 이들에게 하늘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전하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러한 뜻을 가진 것은 30대 중반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하늘의 뜻이 가슴에 전해지고 이후 이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지내온 세월이

길어지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 근래 들어 어렴풋이 이러 저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뚜렷이 이것이라고 집어 낼만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능력으로는 부족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를 찾게 되었고,

하늘을 전할 수 있는 누군가가 바로 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 아이였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신이 있어 나의 생각을 읽어준다면 이 아이를 점지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진이를 보고 어쩌면 이 아이가 자신이 찾지 못했던 '하늘을 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아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이 아이가 더 없이 소중하게 된 것이다.

 

하늘은 결코 지성을 버리는 법이 없는 것 아닌가?

아니 아닐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결과에 실망해서도 안될 것이었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어찌 한 인간의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이진사는 결코 독촉하지 않는 마음으로 진이의 성장을 바라보기로 하였다.

진이가 하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을 아이라면 때가 되었을 때 어떠한 징조가 나타날 것이고,

그 뜻을 내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들 어떤가?

그 일을 반드시 내 집안에서 하여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어차피 누구든 하늘을 전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것이고,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이것마저도 한낱 욕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욕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인간의 마음이 점차 무거워져서

결국은 자신마저 하늘의 뜻을 읽어냄에 실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도 하늘의 뜻을 안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한 가지 가능한 것은 아직 자신이 큰 실수를 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 하나만으로 하늘이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늘은 결코 가벼이 반응하지 않았으며 하나 하나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자신이 엄청난 공(功)을 들여 하늘을 보려 하였음에도 보여주지 않다가

이번에서야 잠깐 하늘을 느꼈던 것에서도 알 수 있었다.

 

어찌 가벼이 하늘을 알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이 스스로 보여주지 않고서는 감히 하늘을 알았다고 할 수 없거늘

자신의 경지에서 하늘을 알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은 자신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닐뿐더러

아직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다.

 

허나 이진사는 진이의 성장에서 작은 암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암시는 바로 진이가 완성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면 진이는 상당한 정도까지 확인해 낼 것이다.

진이가 전부 해낼 수 없다면 그 다음 대에서라도 해주면 좋을 것이었다.

수십 대가 지나더라도 우리 집안에서 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집안이 해낸다면 누군가가 선인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선인이 된 누군가가 나머지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전해주므로 인하여

선인의 숫자가 많이 증가할 것이고,

선인이 증가하면 자동적으로 나머지 사람들 역시 선계로 갈 수 있는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인가?

지금 당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이가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진이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이것이 바로 욕심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것은 욕심으로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하늘의 일을 어찌 인간이 판단하여 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의 일정이 별도로 있을 것이거늘 인간이 감히 하늘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한

죄를 지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에 대한 바램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진이의 성공을 비는 것마저도 허락이 되지 않는 것인가?

다른 모든 이와 동일하게 "진이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사"하는 정도의

기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진사는 이 정도의 바램마저도 접었다.

이미 하늘의 뜻이 정해져 있다면 모두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한낱 나의 욕심으로 끝날 것이었다.

 

욕심이 인간을 얼마나 무겁게 하는지 알고 있는 이진사는 이러한 욕심마저도 버릴 것을 결심하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될 것을 감히 신의 영역에까지 침범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 자체가 불경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조차도 짐이 될 것이었다.

이진사의 생각은 모든 것에서 자신의 마음을 버리는 것이었다.

마음을 버린다 함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었다.

집착을 버림으로 하늘에 자신의 뜻을 전하고 그 뜻의 전달에 의해 하늘이 새로운 임무를 하명하면

그것에 따를 생각이었다.

 

자신은 이 땅에 태어나서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하여야 할 그 많은 것들을 깨달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하여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들을 내가 다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고,

다른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이어가면서 하여야 할 것이었다.

 

나의 역할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 한다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태어나서 부모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성혼을 하여 진이를 보았다.

진이 외에도 형들이 더 있었으나 그 애들은 너무나 평범하여

선계의 업무로 보았을 때는 다른 무엇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이의 경우는 남다른 무엇이 있었다.

그래서 이진사의 마음에는 우선적으로 진이를 두고 있었다.

진이의 경우 결혼을 시킬 때에도 속내로는 남다른 주의를 하며 시키지 않았던가?

 

며느리는 인근에서 벼슬이나 재물로는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성품이나 가정교육으로는

내세울 만한 집안에서 취했으며, 며느리가 들어온 이후 동네에서 칭송이 자자하던 터였다.

위로 오빠 하나, 남동생 하나, 여동생 둘의 오 남매의 둘째로 태어났으면서 위아래로 오빠,

동생을 잘 대하고 분별 있는 행동을 함으로 친척은 물론 동네사람들에게 호감을 많이 받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이진사는 이 며느리가 하늘의 뜻에 의해 자신의 집안으로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향천(向天: 별세를 의미함)을 생각하여야 할 무렵이 된 즈음 이진사는

이 며느리를 더욱 마음써서 지켜보고 있었다.

 

며느리가 아이를 수태하고 용꿈을 꾸었을 때부터 혹시 손자가 선계 출신이 아닌가 하였던 추측은

확신이 없었으나 인간으로서 상품(上品)의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이러한 것은 며느리가 모든 점에서 누구 못지 않은 행동거지를 보일 뿐만 아니라

항상 약간씩 남보다 나은 점을 보임으로써 남들이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존경까지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며느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큰 일을 할 수도 있을 만큼 의지가 있고, 영민한 아이었다.

이러한 것으로 보면서 며느리에게도 기대가 있었으나 그런 며느리가 출산할 손자에게도

기대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 정도로 후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면 내가 떠나기 전의 할 일은 전부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가벼이 해도 되리라.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나의 역할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고, 이 일부에 불과한 것은 내가 전부 하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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