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진리의 길은 생각만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였다.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며
생각이 진행되도록 밀어주는 것은 호흡이었다.
호흡과 생각을 병행하여야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먼저이던가?
생각이었던가?
아니면 호흡이었던가?
생각으로 호흡을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인가?
호흡으로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인가?
호흡은 살아있는 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생각 역시 살아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있음은 이 두가지로 증명되는 것인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은 자면서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깨어있으면서도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멍하게 있는 것은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생각을 한다면 멍하게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인가 머리속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있을 것이었다.
생각은 어디로 하는 것인가?
머리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슴으로 하는 것인가?
머리가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인가?
생각은 머리로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가슴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생각을 할 때는 가슴이 이상하게 답답하거나 시원해져 오는 것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러한 증상은 가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온 몸이 그러한 증상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엇인가가 잘 되지 않을 때는 가슴이 답답하고
그로 인하여 온 몸이 답답해져 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엇이었던가?
이러한 모든 해답은 호흡으로 풀어야 하는 것인가?
이진사는 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그렇다면 생각이 아니라는 말인가?
생각은 할수록 답답해져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호흡은 할수록 시원해져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호흡인 것이다.
호흡이 사람을 살아가도록 만들고, 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호흡인 것이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호흡으로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호흡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느 곳일까?
어디에 가야 하는 것일까?
그곳에 간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며 그것을 이룰 수는 있을 것인가?
호흡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호흡으로 해 온 것이 있었다.
호흡의 힘을 실감하며 살아온 것이다.
호흡...
그래. 호흡밖에 더 있겠는가?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호흡이 무뎌져서 고생을 하지는 않았었다.
호흡을 처음 익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진사 역시 자연에서 호흡을 배웠다.
다섯살 반의 어린 시절.
이진사는 마루에 앉아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구름은 왜 흘러가고 있을까?
바람은 땅에서만 부는 것인줄 알았다. 구름은 하늘에 있는데 그곳에는 바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 구름이 왜 흘러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바람에 날려가는 거야."
"그럼 저 높은 곳에도 바람이 불어?"
"그럼."
"바람은 왜 불어?"
"부니까 불지."
"왜 부는 거야?"
"그냥 부는 거야."
"??????"
그럴 리가 없었다. 바람이 그냥 불다니...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이 불리가 없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날리고, 갈대가 옆으로 누우며, 물결이 일었다.
"이것을 내가 해볼 수는 없을까? ... 그래. 숨으로 한번 해보는 거야."
어린 이진사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크게 한 번 내쉬었다.
다시 한 번 들이쉬고는 내쉬었다. 자꾸 해보자 숨의 양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하다보면 나중에는 구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계속 해 보자. 이진사는 하늘을 보고 계속 들숨과 날숨을 계속하였다.
호흡이 점점 깊어져갔다. 호흡에 바다가, 하늘이, 땅이 숨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진사의 호흡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진사가 날숨을 쉬면 앞으로 눕고 이진사가 들숨을 쉬면 뒤로 누우려 하고 있었다.
구름이 조금씩 이진사의 호흡에 의해 이리 저리 밀리기도 하고 당겨지기도 하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진사는 점점 호흡을 깊이 하였다. 모든 것이 호흡으로 조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호흡을 하면서 이진사는 호흡만이 모든 것을 통할 수 있음을 알았다.
모든 것이 통하면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호흡을 하면 모두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아직은 힘이 모자라는 것 같았다.
이 정도의 호흡력으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가능할 것인가?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아직은 안되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호흡이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다시 구름이 흐르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구름이 흐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구름이 흐른단 말인가?
왜일까?
왜 구름이 흐르는 것일까?
호흡은 나의 호흡만 있는 것일까?
하늘은 숨을 쉬지 않는 것일까?
이 땅은 숨을 쉬지 않는 것일까?
사람이 숨을 쉬고 하늘과 땅이 숨을 쉰다면 그 이상의 우주도 숨을 쉴 것이 아닌가?
숨을 쉰다면 모든 것이 숨을 쉴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숨을 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모든 것이 숨을 쉬고 있지 않는가?
하다못해 길가에 나 있는 풀까지도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꺽어버리면 죽어버리지 않던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으로 숨을 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기운 중 하나가 없으면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동물들은 공기를 통하여 천기와 지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정도까지의 숨을 쉴 수 있으며 이 숨으로 어느 정도까지 뜻이 통할 수 있단 말인가?
뜻이 통하면 구름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구름을 움직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구름이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인가가 있을 것이었다.
어떠한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은 없었다. 길가에 돌맹이 하나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유란 바로 그것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원리이자 결과이었다.
하물며 하늘에 있는 구름이 이유없이 움직일 리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구름이 움직이는 이유를 밝혀보고 말리라.
구름이 움직이는 것은 필경 우주의 어떠한 부분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직 어떠한 부분인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이유이든 있을 것이다.
그 연유가 어떠한 것이든 밝혀내고 싶었다. 반드시 답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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