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하늘을 안다는 것, 느낀다는 것은 최상의 은총일 수 있었다.
이러한 은총을 혼자서 누린다는 것은 너무나 큰 죄악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죄악!
그렇다.
나쁜 행동을 해서 죄악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큰 것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아니한 죄,
이것이 무엇보다 더 큰 죄악이리라.
인간으로 태어나서 좋은 일만 하다가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죄를 짓지는 않더라도 나쁜 행동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하늘을 느낀 이상 이 하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죄악일 것이다.
하늘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죄악을 저지르는 것에서 벗어나 착한 삶을 살아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하늘의 뜻을 전함을 소홀히 하여 많은 사람들이 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늘은 모든 것을 그냥 놓아두는 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업보라는 말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업보...
그것은 한 인간들이 저지른 모든 것을 종합 평가하여 결과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업보를 평가하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을 경우 부정적인 답을 통보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그것에 대하여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평가는 하늘의 몫이었으며 이 부분은 하늘의 절대적인 권한이었다.
선인이라도 인간으로서 태어났다면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선인으로 돌아가서도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선인들이 인간으로 있으면서 선행(善行)을 함으로써
선인으로서의 등급을 향상시키려 하고 있었다.
선계의 질서, 즉 하늘의 질서는 너무나 엄격하여
결코 공(功)이 없이 등급을 높이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공을 평가하여
반드시 그 공의 크기에 비례한 결과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이러한 하늘의 과정을 뼈속 깊이 느꼈다.
하늘을 느끼면서 하늘의 뜻을 너무나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하늘의 눈으로 인간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질서였다.
질서를 벗어난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잘잘못을 평가하는 모든 것이 질서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질서란 바로 우주였다.
우주.
하늘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주였다.
이 우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우주란 큰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으며, 아주 작은 것에도 우주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우주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우주였다.
그 우주는 인간의 단전을 통하여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우주의 움직임은 단전이 발달된 인간들을 통하여 다른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영향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는 바로 인성(人性)의 개발이었다.
인간의 성격은 각각의 인간이 전부 달랐다.
이 다른 성격 탓에 인간 세상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질서는 바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수억의 성격이 파장이 되어 촘촘히 메움으로 인하여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빈틈없이 짜여져 있었다.
이러한 질서는 바로 하늘이 원하는 것이었다.
크고 작음, 둥글고 모남, 희고 검은 것들이 어우러져 인간의 모습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주가 인간에게 원했던 그것이었다.
각각의 개성들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어 가며 존재하는 것.
인간의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고, 이 하나가 다시 수억 개로 나뉘며,
이 수억 개가 다시 하나가 되는 장대한 파장의 꾸러미...
이 파장의 힘으로 우주는 수많은 별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인간 세상의 에너지는 바로 수억의 인간들의 단전에서 나오고 있었다.
단전은 바로 거대한 용광로였다.
우주는 인간의 단전을 용광로로 만들어 그 단전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우주를 가동시키고 있었다.
이 에너지의 원동력은 바로 진화를 향한 인간의 힘이었다.
선인이 되고자 단전에 힘을 모으고 이 힘을 정화하며 나가는 인간들의 원력(願力).
무서운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이진사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정신이 들었다.
아주 순간이었다.
너무나 짧아서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으나 이진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본 것이었다.
현실감이 없을 정도의 찰나에 보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이진사의 뇌리에 스쳐갔다.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하늘을 이야기한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인가?
진이의 눈을 보았다.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진이의 눈에 이미 하늘이 들어와 있었다.
"아버지, 하늘을 전해야 되지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진이의 눈이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하늘은 가슴에 담아서 가슴으로 전해야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아이의 가슴에 하늘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이진사가 이러한 생각을 하려는 순간 진이의 가슴이 들여다보였다.
넓었다.
이미 우주를 받아들이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가능할 것이다.
"그래, 하늘을 전하는 것이 네 임무이다."
진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늘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하느냐? 하늘의 무게를 알고 있는가 말이다.
하늘의 무게를 안다면 네가 어찌 전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하늘은 너무도 가벼운 것이기도 하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할 만큼 가벼운 것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가벼울 수만 있다면 이 아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아이의 역량으로는 들 수 없을 만큼 하늘의 무게는 무겁다.
하늘은 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벼운 것이나
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나중에는 모르되 지금의 진이가 들 수 있다고 마음먹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들지 못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들 수도 있으리라.
이 아이의 눈에 이미 하늘이 들어와 있지 않은가.
"너는 어떻게 하늘을 전하려 하느냐?"
"이렇게요."
진이는 가볍게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너는 하늘의 무게를 알고 있느냐?"
"모르옵니다. 하지만 들 수 있다는 자신만 있으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
"하늘은 근본적으로는 무거우나 마음먹기에 따라 들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었구나. 아버님께서 이 아이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나 했더니
하늘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 것이었구나...
돌아가시기 전 아버님께서는 이 아이를 퍽이나 귀여워해 주셨었다.
"지금 들기는 어려울 것이나 나중에는 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너는 하늘을 무엇으로 드는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드느냐?"
"손으로 드는 것 아니옵니까?"
이진사는 다행스러웠다.
이 아이가 아직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벌써 그러한 것까지 알고 있다면 들 수 있을 때까지 무리를 하다가 자칫 명이 짧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손으로 하늘을 들 수 있을 때까지는 들면 아니 되느니라."
"네. 알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무슨 뜻으로 이 아이를 데리고 하늘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 것일까?
하늘에 대해서는 가벼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떠한 의도로 이 아이를 데리고
하늘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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