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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계수련 교과서/소설 선(仙)

소설 仙 (016)

by 날숨 한호흡 2008. 1. 19.

 

 

 

이진사와 조씨는 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별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옴에 따라 별의 모습이 점차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동그란 모습이었다.

 

아주 작은 동그라미가 빠른 속도로 별의 모습을 그리며 내려오므로 별처럼 보이기는 하였으나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순간 원의 모습이 보였다. 이 원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있었다.

 

아기였다. 아주 작은 아기가 한 명 들어있었다.

너무 작아서 차마 손도 댈 수 없을만큼 작지만 명확히 아기임을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었다.

손톱 위에 올려놓아도 뛰어 놀 수 있을 만큼 작은 아기였다.

 

그 아기가 비누 방울 같은 원형 속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원의 움직임이 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하여 심하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의 내부에는 움직임이 없으나 외부에서만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진사와 조씨는 그렇게 작은 모습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노안으로는 평소에 그렇게 작은 것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들여다보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빛은 사라지고 주변은 다시 어슴푸레한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집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꿈결처럼 지나간 것이다.

며느리가 산기를 느낀 이후 용을 본 것,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것 모두 찰나의 일만 같았다.

아기의 얼굴을 처음 본 이진사 내외는 손자의 얼굴이 왠지 범인의 얼굴보다 못한 것 같았다.

아들 녀석을 닮았다면 그런 대로 괜찮을 얼굴상을 타고났을 법하였건만 전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며느리를 닮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용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 녀석이니 무슨 일이든 할 것 같았다.

조심스레 키워볼 작정이었다. 동네에서도 이 집 며느리의 일은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었다.

토정을 임신하고 용꿈을 꾸고 난 후 힘이 넘치는 것 하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쨌든 범상한 아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였다.

 

토정은 자라면서 별로 말이 없었다.

사람들의 기대가 한 몸에 모아져 있었음에도 토정은 그런 것을 알고나 있는지

전혀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없었으며 차이가 있다면 말이 없는 것뿐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묻기 전에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표정도 행동도 전혀 어떠한 의사가 드러나질 않았다.

토정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점차 잊혀져 갔다.

둘만 모여도 토정의 이야기를 반복하던 동네 사람들은 점차 생업에 치중하였으며

이진사 역시 기대는 하면서도 딱히 특별한 점을 발견치 못하고 토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커가면서 점점 토정은 누가 물어도 잘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말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른들이 대하기에도 쉽지 않은 성품을 지닌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가 하는 말이면 항상 이치에 맞는 것이었으므로 누구나 토정이 큰 사람이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옳지 않은 말이면 아예 입을 열지 않았을 뿐더러 한 마디를 하여도 그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토정이 말의 기운을 느끼고 나서부터였다.

 

토정은 일찍이 말을 하기 전부터 말의 힘을 알고 있었다.

말은 인류가 의사를 소통하는 수단이며 이 말에 의해 인간세상이 움직여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말의 힘이란 너무나 엄청났으며, 말의 힘에 기운을 조금 추가하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넓은 것 같으면서도 또한 좁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너무나 넓었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너무나 좁았다.

보는 각도란 나의 입장에서 보는가, 우주의 입장에서 보는가의 차이였다.

토정은 인간으로 있으면서 한 인간인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았지만

가끔은 우주의 입장에서도 세상을 보았다.

 

우주는 왠지 자신의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자신과 하나인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우주가 자신과 하나임으로 저 하늘 밖으로 나가면 한없이 따뜻할 것 같았다.

 

아직 그 곳으로 나간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곳보다는 좋은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음은 토정이 어릴 때부터 감으로 알고 있었다.

토정은 감이 예민하여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토정이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그가 말을 하지 않으므로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말은 하지 않으나 옳은 말만 하므로 토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때로는 집안 어른들도 옳은 말만 하는 토정이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옳고 바른 행실로 이름나 있었으므로 집안에서는 별로 어려운 점이 없었다.

허나 토정의 부모나 이진사는 걱정이 되는 바도 없지 않았다.

 

이 아이가 혹시 천지의 이치를 깨우친 것은 아닐까? 천지의 이치를 깨우치면 말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서너 살 바기의 아이가 천지의 이치를 깨우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신동이라고 해도 대개 말을 배운 이후 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되면 신동이라는 소문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토정은 그렇지도 않았다.

 

이 아이는 가만히 있어도 무슨 생각인가를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생각을 하면 움직이거나 생각이 없으면 가만히 있음에도 이 아이는 항상 가만히 있으면서

무슨 생각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동자가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으며 살아있었다.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은 생각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토정은 눈의 초점이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멀리 있었다.

어딘가 먼 곳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먼 곳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곳보다 훨씬 더 먼 곳임을 이진사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이진사는 아직까지 그렇게 먼 곳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진사는 어디엔가 먼 곳에서 코가 크며, 머리가 노랗고,

피부가 하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왔다간 적이 있다는 것과,

아주 새카마면서 입만 빨간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입고 있는 옷도 자신들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였다.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진사도 수련중에 어딘가 이상한 곳을 돌아본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겨울에 새벽 수련중의 일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집에 불이 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와 보았으나

이상이 없는 것을 알고 다시 들어가 수련을 하려고 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살고 있던 곳이 아님을 알고

깜짝 놀랐다.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는 것이었다.

수련 중 집에서 잠시 나왔다가 돌아보는 순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었다.

 

선배 도인으로부터 수련을 올바로 하지 않는 경우에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음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수련 중 강력한 의념에 쌓인 공상으로 소일하다가 시공을 초월하여 자신도 모르게

양신을 이동시켜버린 것이었다.

 

놀라서 다시 쳐다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하던 이상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나무들이 있다는 것은 들은 바조차 없었다. 뿐만 아니라 풀 역시 달랐다.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에서는 이제껏 보지 못한 풀들이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보자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았다. 이진사는 길을 찾아 나섰다.

가까이에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우선 물이라도 찾아서 가다보면 길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을 찾으려면 내려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평원 지형이므로 그리 내려갈 것도 없었다.

금방 야산을 내려왔으나 더 이상 찾아 갈 곳이 없었다.

 

주변 지형이 다시 바뀌어 있었다. 절반은 사막인 곳이었다.

언뜻 보면 환상인 것 같았으나 만져보면 만져지는 것으로 보아 환상은 아니었다.

실물임에도 이렇게 바뀌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수련을 단단히 잘못하여 이러한 꼴을 당하게 되었구나. 하지만 길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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